한국어는 왜 미리 ‘주어 생략’이 많아? 주어를 밝히지 않는 언어를 구사하니, 주어를 교묘하게 생략하며 자신의 행위에 대해 개인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의식도 발현되는 게 아닐까?
서구어 전공자들과 얘기하다가 불현듯 대통령 담화문의 주어를 추적하고 싶어져서 해보았다. 그 외 이런저런 주석도 곁들여 보았다.
- 문장 1: (주어 없음) 사과드립니다.
- 문장 2: (주어 없음)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 문장 3: (주어 없음)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 문장 4: (주어 없음)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 문장 5: 팩트 하나 짧게 :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입니다.
- 문장 6: (주어 없음) 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
- 문장 7: 팩트 삽입. 구속 체포 수사 진행 중 .
- 문장 8. (‘미래 소망문’ 등장) 앞으로 검찰은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남이 할 일에는 주어가 명백하게 등장한다. ‘검찰은~진실을 밝히고’까지 주어인 검찰의 능동적인 행위를 지시한 후, 이후 절에서 수동형으로 바뀐다. ‘이루어져야 한다’고.
미래 소망문은 영어로 말할 것 같으면 ‘2, 3인칭 shall 미래 사역형’과 같은 효과가 있다. “You shall die.”라고 말하면 이건 말하는 나의 의지로 ‘너는 죽을 것이다’가 되는 용법이다. 이것은 주로 신이 사용한다. 죽는 것은 ‘너’이나 그것은 나의 의지일 것이다, 정도의 용법이 될 것이다.
이 문장도 보면 진실을 ‘구애받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주어인 ‘검찰이’ 밝히라고 말하면서 마지막 절에서 수동태로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을 한다. 주어가 무슨 짓을 하든 ‘이루는 것’은 너희가 아니며, 상황은 말하는 나의 의지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 문장 9: (처음으로 주어 등장) 저는 협조하겠습니다.
바로 윗 문장에서 소망문 형태로 지시를 겁박한 후, 비로소 주어가 등장하면서 ‘협조하겠다’가 나온다. 무엇에 협조하냐고? 자신의 의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 문장 10. (주어 생략) 지시하였습니다.
- 문장 11. 조건문. 필요하다면(필요 없으면 안 하겠다) 특별 검사에 의한 수사까지 수용하겠다(거기가 한계다. 그 이상은 못한다)
- 문장 12. 국민 여러분 : 호칭 사용. 지지층 부르며 호소하기 작전.
주어도 분명하다. ‘저는’ ‘외롭게 지내왔습니다.’
- 문장 13: (주어 없음) 도움을 받게 되었고, 왕래하게 되었습니다.
변명문. ‘왕래’의 정의가 시급해 보인다.
- 문장 14. 사실입니다.
- 문장 15.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쁜 일에는 피동형 문장이 등장한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 문장 16. 밤잠을 이루기도 힘듭니다.
- 문장 17.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 문장 18.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입니다.
- 문장 19. 굿 안 했다, 사이비 종교 아니다.
담화문 전체에서 가장 분명하게 천명하는 문장이다. 피동형 문장이 없다. 주어도 분명하다. 갑자기 너무 극명하게 분명하다. 강한 부정이다.
- 문장 20: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문장 21: 호소드립니다.
- 문장 22: 용서를 구합니다.
- 문장 23: 앞으로 사사로운 인연을 끊고 살겠습니다.
- 문장 24: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 문장 25: 앞으로 ~ 밝힐 것입니다. (기회가 될 때, 기회가 되면 : 조건문임)
- 문장 26.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잘못이 드러나면, 이라는 조건문)
- 문장 27. 국민 여러분, 또 부른다. ‘국정은 중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 문장 28. 주어: 대한민국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 문장 29: 정부는 ~ 회복해야 합니다.
- 문장 30. 받아들이겠습니다.
- 문장 31. 사죄드립니다.
총 31개 문장 중 13개가 본인의 감정을 호소하거나 타인의 감정에 호소하는 말이다.
심리학에 보면 ‘나 전달법’이라는 의사소통 방법이 있는데, 이는 의사소통 당사자의 어떤 행동 등이 내게 아주 불쾌하거나 거슬릴 때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혹은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고 ‘나는 이렇게 느껴’라고 말하는 효과적인 전달법이라고 말한다. 이건 상대가 이런이런 행위를 해서 내가 기분이 아주 안좋아,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랄까.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너희가 이러해서 내가 기분이 이러이러하다’만 총 13개 문장으로 전달하고 있다. 자기 객관화 능력 없으며, 상황을 지성으로 분석하지도 못하고, 감정으로 호소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써준 사람은 한국인들은 감정적으로 잘 격동되고 선동된다고 믿는 이로, 그 점에 십분 호소하려고 작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 대필자가 놓치고 있는 지점이 있는데, ‘나 전달법’은 어디까지나 상당히 믿고 신뢰하는 관계에서 ‘니가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마음이 아파’를 전달할 때에만 효과적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무심코 너를 아프게 하는 행동을 했어”라고 생각하며 돌아볼 수 있게 하니까.
그러나, 신뢰가 깨진 경우에는 이게 작동하지 않는다. 자기 잘못은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조건문으로 교활하게 빠져나가면서 “니네가 이러면 내가 마음이 아프지.”라고 말하면,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니 감정만 감정이냐 ㅆㅂ”이라는 반응이 충분히 나올 수 있기 때문. 그래서 이 감정 비빔밥 담화문은 작성자의 큰 오산이라고 본다.
문장 8이 가장 무시무시한 언명을 역설로 가장해 전달하고 있으며, ‘저는’을 주어로 책임을 지겠다는 문장(문장 11, 문장 25, 문장 26)은 죄다 조건문이다. 현실을 인정하는 문장은 피동형 문장 ‘되었습니다’이다. 절대 ‘저는 ~ 했습니다”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어가 ‘저는’ 으로 분명히 드러나는 문장은 조건문이거나(드러나면 책임지겠다) 혹은 변명이다. (저는 외롭게 살아왔다)
담화문의 결론은 국가의 운명을 걱정하는 당위로 범벅을 하고 있으나, 마치 ‘짐이 곧 국가다’ 식의 18세기 프랑스 절대 군주의 믿음을 가진 것처럼 “나를 위기에 처하게 하는 것은 곧 국가를 위기에 처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위기의식을 조장하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이고 대통령은 한 사람의 시민일 뿐이다. 국가와 동일시 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망각하고 대중이 우매하여 그렇게 받아들여줄 거라고 (실제 5%가 그렇게 하고 있긴 하다) 믿고 던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문 : Joyce Park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