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맨 처음으로 대학병원에 입사하면 인턴이 된다. 인턴은 4주씩 13개의 과를 1년간 추첨으로 순환근무한다. 그 과의 핵심 업무를 맡기는 어렵지만, 옆에서 지켜보고 같이 일하면서 일종의 대리 체험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과의 업무를 곁에서 볼 수 있는 인턴 과정을 마치면 자신이 가고 싶은 과를 지원할 수 있다. 그리고 합격하면 수련 과정을 통해 그 과의 전문의가 된다. 나도 이 과정을 거쳐 현재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되었다.
나의 첫 순간
우리의 처음은 언제나 깊은 인상을 남기듯이, 이 길고 험난한 수련 과정에서 내 뇌리에 유독 남는 것은 인턴 첫 번째 근무, 첫 번째 달이었다. 그 과는 신경외과였다. 마침 두 명이 있어야 할 인턴이 그 달만 단 한 명뿐이었다. 두 명이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일해야 간신히 업무가 돌아가는 엄청난 과였지만, 햇병아리 의사 한 명이 그 일을 감당해야 했다. 나는 막 의업을 맡은 사명감으로 미친 듯이 일했고, 덕분에 제대로 잠을 자는 것조차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더 치열하고, 또 누구보다 더 가까이에서 신경외과 인턴을 보냈다. 힘든 기억이었지만, 정말 대단한 분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가득했다. 사람이 머리를 다치는 일은 불시에, 치명적으로 일어난다. 다른 몸의 일부와는 다르게, 사람의 의식이 즉시 흐려지고, 회복돼도 그전의 사람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망 선언도 응급의학과만큼, 아니 오히려 더 많이 할 수도 있다. 선언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이전과는 달라져버리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의 사회적 사망 선언을 할 일도 잦았다.
이런 신경외과의 분위기를 병원의 모두가 알고 인정했다. 병원에서 통용되는 농담 중에 하나는 이런 것이다.
병원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신경외과 1년차다. 그다음으로 바쁜 사람은 신경외과 2년차고, 그다음은 3년차, 그다음은 4년차다. 그리고 그다음이 정형외과 1년차다.
이 농담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할 만큼 신경외과 의사들은 바빴고,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첨예하게 한 환자의 일생에 영향을 미쳤다. 그들이 보호자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 수술을 해도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안 하면 죽습니다.’였다. 그들은 이 말조차 시간이 부족해 소리 지르듯이 던져놓고 수술방에 들어가곤 했다.
나는 의업을 시작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그들을 동경했다. ‘죽음’과 ‘불행’을 가장 곁에서 보고 책임지는 사람이 그들이었고, 내 선택지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지워진 것도 그들, 신경외과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너무 심하게 바쁘기 때문에 글을 쓸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처 시작되지 못한, 그의 첫 순간
서론이 길었지만, 나는 이 신경외과 의사가 쓴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미국의 신경외과 의사 폴 칼라니티가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는 책이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했고, 예일 의과 대학원에 진학해 의사가 되었다. 졸업 후, 그는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 병원으로 돌아와 6년간의 레지던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이 치열한 과정의 막바지에, 그는 허리 통증을 느끼고 모교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다. 그리고 그 결과를 보고, 자신이 폐암 4기라는 것을 자기 스스로 깨닫는다. 그는 삶의 의지를 불태우며 투병하고, 의사로서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결국 종양이 뇌로 전이되어 서른여덟 살의 나이에 죽는다.
이 과정이 어찌 기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영문학을 공부했던 그는, 이 생의 막바지에 자신의 기구한 삶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일념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진료를 받으려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글을 썼고, 화학 요법을 받으면서도 썼다. 그 기록이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한 권의 책이다.
이 책은 출간 즉시 화제가 되며 <뉴욕타임스>, 아마존 종합 1위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부럽게도) 현재 베스트셀러 10위권 내에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내가 그의 순간들을 만났을 때
나는 의료 현장을 기록하는 작가이자 현업 의사로서 이 책을 흥미롭게 집어 들었다. 게다가 의업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신경외과는 응급의학과보다도 더 믿을 수 없는 일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과이다. 그 현장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나는 궁금했다.
하지만 이 책은 치열한 현장보다는 저자 폴 칼라니티의 개인적인 삶을 일렬로 기술하는 데에 집중한다. 그 삶에는 조용한 사막에서 보냈던 유년 시절도 있고,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하던 학부 시절도 있고, 그의 삶에서 관조할 수 있는 환자들의 불행과 치열한 현장도 있다. 그리고, 삶이 창창대로라고 생각했을 때, 폐암 4기라는 절망적인 결과를 받아들고, 자신이 지금껏 진료했던 환자들의 심경과 자신이 환자가 된 참담한 심경을 교차한다. 그곳에는 저자의 비참하면서도 때로는 희망을 놓지 못하는 갈등이 있다.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
이 문장을 평범한 의사가 적었더라면 마음의 파장이 조금 적었을까. 독자들은 그가 결국 지옥으로 떠밀리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문장은 어떤 사람의 문장보다도 더 심금을 울린다. 자기가 만났던, 열두 살에 140킬로그램의 몸무게로 괴물이 된 사람, 언어나 사고를 잃고 하루 종일 욕설만으로 일과를 열고 닫는 사람, 두피를 절개하고, 요란한 드릴 소리와 함께 뼈가 타는 냄새가 나고, 뼛가루가 수술대 위에서 흩날리며, 두개골을 열어젖힐 때 우지끈 소리가 나던 자신의 환자들.
그리고 0.0012퍼센트의 확률로 서른여섯 살에 폐암에 걸려, 자신이 만나고 죄책감을 느껴가며 살려내려고 했던 환자의 입장이 된 자신.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중반부, 그가 폐암을 진단받고 이 장면들을 교차하며 삶의 의지를 불태우다가, 자신의 병을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음에 절망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 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라고 그는 썼다. 이 문장에 쓰인 사실을 그는 그전에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고, 읽는 사람들도 전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언부언인 이 문장이 꼭 필요했던 것은, 그의 눈앞에 죽음이 너무 가깝고도 처절하게 다가와 버렸기 때문이고, 이 문장을 읽는 사람이 전부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에 이어지는 그의 당연한 문장은 우리의 마음을 울릴 수밖에 없다. 이 책의 마지막까지 그는 이러한 불안감을 기조로, 하지만 희망을 놓지 않고 토론하고 또 사유하며 결국은 죽음을 맞이해 간다.
그의 숨결이 나에게 날아왔을 때
죽음과 가까운 글은 아름답다. 그래서 그의 유작인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그가 결국 암 진단에도 레지던트 막바지 일을 하다가, 뇌종양을 발견하고 병상으로 돌아갈 때 한 표현이다.
다시 한번 나는 의사에서 환자로, 주체에서 객체로, 주어에서 직접 목적어로 돌아왔다.
이렇게 문학으로 자신의 처지를 표현할 만큼, 그의 문체는 제법 치밀하고, 의사로서도 아주 선하고 사려 깊은 지점에서 환자를 마주한다. 하지만 마지막 환자가 자신이 되었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의 글을 더 볼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 책이 지구 변경에 있는 나에게 날아와, 그 치열한 지점을 일깨워준 것만으로 나는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