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늘 흥미진진하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강력한 국제적 입지도 중요하지만, 오늘날 대통령제 민주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정치현상의 가장 선명한 모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두 개의 정당이 정치를 압도적으로 좌우하면서, 강력한 지역 자치와 경쟁 과정의 철저한 보장으로 보완하는 방식이다. 그런 식으로 도덕률과 개인의 자치 같은 미국 맥락의 보수성을 표방하는 공화당, 사회보장과 문화적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민주당이 정치의 양자택일로 주어지곤 했다.
하지만 중산층 붕괴형 경제 변화와 그에 맞물린 지역 공동체의 재편 속에, 정치과정 자체에 대한 불신이 크게 터졌다. 우리 가족은 집을 잃었는데, 정부는 ‘월스트릿’ 금융부자들에게 퍼주더라. 우리 가족은 일자리를 잃었는데, 새 일자리를 만드는 대신 외국에서 물건과 사람을 수입하더라. 의회는 개혁한다더니 매번 대충 타협하더라. 공동체가 흔들리는데, 정체성 이슈나 다루더라.
이전 시대라면 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만은 정치 시스템 안에서 조직화될 수 없기에 무시되었겠지만,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은 다르다. 정치자금의 대규모 소액 모금, 주류 뉴스미디어를 우회한 대중 소통, 무엇보다 경선 과정의 강력한 바람몰이가 당연해졌기 때문이다. 이전 선거의 네이더나 페로처럼 사실상 양당제 사회의 제3의 후보로 나오는 승산 없는 캠페인이 아니라, 양대 정당의 틀거리 안에서도 독립 후보 같은 개성을 무기 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 위에서 2016년 미 대선은 민주당 대 공화당이라는 구분과 함께, 기성 제도권 정치 대 기성정치 혁파를 외치며 민중을 직접 동원하는(‘포퓰리즘’) 구도가 결합하여 경선이 진행되었다. 민주당의 기성정치권 입지로는 국무장관 출신 힐러리 클린턴, 기성정치 혁파로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가 나왔다. 공화당의 기성정치권으로는 후보들이 난립했고, 기성정치 혁파로는 기업인이자 리얼리티쇼 스타인 도널드 트럼프가 출마했다.
제도권 정치 불신의 포퓰리즘에 기대는 후보들이 강력하게 대두된 일종의 4파전 결과, 민주당은 상대방의 공격으로 부패 이미지를 과도하게 뒤집어쓰면서도 꾸준히 다인종 지지를 이끌어낸 클린턴이 이겼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불만에 대해 통쾌한 막말과 명쾌한 적대를 트위터로 터트려댄 트럼프의 손을 압도적으로 들어줘 버렸다.
그렇기에 사후 대처에서 두 정당의 차이가 역력했는데, 민주당은 샌더스 측이 내민 진보적 의제를 일부 수용하며 통합의 메시지를 만들어냈다. 반면 공화당은 궤멸적인 정책 주장을 양산하는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가 갈등 속에 분열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 구도를 마주하며, 전자가 소외된 목소리의 수용과 정책적 현실성을 조율하는 과제를 정면으로 받아들였다면, 후자는 당장의 분노 표 앞에, 정당의 가치체계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사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클린턴이 최종 당선된다면 오바마 정권의 정책을 이어가기로 한 만큼 외교, 통상, 국방에 있어서 지난 8년과 큰 틀의 변화는 적을 전망이다. 만에 하나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세계적 불확실성 속에서 경제와 국방 측면에서 불안한 시기를 거치겠지만, 다행히도 대통령 한 명이 그간 외교 관계의 모든 것을 일거에 뒤엎을 정도로 미국의 정치체계가 역동적이지는 않다.
다만 기왕이면 저성장과 분배 평등 악화, 합리적인 사회 통합 실패 속에서 정치 효능감이 바닥을 치는 것으로 가히 미국에 뒤처지지 않을 한국 사회의 정치가 지평을 확장하고 있는 민주당을 배우고, 가치체계가 무너지고 있는 공화당을 반면교사 삼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원문 : capcold님의 블로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