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터져 나올 신나는 기사와 글들을 두근두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조금 무섭다.
JTBC의 춤사위 한 번에 세월호, 백남기 등의 키워드에 분노해 오던 진보적이라는 인사들이 축제 분위기인 양 신나게 씹어대며 급격한 감정승화를 경험하고 있고, 미디어는 포문을 열었다. 밉고 원망스럽던 대통령은 갑자기 허수아비가 됐고, 간만에 풍자와 해학으로 속 시원한 나라가 됐다. JTBC의 춤사위 한 번에.
나는 작년에 본, 홍석현 씨가 경희대에서 했던 예전 발언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당시에 중앙일보의 형제 보광그룹의 STS반도체 코아로직같은 회사들이 골로 가던 때라, 홍석현 씨나 홍라희 씨가 도와주네 마네 하는 관련 뉴스를 찾다 이 기사를 본 것 같다. 언론사주이지만 미디어에서 전면에 나서거나 사진을 볼 일은 별로 없었는데 저기선 굉장히 공격적인 발언들이 많았다. 패를 바꾸거나 차기 대권 도전을 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 싶었다.
그 자리에서 홍석현 씨는 손석희 씨를 통해 만든 JTBC의 젊은 이미지를 자신에게 덧씌우며 생각 있는 언론사주의 이미지를, 젊은 학생들이라면 다 아는 CU를 자신이 만들었다며 창업자와 성공한 사업가의 이미지를 조합해냈다. 딱 요즘 세대가 원하는 코드. 발언은 대통령감 그 이상이다. 그 이후로 그는 의도한 듯 청년 문화단체 회장이 되어 꿈과 미래를 주도했다. 바둑연맹 회장이라며 이세돌VS알파고 때에도 등장했다. 청년과 혁신 코드를 타며 안 하던 대외활동을 하는 모습이 계속 보였다.
그 하이라이트가 이번 보도일 것이다. 어제를 기점으로 젊은 세대에게는 JTBC가 ‘완전히’ 옛날 민족 정론지와 비슷한 이미지로 꽂혀 버릴 기세다. 얼마 전까지도 그렇게 욕하던 조중동인데 말이다. ‘손석희와 JTBC의 승리’, ‘언론의 승리’, ‘참된 언론인’ 뭐 그런 글도 있더라.
저쪽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예언 운운처럼 이미 다 알았을 얘기를, 총선판 보고 대통령 임기 1년 좀 더 남기고 박정희 기일 맞춰 터뜨리는 게 언론의 승리는 아닐 거다. 언론권력을 쥔 이들이 다 짜 놓은 판이고 홍석현씨의 큰 그림 중 한 트랙이겠지.
중앙 계열이 선빵을 쳐 주니 나머지는 장단을 울린다. 그런데 분명 진보에서 날뛰어 줘야 하는 이슈인데 미디어의 노출 빈도도 기성 언론이 훨씬 앞선다. 딴지일보나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미디어오늘 같은 곳은 잘 보이지를 않는다.
뭔 소린고 하면, 이걸 걸고 넘어지고 싸워서 터뜨리고 승리한 이들이 이명박 박근혜 시절 정치판 진보 셀럽이었던 입담 쩌는 ‘그 논객들’ 이나 보통의 시민들이 아니라, 결국 색깔만 살짝 다시 칠한 기득 보수라는 점이다.
페이지뷰나 키워드 빈도 비교가 가능하다면 알 수 있을텐데. 다 터지고 나면 ‘그거 봐라’ 라고 하는 정도가 대안 진보에선 전부일 거다. 그러다 보니 그쪽엔 실질적인 현실권력이 주어지기 힘들다.
심상정도 문재인도 안철수도 박원순도 이재명도 잘 안 보이고, 앞으로도 한동안 안 보일 것 같다. 새누리당도 ‘충격 받았다? 우리도 피해자였어’ 포지셔닝으로 선 긋기를 시전한다. 이럴 때 여기에 대척점 제대로 만들고 들이받는 위엄 서고 돈 있는 보수가 나와서 손석희랑 결을 같이 하며 스마트함과 미래, 테크, 문화와 예술을 논하면 멘붕에 빠진 일베부터 진보 지지자까지 쓸어담을 수 있을 것 같다.
똑똑한 언론사주이니까 그게 홍석현 씨는 아닐 테지만, 맘 먹고 하려면 할 것 같다는 존재감은 충분히 느껴진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자신이 나서는 대신 다음을 밀고, 이 기세로 미디어권력과 사업을 더 세게 쥐겠지. 삼성을 조카가 쥐었으니, 어르신답게 나서야 할 때도 됐고. 똑똑한 집안인 데다 그 역사 풍파를 다 견뎌낸, 돈도 있는 언론사주의 수십년 내공은 만만한 게 아니다.
아무튼 그래서 신나야 하는데 신나지를 않는다. 비선 실세가 있더라는 얘기가 나올 때 이게 나라인가, 우리는 뭐였나라는 무력감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결국 이들의 끼리끼리가 아니라면 이런 이슈도 누구 하나 제대로 까고 엎지를 못하는구나, 이게 나라냐’ 하는 무력감이 든다.
그리고 ‘실세 파워가 저 정도인데 어쩔 수 없었겠지, 역시 약았네’라곤 반응해도, 최순실한테 돈 준 삼성을 욕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기업은 면죄부를 받았고, 당도 우리 역시 힘들었다며 책임을 피했고, 헬조선은 이상한 사람 탓으로 돌렸고, 보수 언론은 힘찬 새 출발을 한다.
아름답다. 그 케이크 꼭대기에 딸기를 예쁘게 세워 올린 이 남자,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원문 : 강민구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