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꼬마가 창가에 서서 비가 오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목소리예요.”
–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中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영국 온라인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는 케냐 소설가 응구기 와 티옹오를 1위 후보로 올렸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고은 시인도 6위에 오르는 등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자 예측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래드브록스 예측 8위로 순위 권 밖에 있던 밥 딜런이 수상함으로써 호사가들은 갑론을박을 이어가고 있다.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안 되는 걸까.
밥 딜런의 본명은 로버트 알렌 짐머만으로 1941년 봄, 미네소타 주 덜루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그 해는 2차 대전으로 ‘세계는 뿔뿔이 갈라졌고 대혼란이 새로 태어나는 모든 방문자들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시기’ 였다. 그의 아버지는 소아마비로 참전하지 못했지만, 삼촌들은 세계 각지에 파병됐다 모두 살아 돌아왔다. 1951년 초등학교에 다니던 짐머만은 공습 대피훈련을 하며 냉전의 공포와 함께 현실의 모순을 깨달았다.
이러한 깨달음은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의식으로 굳어졌다. 그의 독서법은 책의 중간을 펴서 몇 페이지를 읽고 괜찮다 싶으면 처음부터 다시 읽는 방식이었다. 그는 주로 시집을 즐겨 읽었는데, 바이런과 쉘리와 롱펠로우와 포우의 시를 읽었다. 포우의 <종>이라는 시는 암기해서 기타로 멜로디를 붙일 정도였다.
그렇다고 시만 읽은 것은 아니다. 고골리와 발자크, 모파상, 위고, 디킨스의 소설도 읽었고, 역사 속 인물들의 전기와 서구의 신화, 쥘 베른의 과학 소설도 탐독했다.
기차길옆에 살았던 짐머만은 수증기를 내뿜으며 뉴저지를 통과하는 밤기차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다. 잠이 깨서 바라 본 창문 너머로 교회의 종이 울리고 있었다. 다시 잠들기 전에는 라디오를 들었다. 작은 스피커를 부술 듯한 로이 오비슨의 목소리로 라디오를 처음 접한 그는 킹스턴 트리오와 브라더스 포, 조디 레이놀스의 노래에 빠져 어린 시절을 보냈다. 포크, 컨트리, 로큰롤 등 모든 장르를 즐겨 들었지만, 그 중에서도 우디 거스리의 포크송을 더 좋아했다.
“노래는 나의 개인교사였고 현실의 변화된 의식으로 가는 안내자였고, 해방된 공화국이었다.”
1960년 11월, 미네소타 대학에 다니던 밥 딜런은 포크가수가 되기 위해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로 향했다. 그 당시 그리니치 빌리지는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로, 밥 딜런의 우상 우디 거스리의 정신이 계승되는 곳이었다. (우디 거스리는 서민들의 피폐한 삶을 노래한 포크계의 거장으로 그가 쓴 가사는 사회비판적 메시지가 강하게 담겨 있었고, 철학적이기까지 했다.) 고향에서 무작정 올라온 밥 딜런은 ‘카페 와(Wha?)’라는 허름한 라이브 클럽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는다.
카페 와에서 연주한지 1년이 지날 즈음, 짐머만은 점차 재능있는 가수로 인정받게 됐다. 당시 가장 유명한 클럽 개스라이트의 무대에 서기도 하고, 우디 앨런 등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게 됐다. 이 무렵 우연히 딜런 토머스의 시를 보게 된 짐머만은 자신의 이름을 밥 딜런으로 고친다.
이후 조안 바에즈와 만나게 된 밥 딜런은 그녀를 통해 승승장구하게 된다. 바에즈의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하며 명성을 쌓고, 메이저 음반사인 콜롬비아 레코드에서 첫 음반을 내게 된 것이다.
이후 밥 딜런은 1960년대라는 시대상과 맞물려 베트남전 반대운동과 흑인 인권운동에 참여해 많은 저항곡들을 쓰고 불렀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직설적이고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저항의 표현이 아니라 개인의 느낌을 담은 은유로 이뤄져 있다. 특히 아홉 가지 질문을 던지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the Wind)>는 반전노래이면서도 평화와 자유를 갈구하는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로 인해 듣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일으킨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밥은 우리의 마음을 열었다’는 찬사가 무척이나 어울리는 노랫말이다.
이렇듯 저항과 반전의 아이콘으로,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세상을 바꾼 가장 뛰어난 대중문화인으로 꼽힌 밥 딜런의 노랫말은 미국의 고등학교와 대학의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마침내 노벨 위원회도 이에 화답한 것이다.
하지만 밥 딜런이 한국인이었다면 어땠을까. 블랙리스트에 올라 검열당하고, 대관을 하지 못해 공연은 취소되고, 국회청문회에 증인으로 불려나가 수모를 겪고, 보수단체의 고소·고발로 모욕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터무니없어 하는 이들의 생각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은 시인이 매년 물망에 오르고 있는데, 한국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글쎄, 번지수가 틀린 것 같다. 우리에게는 이미 고은 시인보다 더 유명한 수필가가 있다. 그 수필가의 글에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는 다음과 같은 비평을 남겼다.
“박근혜의 수필은 우리 수필 문단에서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는 일상적인 생활 수필과는 전혀 다른 수신(修身)에 관한 에세이로서 모럴리스트인 몽테뉴와 베이컨 수필의 전통을 잇는다고 할 수 있다. (···) 실로 그의 에세이의 대부분은 우리들의 삶에 등불이 되는 아포리즘들이 가득한,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진주와도 같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내년 노벨문학상 발표가 기다려진다.
원문 : 북클라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