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소리를 찾는 과정이 어려운 이유는 나의 ‘기질’이라는 것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질을 둘러싸고 있는 꺼풀들을 하나씩 벗겨내야 온전히 나를 이해할 수 있다.
산업사회 혹은 공장경제에서는 일자리와 개인특성 간의 간극이 크다. 그 간극에서 오는 불일치 때문에 대부분의 우리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 우리는 거대한 공장이 만들어놓은 표준과 효율 속에 끼워 맞추며 산다.
그런데 불일치가 문제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는 경제학자가 아니지 않은가. 직장인인 우리에게 더 큰 문제는 불일치의 삶 속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장애들이다. 그 장애들이 오롯하게 나를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나를 오롯이 못 보니 내 강점을 찾고 자신감을 찾는 일이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보자. 나의 지인 중 한 명은 현재 한 이커머스 회사의 재무부서에서 FP&R (Financial Planning & Reporting) 업무를 하고 있다. 규칙적인 보고서들을 만드는 일도 있지만, 회사에서는 그것보다는 프로젝트성 분석을 더 요구한다. 그 범위도 넓다. 때로는 인건비 비용의 효율성을 분석해야 하고 때로는 전사적 전략을 짜야 한다. 일종의, 경영층에서 갖고 있는 궁금증을 숫자로 보여주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숫자를 다루는 직업이지만, 기업 재무분석팀의 역할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다. 사내에 존재하는 숫자들을 이해하려면 그 의미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요새 이 사람은 고민한다. 과연 본인의 업무가 적성에 맞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대부분의 우리처럼. 처음에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측면이 재미있었다. 회계를 전공했으니 숫자를 다루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직급이 올라가면서 자꾸 타부서 사람들과의 의견충돌이 잦아졌다. 경영층에서 내놓으라는 정보에 대해서 인사부나 영업부의 협조가 엉망이다. 그들은 본인을 경영층의 스파이같은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영층의 요구도 짜증이 난다. 툭하면 이상한 분석을 해달란다. 재무분석의 일관성이 없고 임기응변식의 자료 찾기만 시킨다. 지쳤다.
이제 이 사람을 둘러싼 ‘장애’를 한번 살펴보자. 본인 기질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장애들에는 상황, 동기, 역량, 경험이 있다.
- 상황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하는 현상적인 것들이다. 사례의 경우, 이 사람의 상황은 피로감이다. 이 피로감은 사내에서 꼬인 인간관계와 업무부적응으로부터 온다. 이 상황을 본인의 기질에 곧바로 연결할 경우, 즉 자신이 사회성이 떨어진다거나 참을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실수하기가 쉽다. 상황과 본인의 기질은 너무나도 거리가 먼 두 개념이다.
- 동기 이 일을 하고 싶은가의 질문이다. 이 사람의 경우는 반반이다. 회계전공자로서 막연히 엇비슷한 재무분석의 일이 본인 적성에 맞을 것 같았는데, 그리고 초기에는 괜찮았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동기부여의 상태가 본인의 기질일까? 역시 아니다. 열심히 잘하고 싶다고 그것이 본인 적성이라는 법도 없고,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고 그것이 본인의 기질이라는 법도 없다.
- 역량 해당 업무를 해낼 능력이 있는가의 질문이다. 사례의 경우 어느 정도의 불일치가 있어 보인다. 대인관계, 상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불확실성에 대한 내성 등에서 다소 부족한 면이 있어 보인다. 기술적인 부분 즉, 숫자와 재무회계에 대한 능력은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이 역량이 본인의 기질인가? 역시 아니다. 물론 상황과 동기부여보다는 본인의 기질에 좀 더 가까운 성질의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본인의 적성과는 같은 개념은 아니다.
- 경험 경험이란 것은 상황이나 동기부여, 역량보다 자신의 기질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요소다. 본인이 어떤 업무 및 삶의 경험을 해왔는지를 돌이켜보면 기질을 설명하기 수월해진다. 사례의 경우, 이 사람은 동료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했을 때 그것을 극복해본 경험이 없다. 또, 변화무쌍한 업무나 경험을 해본 적도 별로 없다. 그러니 비정형적인 업무가 까다롭게 느껴지고 동기부여가 잘 안되는 것이다. 유년기와 청년기의 성장 과정은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아버지는 한 직장을 30년 동안 다닌 분이었고, 외아들인 본인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분이었다.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고나 할까. 인간관계 측면에서는, 사례의 경우 이율배반적이게도 매우 사교적인 사람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즐기고 다양한 친구들이 있다. 혼자 자라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 다만 속내를 모두 공유하는 절친은 거의 없다.
- 기질 수차례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이 사람의 기질은 사교적이며 항상적이었다. 그는 깊은 인간관계보다는 넓고 얕은 인간관계를 선호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좋고 적당한 거리를 갖는 게 좋다. 그런데 이 사람은 변화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사람 관계는 새롭고 다양한 것이 좋지만, 자신만의 일은 한 가지를 하는 게 좋다. 그 일은 비교적 예측이 가능한 성질의 것들이다. 그래서 이 사람은 회계를 전공했다. 회계직무라는 것이 규칙적이고 반복적이며 항상적이고, 장시간 동안 전문성이 쌓이는 직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이 사람은 삶의 예측 가능성을 선호한다. 3년, 5년, 1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이 불확실한 게 싫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기질이라는 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정답도 오답도 없다. 그저 우리 모두는 다를 뿐이다) 대부분 사람의 기질이라는 것은 청년기 이전에 정해진다. 성장 과정에서 결정된다. 사례의 경우 역시 자라난 환경과 경험이 본인의 기질을 형성했다. 그리고 기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 기질을 이해하고 나니 본인의 상황, 동기, 역량, 경험이 보다 잘 설명되었다. 현재 맡고있는 업무가 본인 기질과는 거리가 좀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당장 업무를 바꿔야 하는 건 아니다. 공장경제에서의 개성과 업무의 불일치는 당연하리만큼 흔한 것이다. 이 사례의 경우 집중해서 생각해봐야 할 점은 역량과 경험이다. 아직 젊은 나이기에 새로운 경험을 충분히 쌓을 수 있다. 비정형적인 재무분석업무의 본성을 배우면 되고,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대화 방법을 배우고 경험을 쌓으면 된다. 그러면 동기부여가 자연스럽게 된다. 상황은 저절로 해결된다.
다만 이 말이 본인의 기질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기질은 잘 안 바뀐다. 그렇다고 기질에 맞는 일만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공장경제의 영향이 아직도 세상을 지배하는 시절에는.
단지 본인 기질과 다소 다른 역량과 경험을 쌓을 때 기억해야 할 점은, 본인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새로운 경험과 역량을 쌓았다고 기계처럼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1리터 소형차에 광폭타이어를 달았다고 스포츠카가 되지 않고, 스포츠카의 짐칸을 넓혔다고 트럭이 되지 않는다. 잠시동안은 새로운 역량을 배우고 경험을 쌓아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본인 기질에 잘 맞는 일이다.
그걸 평생 못 찾고 직장생활을 끝낼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대부분이다. 왜? 산업사회, 공장경제가 만든 불일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신경제가 우리 삶 속에 하루가 다르게 파고드는 시절이다. 변화가 언제 어디서 당신에게 다가올지 모른다. 그 변화를 잘 준비하는 일은 본인의 강점을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원문 : 직장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