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프로세스와 제도를 사랑한다. 어떤 과정이 실수를 줄이도록 충분히 신중하게 설계되어 있다면 의무적으로 그 과정을 거치는 것만으로 실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적으로 실수 가능성을 줄여버리는 것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난 행동경제학 계열 책을 싫어한다. 왜냐고? 행동경제학 서적은 보통 내가 왜 실수하는지는 설명해주지만 그 실수를 막을 수 있는 처방을 내려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확증편향’, ‘소유효과’, ‘처분효과’, ‘행동편향’ 알고 있는 그놈의 ‘편향’만 해도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는데, 내 실수는 그닥 줄지 않는다. 그냥 실수하고 나중에 “아 그런 이유로 내가 실수했구나” 정도를 깨닫게 해주는 가치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굳이 시간을 내서 행동경제나 행동재무 계열 책을 읽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심리적 편향에 대해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 프로세스와 제도를 제공해준다. 와, 사랑스럽다. 딱 하나 제목만 빼고, 원제가 <The little book of behavioral investing>이다. 근데 이걸 워렌 버핏처럼 투자심리 읽는 법이라니… 으으.
썰은 간단히 풀고, 책에서 인상 깊은 부분(결국 실수를 줄이도록 만들어주는 방법론)에 대해서 소개해보자.
1. 충동적 투자자 vs 치밀한 투자자 부분
이 부분에서는 시장이 패닉에 빠졌을 때 동요하지 않고 ‘저가매수’한다는,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실천하지 못하는 행동을 어떻게 하면 내가 할 수 있을지 방법을 알려준다. 존 템플턴 경의 방법이다. ‘미리 준비하고 선약해라’라는 것이다.
존 템플턴 경은 투매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 살 주식을 ‘미리’ 정해놓았다고 한다. 경영실적도 좋고 BM도 좋지만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는 회사들을 이런 위시리스트에 담아두었다가 시장이 폭락해서 다들 패닉에 빠져서 이런 종목들까지 정해둔 가격 이하로 내려오면 기계적으로 해당 종목들을 사들였다고 한다. 초인이 아닌 이상 이게 시장 패닉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기억하라. 미리 준비하고 선약해라.
2. 공포에 파는 투자자 VS 투매에 사는 투자자
이 부분은 공포에 빠졌을 때 투매에 빠지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제레미 그랜덤과 세스 클라먼의 충고를 바탕으로 조언한다. 미리 ‘투자 전투 계획’을 세워두라는 것이다.
이건 사실 템플턴의 경우에서 보여준 ‘미리 선약하라’의 또 다른 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도 이런 지적을 예상했던 것 같다. 다시 세스 클라먼의 조언을 더해준다. ‘극단적인 스트레스 요인들을 없애라’는 것이다.
공포에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챙겨야 할 것은 하나다. ‘이성’이다. 근데 이 이성을 항상 유지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세스 클라먼은 항상 이성적인 생각을 유지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하는 극단적인 스트레스 요인들을 없애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 좋은 투자 기회가 없을 때는 현금을 보유하려는 의지
- 명확한 매도 원칙
- 확실한 위험회피 전략과 레버리지를 쓰지 않는 것
이 3가지 체크리스트만 확실하게 지켜도 패닉에 빠졌을 때 ‘또라이 같은’ 결정 내릴 가능성이 줄어들 것 같다. 기억하자.
3. 아전인수 투자자 vs 회의주의 투자자
이 부분은 인간의 과잉 낙관주의에 대한 처방을 담고 있다. 인간은 확증편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실을 아전인수식으로 본인에게 유리한 방식대로 해석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주식을 사서 호재인 뉴스가 나오면 ‘호재니까 오르겠구나’, 악재인 뉴스가 나오면 ‘악재가 나왔으니 이제 호재만 남았어’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 은근히 많다. 그래서 모든 일에 회의주의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근데 이 회의주의적 관점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 저자의 대답은 이렇다. “왜 이 주식을 꼭 보유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라는 것이다. “이 주식을 보유해서 안 될 이유가 뭘까?”라는 질문은 안된다. 보유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것도 생각보다 어렵지만, 보유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도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전자의 답을 못 찾으면 잘못돼도 본전이지만, 후자의 답을 못 찾으면 잘못되면 재난이다.
4. 전문가를 찾는 투자자 vs 스스로 생각하는 투자자
이 부분은 너무 단순하다. 전문가 믿지 마라. 전문가도 모른다. 이게 전부다.
다만, 저자는 의사도 믿을만한 전문가가 아니라고 연구결과를 보여주는데, 그래도 우리 의사는 믿어 줍시다. 유사과학적 대체의학 따위보다는 현대 의학이 훨씬 믿을 만해요.
5. 예측하는 투자자 vs 대비하는 투자자
이 부분에서는 예측하는 투자가 얼마나 위험하고, 적중할 확률이 낮은지 확인시켜준다. 생각해보자. 경제를 예측하고(금리 방향을 예측해서) 어떤 산업 분야가 잘 나갈지 예측한 후에 그 산업의 어떤 주식이 잘 나갈지 예측한다고 해보자. 각각 예측치가 70% 확률로 맞는다고 해도(이건 너무 과도하게 낙관적인 확률이다) 실제로 종목이 맞을 가능성은 24%밖에 안된다. 그런데 우리의 예측력은…
예측해서 투자하지 말자.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은 사실 최선이라기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는 것에 가깝다. 일단 가치평가를 DCF를 기반으로 하는 것은 피하자. 이건 예측할 변수가 너무 많아진다. 차라리 브루스 그린왈드 교수의 방법론처럼 자산가치, 수익가치, 프랜차이즈 가치를 평가해서 넉넉한 안전마진을 갖고 투자하자.
그리고 여기서 <투자에 대한 생각>의 하워드 막스의 조언도 추가한다.
“내가 무시하는 몇 가지와 철저하게 믿는 몇 가지가 있다. 전자는 내가 가치가 없다고 믿는 경제에 관한 예측이 들어가 있고, 후자에는 경기 순환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이 포함돼 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봐요. 그건 모순이에요. 경기순환을 대비하는 최고의 방법은 예측하는 거예요.’ … 중략…
하지만 이것은 결코 신중한 생각이 아니다. 투자는 미래와 연관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이 점을 인정하고 제대로 행동한다면, 즉 선견지명에 한계가 있는 점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핵심은 정확히 모르더라도 자신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이다. 경기순환주기의 어느 단계에 속해 있고, 그것이 미래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것은 타이밍을 예상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순환주기의 규모와 양상을 알려고 하는 것과도 다르다.”
6. 모두 알려고 하는 투자자 vs 필요한 것을 아는 투자자
이 부분은 <신호와 소음>과 맥을 같이 한다. 정보가 많다는 것이 더 좋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의미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이때 저자는 <점검표 활용>을 조언한다. 저자가 투자 시 고려하는 3가지 요인은 이렇다.
- 가치평가 : 이 주식이 정말 많이 저평가됐나?
- 재무상태표 : 이 주식이 파산할 수도 있을까?
- 자본의 운용 : 이 회사의 경영진은 내가 준 돈으로 무엇을 하고 있나?
이 세가지 질문에 대해서만 답을 찾으면 된다는 것이다. 점겸표 활용, 그리고 저자의 3가지 고려 요인 건졌다.
7. 이유를 찾는 투자자 vs 기회를 찾는 투자자
이 부분은 뭐 실질적 방법론이 없다. 그냥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펀더멘털과 어떤 연관성도 없는 경우가 더러 있다. 변동성 무시해라’라는 정도의 조언이다. 케인즈의 어록이 인상적이다.
“보통 변동성이 주식을 싸게 만들지만, 변동성이 만든 불확실성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기회로 활용하지 못한다.”
8. 눈을 감는 투자자 vs 질문하는 투자자
이 부분은 선입견이 주는 악영향에 대해서 다룬 부분이다. 여기서 내가 건진 내용은 “규칙을 알아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에게 정답을 알아낼 수 있느 반대의 사실을 질문하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즉 반증을 통해 가설을 실험하라는 것이다.
옳고 그른 건 반증을 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것이다. 여기서 아주 재미있는 방법론이 <회사를 망가뜨려라> 라는 방법론이다. 확증편향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이다. 우리의 분석이 틀렸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것인데, 이걸 구체적으로 사용한 경우가 페어홈 캐피탈의 브루스 버코위츠다. 이 사람은 투자를 지지하는 정보를 찾지 말고 그 회사를 망가뜨리는 정보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회사를 살펴보고, 돈을 세고, 그러고 나서 회사를 망가뜨리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이 회사가 어떻게 잘못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불황일 때,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 금리가 급등할 때, 아니면 원자폭탄이 발사되었을 때 이 회사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다음과 같은 목록을 제공한다.
“회사가 망한다면 어떻게 망할까? … 중략… 다음은 회사가 스스로 망하는 방법이다. 현금을 창출하지 못하고, 현금이 고갈되어 과다차입하고, 러시안룰렛 하듯이 회사를 운영하고, 경영자는 멍청하고, 이사회는 부정하고, 다악화에, 자사주를 너무 비싸게 매입하고, 거짓 회계처리를 한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망하게 할 방법을 열심히 궁리해보고 답이 나오면 그 방법이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고민해보고, 만약 안 나온다면… 기쁘게 투자하면 된다.
9. 고집부리는 투자자 vs 쿨한 투자자
이건 새로운 정보를 계속 반영해서 의사결정을 하라는, 매몰 비용을 무시하라는 내용을 담은 부분이다. 사실 이건 나도 가진 방법론이 있다. 내가 존경하는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방법론인데, 지금 주가에서 내가 사고 싶으면 보유하고 사지 않을 것 같으면 팔라는 것이다. 책에서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이렇다.
“지금 우리가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주식을 새로 사거나 보유 주식을 팔았을까?”
대답이 긍정적이고, 현재의 투자의견과 부합한다면 괜찮다. 하지만 대답이 No인데 투자의견이 종전과 같으면 지금 자신은 보수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럼 고쳐야 한다.
10. 귀가 얇은 투자자 vs 사실을 찾는 투자자
이 부분은 ‘이야기의 오류’에 빠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다. 이건 쿨한 성공 스토리 따위를 가진 성장주에 사람들이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경우에 대한 경우인데, 나는 뭐 애초에 여기에는 별 영향을 안 받는 것 같아서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그냥 사실에만 집중하라는 것이다. ‘열심히 성장하고 있어. 근데 현금을 못 벌어? 아 성장 스토리가 쿨하다고? 근데 그게 뭐?’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어록이 인상 깊다.
“안전성은 연구 결과와 기준을 토대로 두고 확보해야 한다. 즉 안전성은 자산, 수익, 배당, 확실한 전망치 등과 같은 뚜렷한 사실로 정당화해야 한다. 이를테면 인위적 조작이나 지나친 심리 상태로 왜곡된 시세에 기반을 두어서는 안 된다.”
기억하자. 중요한 건 사실이다. 이야기 따위는 그냥 소설로 즐기자.
11. 실수를 반복하는 프로 투자자 vs 배우는 아마추어 투자자
이 부분은 그냥 한번 읽어보시라. 구체적인 방법론은 딱히 없다. 그냥 ‘버블을 견디려면 레버리지 쓰지 말아라’ 정도의 조언과 벤치마크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조언 정도 참고하면 될 것 같다.
12. 실력과 운을 착각하는 투자자 vs 약점을 보완하는 투자자
이건 사후해석편향에 대한 문제다. 이건 확실히 심각한 문제다. 지나고 나서 보면 ‘다 그럴 만 해서’ 그렇게 보인다. 근데 문제는 이게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도 ‘다 그럴 만 해서’ 그랬던 것처럼 보여서, 스스로를 합리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성찰적 고백을 하는 아인혼이나 소로스와 우리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때 추천하는 방법론은 ‘투자일지’ 쓰기다. 당시 기준으로 일지를 써놓으면 과정상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사후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그럼 사후해석편향으로부터 조금 벗어날 가능성이 열린다.
13. 성질 급한 투자자 vs 우직한 투자자
이것도 구체적인 방법론은 딱히 없다. 세스 클라먼의 카우치 포테이토처럼 행동하라는 조언 정도인데, 이건 별로 그리 구체적인 방법론은 아닌 것 같다. 뭐 절대적인 규칙이 존재하기 어려운 문제라서 그런 것 같은데 버핏의 팻 피치를 기다리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인용하고 싶다.
“나는 투자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업이라고 생가한다. 왜냐하면 헛스윙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타석에 서 있으면 투수가 제너럴 모터스를 47달러에 던진다! us스틸을 39달러에! 아무도 스트라이크를 선언하지 않고, 기회를 잃는 것 말고는 점수를 잃는 일도 없다. 하루 종일 치고 싶은 공을 기다리면 된다. 그러다 수비수들이 잠들었을 때 방망이를 휘두르면 그만이다.”
이게 아무나 되면 누구나 버핏이겠지만 그래도 인상 깊은 구절인 건 확실하다.
14, 15.
그냥 한번 읽어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아예 생략한다(귀찮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진짜 짧게 뭔가 딱 뽑아내기 애매하다)
마무리하며
마지막 16장을 소개하면서 내 총평도 같이하려 한다.
마지막 16장은 ‘결과 중시 투자자 vs 과정 중시 투자자’이다. 이건 뭐 답이 정해져 있다. 전에 마이클 모부신의 <내가 만약 다시 서른 살이 된다면>에서 소개했던 것 같은데, 투자는 기본적으로 우연성이 크게 작용하는 분야다. 그래서 결과만 봐서는 이게 내 결정이 옳아서 잘한 것인지,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결국 결과만 봐서는 아무리 경험을 쌓아도 아무 축적 효과를 누릴 수 없는 분야인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과정 그 자체다. 만약 과정이 옳다면 아무리 우연이 크게 작용한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행운은 기댓값이 0이 되어버릴 테니까, 결국 내 과정이 옳았다면 내게 긍정적인 결과가 기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이 부분은 특별한 방법론을 제시하긴 하는데 너무 진부한 방법론이기도 하다. 템플턴의 “투자법을 심사숙고해야 할 때는 가장 큰 실수를 했을 때가 아니라 가장 성공했을 때다.” 와 그레이엄의 “가치 접근법은 건전한 방법이다. 그 원칙에 전념하고 거기에만 머물러라. 그리고 정도에서 벗어나지 마라” 가 바로 그것이다. 진짜 진부한데 이것 말고는 정말 딱히 답이 없는 것 같다.
아무튼 드디어 끝났다. 정말 유익했고 재미있었고 실용적이었다. 진짜 제목만 빼면 다 사랑스러운 책이다. 즐겁다 즐거워. 역시 강추다!
원문 : DB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