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8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가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논란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다른 대학교 총학생회도 성명서 또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거나, 이를 추진하기 위한 내부작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각 대학 학생사회는 국정원 사태를 둘러싼 논쟁 가운데로 진입했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성명서 발표와 그 영향
시계를 조금 앞으로 돌려보자. 여당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난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 직원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는 정치권의 쟁점으로 부각된다. 이어 대선 개입 사태에 (국정원법에 따라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국정원 직원뿐 아니라 원세훈 전 국정원장까지 연루되었다는 설이 퍼지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봐주기식 수사를 지시했다는 것까지 알려졌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관여했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며 서울대학교 학생사회에서는 ‘국내정치에 개입할 수 없는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행위는 정당한 행위가 아니며, 규탄 성명을 발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규탄 의견에 동의하는 재학생들이 모여 단과대학 학생회와 총학생회에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대한 국가기관의 제대로 된 조사와 국정원의 개혁을 요구하는” 내용의 ‘국정원 선거 개입 논란에 대한 규탄 성명서’를 낼 것을 촉구한다.
그리하여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총운영위원회(학생대표자 회의)에 ‘국정원 규탄 성명서’에 대한 안건을 올리게 되고, 총운위 위원들은 규탄 성명서를 세밀히 검토한 뒤 6월 18일 새벽에 이를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서울대가 앞장서 규탄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전국의 학생사회는 요동치게 되고, 수많은 대학 총학생회가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뒤따라 발표하는 작금의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서울대 총학생회의 규탄 성명 발표와 그 논란
서울대 총학생회가 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하자, 일부 극우층 및 언론의 주도 아래 여러 허위사실이 퍼지게 된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일반적으로 “민중해방의 불꽃”이라는 자기소개 구호(대학사회에서 흔히 ‘FM’으로 불리는 것)를 사용하는데, 이를 근거로 일부 극우층은 “서울대 총학생회는 극좌파이며, 북한의 지령을 받은 종북세력”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예컨대, “민중해방의 불꽃”이라는 자기소개 구호를 사용했다고 해서 서울대 총학생회를 극좌파 또는 운동권으로 규정하는 것은 비약이다. 구호 자체도 극좌파나 종북으로 매도할 만한 단어가 아님은 물론, 실제로 올해 서울대 총학생회를 수권한 ‘서포터즈’ 총학생회는 학생사회의 개혁을 중점으로 하고 ‘비운동권’을 표방하여 당선된 곳이다.
게다가 서울대학교는 92년 한총련 출범 이후부터 단 한 번도 한총련-한대련 계열에게 총학생회를 넘겨주지 않았다. 90년대에는 PD 계열이 독주했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비/반운동권 계열과 PD 계열이 경쟁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므로, 일부 극우층이 주장하는 것처럼 ‘극좌종북세력’ 이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할 수 있다.
또한 서울대 총학생회가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서울대 총학생회는 시국선언을 하지 않았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논란에 대한 규탄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후 정부 당국에서 이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시국선언’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그런데 이 주장을 일부 언론이 ‘서울대 총학생회가 시국선언을 했다’ 라는 뉘앙스의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가 시국선언서를 낭독했다’ 라고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보도가 나온 이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시국선언을 한 것이 아니고, 규탄 성명서를 낸 것’이라고 확실하게 입장을 밝혔다.
전국으로 확산되는 성명서 & 시국선언
서울대학교의 성명서 발표 이후, 전국의 대학 학생사회는 요동친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거나, 심지어 ‘시국선언’까지 하는 학생회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현재까지 약 20여 개의 대학 총학생회가 규탄성명을 발표하거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성명을 발표하거나 시국선언에 동참하지 않은 대학도 국정원 선거개입 사태에 대해 규탄 성명을 발표할 것인가, 시국선언을 할 것인가, 신중하게 접근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대학사회의 국정원 규탄 움직임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전통적인 학생운동조직은 다소 소극적인 경향을 보이는 반면, 오히려 비운동권으로 분류되던 학생회가 규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규탄 움직임은 비운동권 학생회가 먼저 규탄 입장을 발표한 뒤에야 전통적인 운동권 조직으로 여겨지던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이 입장을 내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또 아직까지도 한대련과 연대하고 있는 학생회는 오히려 사태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비운동권 학생회가 주도적으로 국정원을 규탄하는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각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들
국정원 규탄 성명과 관련해 대학사회에서 벌어진 논란 중 대표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부산대/고려대/연세대
서울대가 국정원 규탄 성명을 발표하면서, 언론은 다른 대학도 관련 안건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부산대/고려대/연세대를 지칭하여 ‘곧(19일~20일) 성명을 발표할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재학생들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고 성명 발표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대두하며 학내 논란이 심화되었다. 이는 학생회가 잘못된 보도임을 해명하면서 진정되었다.
실제 언론이 세 학교를 지칭하여 보도했을 당시, 이들은 아직 의사 수렴과정을 거치는 과정에 있거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공식적인 입장은 없는’ 상황이었다.
2. 성신여대
성신여자대학교에서는 흥미로운 상황이 벌어졌다. 그간 ‘탈정치’,’반정치’를 주장하던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학생위원으로 참여한 일이었다. 이에 일부 학생들이 ‘정치하지 않겠다는 총학생회가 정치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며 반발했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서울대학교의 성명서가 발표되며, ‘성신여대도 국정원 규탄 성명을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요청이 빗발쳤다. 그러나 성신여대 총학생회가 이러한 요청을 사실상 강하게 거부하며 논란이 더욱 커졌다. 정치적 이슈라는 이유로 국정원 규탄 성명을 거부한다면, 역시 정치적 행보로 해석될 수 있는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참가도 거부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에 성신여대의 일부 학생들은 재학생 명의로 ‘국정원 규탄성명서’를 발표했으며, 자연과학대와 인문대학도 별도로 ‘국정원 규탄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3. 우석대
우석대학교에서도 성신여대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석대학교 총학생회는 전북 완주군과 전주시와의 통합 이슈와 관련, 학내 의견 수렴 절차를 거의 거치지 않고 찬성 의견을 표명하면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었다. 그러나 반면 국정원의 선거 개입 규탄과 관련해선 신중론을 펼치며 곤란하다는 식의 입장을 내놓았는데, 역시 정치적 이슈에 이중잣대를 갖고 접근한다는 비판에 부딪혔다.
국정원 규탄 성명서, 어디까지 확산될 것인가?
현재까지 대략 20여 곳의 대학이 국정원의 선거개입 논란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했으며, 한대련은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비운동권 학생회와 한대련의 입장이 미묘하게 다른 상황이라, 일부 보수층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제2의 광우병 시위’가 벌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게다가, 이번 성명서가 방학기간 또는 방학 직전에 발표된 관계로 학생들도 모이기 어려운 상황이며, 대부분의 대학 학생회가 이미 국정원 개혁, 정부의 확실한 조사, 관련자 처벌 등 구체적인 요구를 성명서에 명시하고 있으므로 사태가 특별히 더 커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학사회의 움직임은 성명서를 추가 발표하는 선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그 이상은 대학사회보다 시민사회의 움직임에 달려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현재(24일 기준)까지 대학가의 국정원 규탄 관련 움직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성명서 또는 시국선언을 발표: 서울대, 가톨릭대, 덕성여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성신여대(재학생 및 일부 단과대 명의), 전남대, 동국대, 성공회대, 경희대(회기), 경희대(국제), 서울여대, 부산대, 부산교대, 한국해양대, 경상대, 창원대, 국민대
2. 준비 또는 논의 단계: 고려대, 연세대, KAIST, POSTECH, 건국대, 동아대, 한양대(왕십리), 영남대, 경북대, 세종대, 충남대, 한국외대(이문), 공주대(재학생 명의), 삼육대, 제주대, 순천향대, 전국 각 교육대학교
3. 유보 또는 성명서 미발표 입장: 한국외대(용인), 우석대, 성균관대(율전), 성균관대(명륜), 성신여대(총학생회), 서울시립대
4. 기타 입장: 서강대(타대 학생회에 대해 토론회를 제의)
5. 학생회 외 조직의 입장 발표: 서강대(재학생 개인의 성명서), 서강대/이화여대/연세대 교지(서강, 이화, 연세, 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