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에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휴대폰 메모장에 간간히 목록을 채워나가던 A군. A군은 이제 만 4년 차를 넘긴 서른한 살의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결혼 전에 자신의 꿈을 실현해 볼 기회를 엿보다가 드디어 묵혀두었던 사표를 던지며 새로운 도전을 결심합니다. 틈틈이 모아둔 돈도 제법 있고, 이리저리 알아보니 정부지원금을 확보할 수 있으면 수중에 5,000만 원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이만하면 초기 종잣돈으로는 넉넉하리라 생각하면서 어느 시점에 투자를 받아 운영할 계획을 세워봅니다. 이제 나도 곧 CEO입니다.
A군은 평소 기존 오프라인 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의 해결 방법을 모색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를 모바일과 웹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플랫폼 서비스를 만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우선 내가 확보할 수 있는 자금으로 어디에 돈을 써야 할지 추산을 한 번 해보기로 합니다.
- 개발비 (경력직 개발 1명, 디자이너 1명) = 200만 원씩 x 2명 x 12개월 = 4,800만 원
“일단 내가 기획을 하면 되니까 기획자는 빼고, 한 2~3년 차 경력직은 이 정도면 가능하겠지. 어라? 이게 뭐지? 아 맞다. 시작하자마자 정부과제를 받고 한 6개월 즈음부턴 매출이 일어날 거니까 6개월 기준으로 계산해야지. 그리고 나는 매출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힘들더라도 급여 없이 버텨보자.”
- 개발비 (경력직 개발 1명, 디자이너 1명) = 200만 원씩 x 2명 x 6개월 = 2400만 원
- 고사양 조립식 컴퓨터 100만 원 x 3대 = 300만 원
- 모니터와 책상 등 그 외 비품 = 130만 원
- 사무실 임대 (보증금 없는 소호 사무실) 50만 원 x 6개월 = 300만 원
- 식대비 (점심은 제공해주자) = 8천 원 x 3인 x 72일(1개월, 24일 기준) = 173만 원
- 마케팅비 = 100만 원
“이러면 얼추 3,400만 원 정도가 나오니까 6개월 치 예산을 잡고, 여기에서 창업 멤버를 뽑으면 인건비는 줄어들 수 있으니까 혹시라도 사업이 잘 안 되면 1년까지는 버텨볼 수 있겠다.”
자, A군은 앞으로 1년 뒤 어떠한 결과를 나타내고 있을까요. 물론 사업에서 정해진 결론은 없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사무실을 도움받을 수도 있고, 창업 멤버를 확보하여 인건비를 줄일 수도 있는 것처럼 무수히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변수는 존재하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실제 사업을 시작한 A군.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도움을 받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우선은 급한 데로 혼자서 진행하기로 결정합니다. 내 아이디어면 충분히 멋진 멤버들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하였지만, 두어 달이 훌쩍 지나가도록 멤버를 구할 수 없자 일단 초기에 아이디어를 구현할 직원을 채용하기로 합니다.
일단 사무실을 알아봅니다. 미리 찜해두었던 소호사무실로 문을 두드려보니 실제 월 임대료가 3인 기준으로만 하여도 60~80만 원 사이랍니다. 혹시라도 인원이 늘어나면 어휴,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고 생각합니다. 보증금이 없는 대신 예치금도 필요한 상황이네요. 그래서 차라리 상권을 조금 벗어나더라도 보증금 500에 월 30짜리 10평 정도의 사무실을 쓰기로 합니다.
직원을 채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내가 급여를 받을 때는 월 200만 원을 누구 코에 붙이나 생각했지만, 막상 돈을 주는 사람이 되어보니 굉장한 부담입니다. 그래도 믿고 맡기려면 최소 3년 차 경력직들은 채용하고 싶지만 월 200만 원으로 이제 막 시작하는 소기업에 지원자 자체도 없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나름 아이템에 호기심을 가지고 지원한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1명씩 채용하였습니다.
분명 시작할 때 통장에 자금은 꽤 많았었는데, 월 지출 폭이 생각보다 너무 큽니다. 이러다간 몇 개월도 안 되어 바닥날 것만 같습니다. 이때부터 조급해진 대표자는 오로지 자금을 쫓아다니기 시작합니다. 미칠 듯이 너무너무 바쁘지만 내 일이기에 그래도 즐겁습니다. 내일은 보다 더 나은 하루를 기대하지요.
예상하지 못한다면 모든 노력이 그저 의미 없는 바쁨이 될 수 있음을 주의
국가가 가장 잘한 것이 있다면 창업에 대한 인식의 개선과 생태계 조성이라 보이는 데 반해, 가장 잘못 한 것 중 하나는 아무나 쉽게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뛰어든 창업가를 방치해두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치 가계부채는 폭등하고 있는데 저금리 대책으로 대출을 유도하여 서민들 삶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소비 활성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발표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결국 내가 과거에 무엇을 해왔었는지 사업 초기에는 그다지 중요한 이점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지금 나는 회사의 유지와 성장을 위해 가장 먼저 그리고 그다음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만 완전해질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A군이 실제 사업을 하며 들어가는 한 달 기준 비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매월 고정비용
- 인건비 월 200만 원 x (실제 개발 2명 + 디자이너 1명) = 6,000,000원
- (4대 보험료 기업/개인 50%씩 부담) 178,170원 x 3명 = 534,510원
- 점심 (일 8,000원 x 4인 x 24일) = 768,000원
- 야근 시 추가 수당 및 야식비 = 없음
- 세무대리 수수료 = 80,000원
- 공과금 (전기/수도/관리비/인터넷/사무실 전화 + @) = 110,000원
- 사무실 임대료 = 300,000원
= 약 7,912,510원
초기 시설비
- 고사양 조립식 컴퓨터 100만 원 x 3대 = 3,000,000원
- 모니터, 책상, 의자, 마우스 등 비품 및 소모품 = 1,000,000원
- 사무실 보증금 = 5,000,000원
- 소모품비 = @
- 부동산 소개 수수료 = 400,000원
약 9,400,000원 + @
추가 지출 가능성 항목 + 변동비 = 월 비용 ↑
- 회식비 / 주차비 / 정수기 렌탈비 / 사무실 도어록 등 환경에 따른 + @
- 법인의 경우라면 각종 세금, 법무 대리비 등 + @
- 영업활동비 (미팅 등 최소한의 접대비) / 교통비 / 마케팅 / 복리후생 등 판매관리비 + @
참고
- 대표자의 인건비와 4대 보험료 제외 / 기본 고정 생활비 제외
이렇듯 만약 아무런 지원 없이 정말 보수적으로 운영한다고 가정한다면 고작 3명의 직원을 둔 소기업도 6개월이면 약 5,000만 원 이상이 소요될 수 있겠으며, 여기에서 예상할 수 없는 변동비를 고려하면 그 이상으로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체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러한 예상 지출 항목과 비용을 통하여 실제 내가 수중에 들고 있는 자금 대비 최소 언제까지 외부 자금 유치가 가능해야 할 것인지 계획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며, 이제 이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비용을 줄여 나갈 수 있을 것인지를 체크해 나아가는 것이 지원을 미리 기대하며 접근하는 것보다는 훨씬 위험성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예비 사업자금을 미리 계획 혹은 마련하지 못한다면 대표자는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내에 폐업과 대출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정부과제를 통해 지원자금을 받는 다고 한들 몇 개월을 더 연명할 수 있을까요.
특히 어플리케이션이나 웹서비스 같은 IT 업종은 제조업과는 달리 현금흐름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매출이 발생하는 기간이 빠르면 6개월에서 1년 정도로 그 빛을 기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 사이 시장의 변화나 경쟁자들의 심화 혹은 시장 테스트로 인한 소비자 이해 오차 등으로 사업 아이템을 전환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시간과 비용은 더욱 요구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인력도 충원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고요.
따라서, 정말 보수적으로 우리 사업이 초기 1년을 놓고 얼마까지 투입될 수 있는지를 면밀히 따져보고, 그 항목 중에서 세이브할 수 있는 부분들을 우선순위로 내세워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최소 우리가 월 얼마를 벌어야 유지가 될 수 있을지를 파악해봅니다.
만약 복잡하고 귀찮으시면 그냥 수중에 2~3억 정도 들고 시작하시면 되겠습니다. 절대로 힘들어도 버티라는 외부 참조인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마십시오. 때로는 최소한의 실패를 고려하여 적정한 시점에서 마무리 짓는 것도 하나의 사업 노하우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렇게 꼼꼼히 작성된 항목들이 바로 초기 사업계획서 상의 추정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 그리고 투자자금 활용계획에 활용될 것입니다. 힘들어도 버틴다는 것은 이러한 월 지출 비용 대비 유지가 가능한 수준으로 최소한의 자생력이 갖추어졌을 때 그 의미가 배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원문 : 김지호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