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누구 편인지 정확히 가리지 않은 결과 (아래에서 예를 든 경우처럼) 그 피해가 당사자에게만 미치는 경우는 극히 운이 좋은 경우이다. 피해는 당사자, 회사, 변호사 등 관련자 모두에게 미칠 수도 있다.
소위 김영란법 때문에 한국 전체가 폭격이라도 맞은 것 같다. 김영수부장은 회사에서 가장 잘 나가는 영업직이다. 어느 날, 그가 접대차 골프를 친 것이 부패행위라는 신고가 들어왔다. 회사의 사장이 김부장을 불러 고충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민감한 문제라 초기부터 변호사를 통해서 문제를 풀어 가야 할 것 같다면서 어디 잘 아는 변호사 없냐고 물어보았다.
아는 변호사가 없어도 찾아야 할 판이지만, 김부장은 워낙 마당발인지라 꽤 유명한 박영희 변호사와 어릴 때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김부장은 믿고 사장에게 박변호사를 소개해 주었다. 당연히 회사 사장은 박변호사에게 사건을 조사하고 대응할 것을 부탁하였다.
일주일쯤 지나, 박변호사가 김부장에게 연락하였다. 골프 접대 사건 관련하여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변호사에게 하는 말은 비밀보장이 되고, 게다가 어릴 적부터 잘 알던, 게다가 우리 편인 변호사에게 그리고 자기를 이만큼 키워준 회사에게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 김부장은 있는 대로 털어놓았다.
며칠 뒤 김부장은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이 문제를 검찰에서 수사 및 기소하기로 하였고, 검찰에서 자료를 제공할 것을 요청하자 믿었던 박변호사가 대화 내용 및 노트 등 모든 자료를 검찰에 넘겼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미국에서는 실제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고,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Upjohn 사건은 약간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묘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변호사가 인터뷰 전에 자기는 누구 편인지 (즉 회사 편인지 아니면 직원 편인지) 분명히 밝혀야 하는 절차를 (미란다 경고에 비유하여) 업존 경고 (Upjohn Warning) 또는 기업법상의 미란다경고 (Corporate Miranda) 라고 한다. (혹시 결과가 궁금한 사람을 위해 요약하자면, 업존 사건에서 대법원의 결론은 “그렇다”이다. 즉, 회사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법적 허구, 법인일 뿐이지만 비밀유지 특권에 관한 한은 사람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의뢰인인 회사와 변호사 사이의 의사소통 내용은 비밀유지 특권의 적용을 받는다.
이게 왜 기업법상의 미란다경고가 되었는지에 대하여 굳이 추측하자면, 회사가 고객이고, 비밀유지 특권을 갖는 주체도 회사라면, 회사의 임원이나 직원이 비밀유지 특권의 주인이 되면 주인이 두 사람이 되는 셈이어서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핵심적으로 세 가지 정도를 경고해 주어야 한다.
- 변호사는 회사를 대리하지 해당 직원을 대리하지 않는다.
- 해당 직원과 변호사 사이의 의사소통 내용은 비밀유지 특권의 적용을 받는다.
- 그렇지만, 비밀유지 특권은 회사의 비밀유지 특권이며, 회사만이 이 특권을 행사할지 포기할지 결정할 수 있다.
왜 이런 걸 알아야 할까?
회사를 위하여 일하는 입장에서 다양한 이유로 알고도 법을 어길 수 있고, 모르고도 법을 어길 수 있다. 특히 해외 시장에서 활동하는 경우에는 해당 해외 시장의 모든 법규를 다 알 수는 없다.
영업직이라면 부패방지에 관한 법이나 공정거래법을 어길 가능성이 높고, 개발직이라면 특허나 라이센스 등 지적재산 관련 사항을 어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재무 관련 업무를 한다면 공시, 조세 등 챙겨야 할 것이 아주 많다. 심지어 요즘 같은 글로벌 사회에서는 바다 건너라고는 제주도도 못 가본 사람도 미국법을 어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많은 것을 배워 준법정신이 투철한 세계시민이 되는 것도 좋겠지만, 법을 어겼을 때 (내지는 어겼다고 억울한 처벌을 받게 되었을 때) 변호사가 나타나면 그 변호사가 누구 편인지 식별하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생존능력이다.
각주
- 이 이야기는 미국에서는 유명한 Upjohn Co. v. United States, 449 US 383 – Supreme Court 1981 사건을 이해하기 쉽게 약간 변경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묘사한 상황은 미국법에 따라, 미국의 변호사와 의뢰인 관계를 기술한 것이므로, 한국 상황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
- 과문한 탓에 한국법을 잘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변호사의 비밀보장의무는 있지만,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대화에 대한 비밀유지특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의뢰인 비닉특권 및 검찰, 로펌에 압수수색영장 충격 등의 기사 참고. 참고로, 비밀보장의 ‘의무’란 말 그대로, 의뢰인이 한 말을 남에게 공개하지 않을 변호사의 ‘의무’이고, 비밀유지 ‘특권’이란 말 그대로 누군가 (예를 들어 검찰이나 법원이) 이 정보를 요구하거나, 또는 누군가 (예를 들어 변호사가) 그 내용을 공개하려 할 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특권’이다. 이 둘은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상황에서 적용되며, 아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 간단히 말하자면, Upjohn 사건의 주된 쟁점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법인격일 뿐인 회사에게 비밀유지의 특권이 적용되는지, 또 적용된다면 임원에게만 적용되는지 아니면 일반직원에게까지도 적용되는지 하는 문제였다.
- 이 내용 및 기타 상세한 정보는 Ashish S. Joshi, Corporate Miranda를 참고하라.
원문 : lawfull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