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복잡한 일도 아주 사소한 일이나 아주 사소한 실수에서 시작하는 법이다. 이런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실수를 변호사가 저지르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1.
김철수 사장은 1982년 ‘스타’라는 의료기기 회사를 창업하였고, 이 회사의 대표이사직을 역임하였다. 그는 1984년 회사의 변호사로 박영희 변호사를 선임하여 오랫동안 같이 일했다.
1987년 회사가 어려워지자, 은행에서는 회사의 임원진이 개인적으로 채무를 보증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김사장은 자기가 회사의 의결권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해 주면 자기가 보증해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박변호사도 그 회의에 참여하였다.
1987년 12월 17일 이사회에서는 김사장이 보증을 서 주는 대가로 전환우선주 100주를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회사의 자금 사정이 호전되지 않아 한 달 동안 계속 보증이 유지되면 그 주식은 각자 보통주 2백만 주로 전환되도록 되어 있었다. 필요한 계약서와 문서는 박변호사가 작성하였다. 회사 사정은 호전되지 않았고, 김사장은 주식을 전환하여 보통주 2백만 주를 확보하였다.
회사 사정은 계속 나빠졌고,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회사들이 나타났다. 김사장도 참석한 이사회에서 그 가운데 한 회사 VTI에 우선협상권을 주기로 했고, 다른 회사 Chiron에는 협상 해지를 통보하였다. 그런데, 김사장은 그 회사와 계속 교섭하였다.
이 일을 발견한 이사회에서는 김사장을 모든 직위에서 해임시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김사장은 박변호사에게 자기가 다른 이사를 모두 해임하고 새로 이사회를 구성해도 되는지 문의하였고, 박변호사는 안될 일 없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김사장은 그렇게 하였다.
이사회는 소송을 제기하였고, 승소하였다. 김사장은 모든 직위에서 해임되었고, 전환우선주를 전환하여 확보한 주식도 모두 잃었다.
2.
변호사 잘못이었다. 김사장은 박변호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정관상 이사회는 의결권을 넘길 수 있는 권한도 없었고, 따라서 이사회가 의결권을 넘긴 것은 권한 밖의 일이 되었는데도, 그런 점에 대해서 자문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변호사가 이겼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변호사와 소송해서 이길 수는 없다는 뜻도 아니고, 변호사는 잘못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참고로 ‘스타’는 애초에 캘리포니아 회사였는데, 나중에 박변호사가 제안하여 델라웨어 회사로 설립지를 바꾸기는 했으나 업무는 여전히 캘리포니아에서 하고 있었다. 박변호사는 뉴욕에서 일하고 있다.
3.
쟁점은 박변호사가 과연 김사장의 변호사로 일했느냐는 것이다. 당연 아니다. 박변호사는 회사 변호사이다. 즉, 박변호사의 고객은 회사이므로, 회사가 아닌 일개 대표이사에 대하여서 자문할 책임도 없고, 잘못된 자문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질 의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이것이다. 변호사가 법에 대하여 뭔가 이야기를 한다고 하여, 당신이 고객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회사 사장과 회사 변호사 사이에라도 말이다. 제대로 된 변호사라면 당연히 이런 사실을 파악할 것이고, 당연히 고객 (또는 고객이 아닌 사람)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이런 문제가 생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또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돈 욕심밖에 없는 변호사로 보일까 봐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무슨 질문을 했는데 변호사가 이렇게 말할 것을 생각해 보라. “저는 회사 변호사지 사장님 변호사가 아닙니다. 그런 문제에 대하여 자문을 받으시려면 저와 사장님 개인 사이에 별도로 계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얼마나 탐욕스러워 보이겠는가?)
많은 경우, 이런 문제는 직접 챙겨야 할 수도 있다.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자.
“도대체 변호사는 누구이고, 뭐 하는 사람인가?”
변호사는 판사가 아니다. 누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고, 우리 편이 이기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여기서 이야기한 상황은 변호사가 생각하는 우리 편과 우리 편이 생각하는 우리 편이 다를 때 생기는 문제이다.
일단 선임하고 나면, 변호사는 여러분을 위해서 힘껏 도와줄 것이다. 다만,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에 반드시 물어보아야 할 질문들이 있다. 변호사 사용 설명서를 다소 극단적인 경우로 시작한 이유이다.
다음에는 도대체 변호사란 누구인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
원문 : lawfully.kr
각주
아래 각주는 학술적인 의미의 각주가 아닙니다. 오로지 독자의 글 읽기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는 내용들 또는 본문의 주제의 흐름과 관련 없는 이야기들을 글의 흐름에서 벗어난 곳에 기록해둔 것입니다.
- 이 이야기는 Waggoner v. Snow, Becker, Kroll, Klaris, & Krauss (991 F.2d 1501, 9th Cir. 1993)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또 한국의 상식에 맞게 약간 수정한 것이다. 전체 내용을 가감 없이 읽어 보고 싶으면 Waggoner v. Snow, Becker, Kroll, Klaris, & Krauss에서 읽어 보라.
- 위 링크의 의견서를 따라가서 읽어 보면 결과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뉴욕과 캘리포니아 변호사의 책임에 대한 논의도 나온다. 박변호사가 김사장의 변호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제삼자로서 박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일을 처리했는데, 그렇다면 박변호사가 제삼자에 대하여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 문제에 대하여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법은 입장이 다르다. 뉴욕법에서는 계약관계 또는 계약관계와 유사한 관계가 없다면 변호사는 제삼자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다. 캘리포니아 법에 따르면, 변호사는 ‘의도된 자문의 수혜자’ 또는 그의 자문으로 인하여 타인에게 해를 끼칠 것이 합리적으로 예견되는 상황이라면,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