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시청률 20%를 넘은 SBS 드라마 <닥터스>의 주인공 홍지홍은 멋진 의사다. 그는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이들과 싸우며 병원의 시스템을 더 좋게 바꾸려 한다. “병원은 의사와 환자가 공존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라는 그의 말은 병원과 의사의 역할을 제대로 짚고 있다.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드라마에서 악한 사람의 말과 행동은 한눈에 봐도 잘못돼 보인다. 그런데 2016년 한국 사회를 시끌시끌하게 만드는 ‘성과연봉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애매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간절히 원하는 걸 보니 잘못된 것 같긴 한데, 헬조선의 ‘철밥통’들을 보고 있자니 뭔가 필요할 것도 같아 헷갈린다.
성과주의. 성과연봉제나 경영평가 성과급처럼 “네가 성과 낸 만큼 연봉 올려줄게!”라는 원칙으로 기업·기관을 경영하는 게 성과주의다. 성과주의는 예산 편성이나 인력 관리에도 직접 적용된다.
하지만 성과주의는 10년, 20년 동안 그 효과를 명쾌하게 증명하지도 못했으면서 ‘이것만이 해답이다!’ 억지 부리고 있기에 ‘성과만능주의’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이 성과만능주의가 낳은 폐해와 부작용을 찾아보자.
병원의 성과가 더 많은 병원비?
홍성의료원은 충청남도를 대표하는 지역거점 공공병원이다. 이곳의 의사들은 2000년대 초부터 성과연봉제를 적용받았다. 얼마나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는지, 그래서 얼마나 많은 병원비를 받아내는지가 의사들의 ‘성과’로 측정되는 것이다. 진료 성과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기 때문에 의사들은 환자를 많이 보는 방법과 더불어 각종 검사 건수를 높이는 방법까지 동원했다.
원래 복부 초음파 검사는 필요하지 않으면 굳이 안 하는 검사였다. 하지만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서 기초검사로 돌변했다. 필요하지 않은 검사 역시 “병원에 온 김에 검사나 한 번하고 가라”며 권유하기도 했다. 병원에 진료 받으러 온 환자들은 이유도 모른 채 검사를 받았고 의료비도 그만큼 껑충 뛰었다. 또한 검사를 받을 때 환자는 검사의 필요성과 금액, 그것이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설명을 들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환자들이 궁금해 말문을 열 때쯤이면 의사들은 다음 환자를 불렀다.
병원의 검사 건수와 수술 건수는 급증한 반면, 병원 인력은 늘지 않았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각종 검사가 이뤄지는 가정의학과, 응급의학과, 영상의학과, 마취과의 노동자들은 분주해졌다. 이들은 더 이상 환자를 친절하게 대하기 힘들었고 의료사고도 잦아졌다.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불필요한 진료와 서비스를 받으며 병원비는 올랐지만, 의료서비스의 질은 오히려 떨어진 것이다.
비용 절감이 낳은 안전 위협
2016년 5월,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안전문을 정비하던 청년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숨졌다. 2013년 성수역, 작년 강남역에 연이은 사고였다. 2014년 4호선 이수역, 올해 서울역에서도 할머니가 안전문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동자와 시민의 죽음. 이 또한 성과 만능주의와 무관하지 않은 참사다.
언제부턴가 시민의 발 지하철에도 ‘성과’가 요구되기 시작했다. 매년 서울메트로 등 각 기관은 경영평가를 받았다. 경영성과(49점), 경영시스템(30점), 리더십·전략(11점), 정책준수(10점) 4개 분야에 대해 30여 개 세부지표의 점수를 매기고 이를 합산한 성적에 따라 5단계 등급(가~마)을 매겼다. 평가의 핵심 기준은 비용 절감에 있었다. 따라서 서울메트로 사장 및 간부들은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차등 지원되는 예산을 따내는 데 혈안이 되었다.
비용 절감의 결과로 서울메트로의 시설과 장비는 노후화됐다. 철로의 절반이 교체 대상이고, 전동차의 절반 이상이 20년이 넘은 노후 차량이다. 지하철 안전을 담당하는 노동자들 스스로 혀를 내두를 정도다. 최저가 낙찰제로 불량 부품 사용도 용인되었고, 전동차를 점검하는 주기도 길어졌다.
무엇보다 인력을 대폭 줄였다. 지하철 사고를 예방하고 사고 시 안전 조치를 담당해야 할 안전 인력을 말이다.
2급 이상 간부에게는 성과연봉제가 도입됐다. ‘비용 절감’ 경영을 잘할 경우 최대 1천만 원 이상 더 많은 성과급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옷을 벗어야 했다. 노동자들과 시민의 안전을 챙기는 대신 ‘성과’에 목을 매도록 강요당한 것이다.
지금 정부는 성과연봉제 적용 대상을 4급 이상까지 확대하려 한다. 2015년 기준으로 서울메트로의 정규직 8,868명 중 2급 이상은 135명이고, 4급 이상은 4,715명이다. 이는 ‘성과만능주의의 노예’가 지금보다 30배가 많아지고, 전체 직원의 절반을 넘어선다는 의미다.
성과주의, 빗나간 화살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 성과급제가 도입된 지도 벌써 16년째다. 2016년 현재 교육부가 제시하고 있는 ‘성과’의 지표는 △수업지도(수업시간 수, 수업 공개 횟수 등) △생활지도(학부모·학생 상담 실적, 선도 급식지도) △담당 업무(담임 여부) △전문성 개발(연수 이수, 자격증 취득) 등이다. 이에 대한 성과평가를 통해 S, A, B등급의 3단계로 나눠 성과급을 지급한다. 성과급 차등의 폭은 점점 커지고 있다. 교육부는 성과급이 교사들에게 교수-학습 동기를 부여하고 학생들에 대한 책임감도 높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학교 폭력 대응만 보더라도 ‘성과만능주의’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왕따, 일진 등 학교 폭력 문제가 교육계의 큰 문제가 되었다. 처음에 교육부와 교육청은 학교 폭력 발생 건수를 학교장 경영평가와 성과급에 반영하기로 했다. 정책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학교 폭력이 사라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학교 폭력이 발생해도 학교가 사건을 은폐했다.
그래서 평가 기준을 뒤집었다. 학교 폭력 예방 활동을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예방 교육과 상담 실적, 학부모 설명회나 학칙 준수 실천 운동이 그 예다. 그 결과 2013년 시도교육청 평가에서 학교 폭력 건수가 1위인 교육청이 평가에서는 1등을 차지했다. 실적 부풀리기가 손쉬워 평가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미국에서도 교사에 대한 성과급제가 유행이었다. 정부도 학부모들도 학생 시험 성적에 따라 교사의 임금을 연동해 매기면 학생들의 학력이 높아질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교사들은 좋은 결과를 낼 것 같지 않은 학생들(주로 가난하거나 소수 인종)을 가르치지 않는 편을 택했다. 평가 시험 날이면 이들의 결석을 유도했다. 학급 평균 성적을 높이려면 이런 학생들이 없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편 알라바마, 노스캐롤라이나, 텍사스 등 강력한 성과급을 시행하는 곳에서는 교사의 임금이 줄어들었다. 교사들은 신속하게 학교를 떠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갔다. 교직의 위상은 더 좋은 직장으로 건너가기 위한 아르바이트로 추락했다. 상위권 대학 출신일수록 더 많이 일자리를 옮겼다.
이러한 까닭에 교원성과급의 선두주자였던 뉴욕 주는 2011년에 이르러 마침내 교원성과급 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뉴욕 주 보고서는 “교원 성과급은 교사들이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이나 학생들의 시험점수에 대해 뚜렷하게 드러나는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며 폐지 이유를 밝혔다.
모두를 위한 파업!
공공운수노조 산하 철도, 지하철, 병원, 가스,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6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9월 27일부터 대규모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성과연봉제와 저성과자 퇴출제(묶어서 성과퇴출제)에 반대하고 있다. “성과퇴출제의 종착역은 민영화”라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성과퇴출제가 전면화되면 공공기관이 영리화돼 이후 민영화의 토대가 되고, 정부의 민영화 시도를 막아온 노동조합이 무력화돼 이를 막을 보루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주장과 달리 성과퇴출제는 공공기관 운영을 개선하기는커녕 후퇴시킨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GM, GE, 미쓰비시, 어도비 등 많은 글로벌 민간 기업들조차 이를 폐지했다.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성과만능주의를 막무가내로 추진하는 정부에 브레이크를 걸 때다.
원문 : 오늘보다 / 작성 : 배일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