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는 헤엄쳤고 하루키는 달렸다
프란츠 카프카는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라하에서 태어났지만, 카프카는 유대계 독일인으로 삶을 살아야 했죠. 이런 태생 때문인지 그의 삶은 늘 외롭고 고독했습니다. <변신>, <시골 의사>, <성城> 등을 통해 인간 운명의 부조리, 인간이라는 존재의 불안감에 천착했던 그의 작품세계는 아마도 자신의 ‘존재’가 그러했기 때문이라고 미루어 짐작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으며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카프카는 매일 헤엄을 쳤습니다. 철저한 채식주의자이기도 했던 그는 여름이면 몰다우 강에서 하루 1마일(1,600m)씩 수영을 하고 날마다 시간을 들여 체조를 했죠. 폐결핵으로 마흔의 나이에 눈을 감은 카프카, 인간의 불안과 부조리한 운명을 그렸던 카프카, 이런 그가 하루도 빠짐없이 수영하는 모습은 왠지 낯설게 느껴집니다.
책을 보며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카프카가 보험국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꽤 성실한 공무원이었다고 하니 지각도, 결근도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서류 가방을 들고 출근해서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서 소설을 쓰는 카프카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하루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지를 최대한 강고하게 할 것. 또한 동시에 그 의지의 본거지인 신체를 최대한 건강하게, 최대한 튼튼하게, 최대한 지장 없는 상태로 정비하고 유지할 것- 그것은 곧 당신의 삶의 방식 그 자체의 퀄리티를 종합적으로 균형 있게 위로 끌어올리는 일로 이어집니다. 그런 견실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거기서 창출되는 작품의 퀄리티 또한 자연히 높아질 것, 이라는 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글쓰기는 헤엄치고 달리는 일
카프카가 매일 헤엄을 쳤다면, 하루키는 매일 달립니다. 그의 마라톤 사랑은 유명하죠? 하루키는 전업 작가가 되면서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30년 넘게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를 달렸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고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의 정직한 느낌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것은 뭔가를 창조하려는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작업이었구나”라고 통감합니다.
글쓰기는 헤엄치고 달리는 일과 같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헤엄을 친다’거나 ‘달린다’가 아니라 ‘매일’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물론 그런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천재라고 부르고요). 하루키가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일화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책에서 전하는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1978년 4월의 어느 쾌청한 오후에 나는 진구 구장에 야구를 보러 갔습니다. (…) 1회 말, 다카하시가 제1구를 던지자 힐턴은 그것을 좌중간에 깔끔하게 띄워 올려 2루타를 만들었습니다. 방망이가 공에 맞는 상쾌한 소리가 진구 구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띄엄띄엄 박수 소리가 주위에서 일었습니다. 나는 그때 아무런 맥락도 없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야구공이 날아오르는 순간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하루키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년필을 하나 삽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가게(대학을 졸업한 하루키는 재즈 바를 운영했습니다) 일을 끝내고 주방 식탁 앞에 앉아 소설을 썼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소설이 200자 원고지 400페이지 분량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였습니다. 그의 생애 최초의 소설이기도 했던 이 작품으로 하루키는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합니다.
많이 읽을 것, 그리고 관찰할 것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하루키가 생각하는 글쓰기, 특히 소설,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소설가가 되려면 어떤 훈련과 습관이 필요한지 몇 가지 팁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하루키는 소설가가 되려고 마음먹었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게 첫 번째 조언이에요. 왠지 힘이 빠졌습니다. 뭐 대단한 비법이라도 소개할 줄 알았더니 고작 ‘책 많이 읽어라’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조언은 달랐습니다.
그다음에 할 일은 -아마 실제로 내 손으로 글을 써보는 것보다 먼저- 자신이 보는 사물이나 사상(事象)을 아무튼 세세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 아닐까요. (…) 만일 당신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십시오.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하루키의 이 말을 듣고 보니 그의 소설은 정말 그랬던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도, 대단한 이야기도 없어요. 그런데 조금 다릅니다. 등장인물의 성격, 심리, 행동이 다르고 주인공이 생각하는 것이 달랐습니다. 아, 이렇게 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힘은 ‘관찰’에서 나온 것 같아요. 이런 점에서 관찰하기는 결국,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기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루키가 강조하는 것은 일상성입니다. 공무원 카프카, 재즈 카페 사장 하루키가 그랬던 것처럼 매일 쓰는 겁니다. 매일 헤엄치는 카프카, 매일 달리는 하루키처럼 몸과 육체의 균형을 맞추며, 그것이 손가락으로 전달하는 힘을 느끼며, 그저 매일 쓰는 겁니다. 실제로 하루키는 장편 소설을 쓸 경우 매일 200자 원고지 20매 쓰는 것을 목표로 잡고, 그렇게 실천한다고 합니다.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희망도 절망도 없다’는 것은 실로 훌륭한 표현입니다.
“하루씩 꾸준하게!”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글쓰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입니다. 혼자 서재에 앉아 아무것도 없었던 지점에서 가공의 이야기를 일궈내고 그것을 문장의 형태로 바꿔나갑니다.
‘형상을 갖고 있지 않았던 주관적인 일들을 형상이 있는 객관적인 것으로 바꿔 가는 것’, 하루키가 말하는 소설가의 일입니다. 그래서 가장 필요한 자세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굵게 밑줄을 그은 대목이기도 합니다.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취해야 할 삶의 자세가 아닐까요?
One day at a time(하루씩 꾸준하게)!
몇 해 전 체코 프라하를 간 적이 있습니다. 도착하기 전까지도 프라하가 카프카의 고향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때 책 한 권을 들고 갔는데, 바로 <책은 도끼다>였습니다. 카프카가 <변신>을 출간하면서 썼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은 도끼다>를 읽었고, 카프카 박물관을 갔습니다. 모든 게 우연이었습니다.
박물관을 둘러보며 궁금했습니다. 왜 이렇게 우울하고 어둡게 분위기를 만들었을까? 마침 평일이어서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심지어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카프카의 내면과 작품세계를 느껴보라고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카프카 박물관이 아니라 그의 작품 속으로 들어온 기분을 느껴보라고. 또 프라하에 갈 기회가 생기면 카프카의 책을 들고 가야겠습니다.
원문 : 책방아저씨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