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MS 오피스 영상을 봤다. 무편집 영상을 세 번 정도 곰곰이 뜯으며 돌려보니 아마 의원은 서울시교육청이 공개입찰이 아니라 수의계약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걸 지적하려고 했던 듯하다. 위대한 우리 조국의 관습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의미 있고 또 필요했던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MS 오피스를 MS에서 사지 어디서 사느냐는 지적은 핀트가 크게 어긋난 셈이다.
문제는 MS 오피스를 MS에서 사지 어디서 사느냐는 프레임이 워낙 간결하고도 웃기다는 것… 그러니까 파괴력이 크다. 아마 요 며칠은 최고의 합성 필수 요소로 자리매김할 듯하다.
수어 년 전의 내 취미는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이처럼 웃긴 요소를 더욱 과장하고 강조해 짤방과 영상을 만들어 뿌리는 것이었다. 그때는 일말의 망설임이나 큰 고민은 없었다. 솔직히 패러디와 풍자라는 벽에 기대 사유를 게을리했던 것도 있다.
요즈음 내가 이런 작업을 하지 않은 건 물론 먹고 사느라 시간 여유가 매우 줄어서이기도 하지만, 비판의 주체와 객체를 여러 번 겪으며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우호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의 중요성과 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저 영상을 처음 봤을 땐 정말 웃기기 그지없어서, 처음엔 의원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오랜만에 랩이나 한 곡 뽑자 싶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웃음거리로 만들겠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문득 이런 생각도 떠올랐다. 그래도 의원의 말인데. 또 설령 의원이 심각하게 멍청하다고 해도 그 아래의 보좌관들이 어떻게 국정감사를 준비하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그렇게 작정하고 우호적으로 이 의원의 말을 해석하려고 생각하니, 그제서야 들리지 않던 내용이 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서야 처음엔 보이지 않던 문제가 눈에 띄었다.
어쨌든 오해가 생긴 건 의원의 ‘말하기 방식’ 탓이다
우선 이 거대한 오해를 이끈 건 분명 의원 자신이라는 점이다. 의원은 질의 내내 매우 날카로운 목소리와 고압적인 자세로 교육감을 겁박하고 있다. 국정감사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태도 자체는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정제되지 않은 발언의 전개와 맞물려 도무지 비판의 요지를 알 수 없게 만든다. 쉽게 말해 목소리부터 태도, 내용까지 참 듣기가 싫다.
국정감사는 단순히 개인 대 개인의 논박이 아니다. 희대의 명연설을 하란 게 아니라, 예의를 갖추고 알아는 들을 수 있게 이야기해야 된단 뜻이다. 오죽하면 현장에 있던 교육감까지 오해를 했겠는가.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오해를 한 것도 결코 무리나 의도적인 오도는 아니다. 애초에 이 의원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조 교육감의 말로 상황을 인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의원은 해당 문제에 대한 논의나 해결이 목적이 아니었던 듯하다. 그 상황에서 서로의 오해를 바로잡을 능력은 오로지 문제를 제기한 의원에게 있었다. 하지만 의원은 그러지 않았다. 가장 우호적으로 생각했을 때가 의원이 서로의 오해를 의원이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는 문제제기자로서 실격이다. 마이크가 꺼진 뒤에도 고성으로 계속 사퇴만 외친 태도만 아니더라도 내가 감히 이런 말을 꺼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비판의 말하기’는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이은재 의원은 MS 오피스를 왜 MS에서 사느냐고 따져 물으려고 했던 건 아니다. 이 의원은 교육기관의 소프트웨어 구입이 공공입찰로 진행되지 않은 것을 지적하려 했었고, 이는 분명히 논의해 볼 여지가 있는 주제였다. 하지만 이 의원은 정상적인 논의라고 생각할 수가 없는 막무가내식 질의로 그것을 전달하는 데 완벽히 실패하는 것을 넘어 광범위한 오해까지 유발했다. 그렇기에 이 의원의 행위가 호통 국감에 맛 들인 딜러 지망생의 난사였는지, 아니면 진심 어린 분노에서 비롯된 일갈이었는지는 그다음의 문제가 될 테다.
비판의 말하기는 다른 말하기보다 더 깊은 사유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반성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의원을 비판하는 뭇 네티즌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말인 동시에, 조 교육감을 비판하는 이 의원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심심해서 페이스북 보다가 댓글을 단 동네 백수 형과 공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비판을 수행하는 의원에게 요구되는 사유와 책임감의 수준은 결코 비교될 수도, 또 비교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말이다.
조만간 어떤 이들은 이 의원의 ‘진심’과 ‘진정성’을 들어 팩트 팩트 노래하며 MS 오피스 사건의 허위성을 꼬집을 것이다. 개떡같이 말한 걸 개떡같이 알아들은 건 잘못이 아니다. 물론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사건의 두 주인공처럼 말이다.
그리고 개떡같이 말해놓고 개떡같은 줄도 모르는 사람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마지막으로 좀 많이 개떡같아도 진짜 개떡인지 아닌지 제대로 확인하려는 태도가 모인다면 이 땅에서 진짜 개떡을 몰아내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원문: 김고기의 전공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