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과 취직. 이 시대 청년들의 시대정신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3살부터 19살(혹은 그 이상)까지 끊임없는 교육과 사교육과 가정교육과 부모님과 선생님과 학원 선생님과 학습지 선생님과 과외 선생님과 논술 선생님의 잔소리와 압박에 시달렸던 이유는 바로 좋은 대학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대학에 가면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굳은 믿음, 그 믿음에 봉헌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학원비(를 비롯한 수많은 비용)를 바친다. 노력한다. 간절히 노력하면 취업할 수 있으리라. 자신이 원했던 직장에서 자신이 맡은 바를 충실히 해내며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적당한 수준의 월급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아름다운 꿈. 그러나 그 꿈은 대부분 악몽으로 끝나고 만다.
내 직장생활도 그 악몽과 별다를 것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마치 아수라였다. 내가 직장생활에 대해 품었던 로망은 불과 석 달도 지나지 않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첫 출근 전날 설렘과 걱정에 잠 못 이루던 나에게 전해주고 싶다. 꿈과 희망? 그딴 거 없다고. ‘좆이나 뱅뱅’이라고 말이다.
난 그런 거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첫 직장은 마케팅 회사였다. 글 쓰는 사람이 필요하대서 갔는데, 직장은 나에게 전문적인 비뇨기과적 지식을 요구했다. 한국 남성 평균 크기가 6.8cm라는 것 말고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외우고, 공부해야 했다. 그래야 글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글 대부분은 오류투성이였다.
돌아온 것은 비난이었다. 공부하지 않고 뭐했냐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고서 홈페이지를 몇 번 더 뒤적거려봤지만 크게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그 이후의 직장이라고 그다지 달라지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화학 증착 반응과 군사체계 따위를 알아야 글을 쓸 수 있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군사체계뿐만은 아니었다. 업무체계와 소통 방식, 내용 무엇 하나 편하고 익숙한 것은 없었지만 적응해야만 했다.
그러나 사실- 모르는 게 당연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 시작한 일을 잘 알고 있다면 둘 중에 하나다. 미래의 자신에게 무전기로 업무 지시를 받고 있든가, 아니면 그냥 천재이든가. 대부분의 사람은 처음 맡는 일을, 충분한 교육과 설명 없이는 모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많은 경우 ‘일못’의 꼬리표가 붙는다.
누가 일못을 만드나
선임들은 말한다. 모르면 물어보라고. 그리고 그 선임들은 다시 말한다. 이것까지 물어보냐. 이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 얼씨구. 어쩌라는겨. 대부분의 사람은 알아서 해야 할 것과 몰라서 물어봐야 할 것 사이 어드메를 헤매다가 실수를 하고 만다. 결국 눈치껏 잘하는 소수의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선임 개개인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모르면 물어보라던 사람이 이것조차 알아서 못하느냐는 소리를 왜 하게 되는가. 평균 귀가 시간 7시 5분, 평균 주당 야근일 3.5일, 평균 노동 11시간이라는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일을 해야 한다. 그것도 많이 해야 한다.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의 질문에 대답해줄 여유는 없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할’ 사람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에게 쏠리는 업무량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구조는, 결국 수없이 많은 일못을 양산했다. 모르면 눈치껏 알거나 계속 몰라야 하는 상황에서 일을 잘하기가 쉬운 일일 리가.
이것은 거대한 낭비다
‘일잘’이 됐을 수도 있을 누군가를 ‘일못’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낭비다. 한 사람의 노동력과 시간, 또 거기에 지불할 비용을 폐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 끔찍한 비효율을 정부는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단행하고 있다. 덕분에 개인의 업무량은 더욱더 늘어날 것이고, 눈치 없는 신입들은 계속해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방법은 하나다. 일자리를 늘리는 것. 더 많은 사람이 각자 적은 일을 하게 만들어 업무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그들이 후임들의 질문에 짜증 말고 제대로 된 대답을 내어줄 수 있다면 그 후임도 자신이 맡은 업무를 더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입 개인에게 주어지는 업무량 역시 낮아질 테니 업무의 정확성 또한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일 못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일이 회사에서 그렇게 달가운 일일 리는 없다. 회사의 입장에서도 아수라가 따로 없다. 이 악몽에서 깨어나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기업이 가진 돈을 풀고, 사람을 더 고용하는 것. 그들이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과 잘 쉴 수 있는 환경을 동시에 조성해주는 것 말이다.
맞다. 그렇다고 모두가 일 잘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겠지. 그러나 적어도 모두가 일잘이 될 기회는 받게 된다. 여기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원문 : lupinnu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