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 악당들을 물리치는 영웅이 되어라.”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올해 미국 하버드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현실 속 악당이란 누구일까요? 질병, 가난, 차별, 폭력, 편견… 참 여러 가지 얼굴들입니다. 이로운넷에서는 우리 사회를 괴롭히는 다양한 악당들을 물리치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중졸이든 초졸이든 기죽지 말고 날아라”
위기 청소년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 ㈜자리
편모슬하에서 일찍 가장이 됐어요. 빨리 돈을 벌고 싶어 고등학교를 자퇴했죠. 그러나 중졸인 17살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퀵서비스, PC방알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어요. 흙수저라고요? 전 플라스틱 일회용 수저에요.
사회적 기업 ‘자리(ZARI)’의 신바다 대표는 과거를 돌이켜보며 자신을 그렇게 부르더군요.
‘자리(ZARI)’는 커피로 위기청소년들의 경제·정서적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신 대표는 2009년 천신만고 끝에 300만 원을 마련해 부천에 ‘카페 음자리’를 차렸어요. IT 회사 근무 시절 경험한 홍대 앞 카페 문화를 벤치마킹한 ‘카페 음자리’는 부천에서 입소문을 타며 금방 지역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회적 기업에 눈뜨다
2010년 어느 날 신 대표는 인천 키톨릭 아동청소년재단으로부터 쉼터 청소년들이 카페를 만들고 싶어 하니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 제가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레시피를 몽땅 전수해주었죠. 이 과정에서 위기청소년 하면 문제아로 낙인찍는 사회적 편견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위기청소년의 자립 문제와 카페 사업과의 접목을 고민하던 중 사회적 기업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그로부터 6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커피 회사 ‘자리’는 올해 연 매출 10억 원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했어요.
“중학교만 졸업해도, 혹은 사회가 규정해놓은 틀을 벗어난 사람들도 멋지게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2010년 한국 청소년 상담원 조사에 따르면 위기청소년 비율은 17%로 87만 명에 이릅니다. 위기청소년이란 학교 밖 혹은 가출 청소년 등을 말하는데, 이들의 자립을 돕는 것이 카페 ‘자리’의 미션이에요.
카페 빈자리 5곳, 영글어가는 위기청소년들의 ‘꿈’
신 대표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선택한 도구는 커피입니다. 현재 카페 빈자리는 양평동 선유도역과 다음 카카오 한남오피스·서울역·신도림 등 직영점 4곳과 상암동 MBC 사옥의 위탁운영점 1곳 등 총 다섯 군데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강사 2명을 포함해 상주 직원은 15명으로 이 가운데 평균 4-5명이 소위 위기청소년 출신입니다. 한창 객기를 부릴 나이라 진득이 붙어있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꿈을 찾아 한 발씩 걸음을 떼는 아이들을 볼 때면 신 대표는 기특한 마음에 무엇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15년 동안 보육원에서 지내다 나이가 차 퇴소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이 우리 회사를 찾아왔어요. 직무교육을 받은 후 사회적기업인 셰어하우스 ‘우주’의 지원을 받아 월 20만 원의 비용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 청년은 올해 인천의 한 대학 수시에 합격했어요. 그 친구의 꿈은 사회복지사입니다.”
커피로 풀어보는 숙제… 꿈자리·일자리·쉼자리
신 대표가 내건 ‘자리’의 사회적 가치는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꿈을 향해 달려가듯 진로를 찾아가는 꿈자리, 정당한 대우를 받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 그리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쉼자리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이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자리’가 추진하는 3대 과제는 교육과 채용·주거 해결입니다.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지 못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무료 직무교육을 시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채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마련하는 것이죠.
지난 5년 동안 200여 명의 위기청소년들이 무료로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어요. 그중엔 교육을 통해 호텔조리학과에 진학했거나 커피와 관련된 경력을 계속 쌓아가는 교육생도 있습니다. 일부는 자리에서 운영하는 직영 카페에 고용되기도 했지요. 신 대표는 그러나 진정한 자립을 위해서는 주거 환경 개선이 필수임을 강조합니다.
“집에 들어갔는데 알코올중독 아버지가 맨날 때린다고 생각해보세요. 여자아이들의 경우 친족에게 성폭행을 당하기도 하지요. 그런 환경에선 바뀌기 힘들어요. 그래서 셰어하우스 우주랑 손잡고 주거공간을 무료로 제공하는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
‘자리’의 수익모델은 커피 교육과 카페 컨설팅· 커피 용품 유통과 원두 판매·케이터링 사업 등 다양합니다. 매출은 매년 20~30% 성장하고 있지만, 영업이익률이 낮아 적자를 면키 어렵다가 지난해 드디어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돈도 경험도 부족한 그가 특유의 뚝심과 배포로 밑바닥부터 훑고 다니며 발품을 팔아 일궈낸 성과입니다.
“소비자들은 영리합니다. 좋은 일을 한다고 무조건 구매하지는 않아요. 먼저 품질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착한 사회적기업이네’라고 할 때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올해 위기청소년 5명 무조건 구제한다
신 대표는 올해 새로운 계획을 세웠습니다. 관련 기관의 추천을 받아 위기청소년 5명을 선발해 그들이 중도 하차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과 채용 주거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에요. 대상자는 소년원을 출소해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가출한 청소년 그리고 보육원을 퇴소한 청년들입니다.
“어른들은 참 변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애들은 달라요. 조금만 건드려주면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고 아티스트가 될 수도 있어요. 사춘기 때 방황이 심했던 아이들 가운데 예술적으로 뛰어난 애들이 많더라고요.”
이들에게는 커피나 베이커리 같은 직무 교육뿐 아니라 인문학 교육과 심리 상담을 병행할 계획입니다. 위기청소년들 대부분이 몹시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끌어올리는 것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 커피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개체일 뿐, 위기청소년들을 모두 바리스타로 키우겠다는 건 아닙니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일거리도 파트타임으로 제공하되 시급을 최소 8000원 이상으로 책정해 최소한의 생활이 유지되도록 도와줄 겁니다. 주거는 100% 무료로 제공하고요. 1년쯤 뒤에는 각자 자립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어둠이 있었기에 더 빛나 보일 수 있어요.” 소년 가장에서 5개의 카페를 거느린 사장이 된 신 대표는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2년여 동안 자비를 들여 주 2회 경기도 여주 소망교도소에 출강해 100여 명의 재소자를 대상으로 창업과 커피 전문가 과정을 가르쳤습니다.
“가난, 배우지 못한 것이 짐이 될 수도 있지만 날개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세요. 이를 날개로 만드는 건 오롯이 당신들의 몫입니다.”
재소자 대상 교육 때면 신 대표가 즐겨 하는 이야기라는군요.
“중졸인 제가 작년에 우리나라 최고의 수재들이 모여 있는 서울대학교에 가서 특강을 했어요. 저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 가운데는 대학원 나온 친구도 있어요. 전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중졸이든 초졸이든 학교를 못 나왔든 기죽지 말라구요. 어둠이 있기에 훗날 더 빛나 보일 수 있다고요”
‘창업과 사회적기업가’란 주제로 팟캐스트 <학부모를 위한 진로레시피>에 출연한 신바다 대표는 ‘자리’가 일궈낸 또 하나의 사회적 가치로 편견 타파를 손꼽았습니다.
“여직원들 가운데는 재소자 출신의 다른 동료들을 보고 처음엔 무섭다고 했어요. 그러나 이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면서 한낱 편견에 불과했다는 걸 차츰 깨닫는다고 합니다.”
그리곤 지난 3월 갑자기 종적을 감춘 직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 이 방송을 듣고 있다면 빨리 돌아오세요.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대가 워크숍에서 고백했듯이 우리는 당신과 함께 밥을 먹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돼 있어요.”
신 대표는 오늘도 그에게 빨리 돌아오라는 문자를 넣습니다. 그의 빈자리가 많이 허전한 모양입니다.
원문 : 이로운넷 / 글 : 백선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