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Made by Google. 나 진지해. 궁서체야!
구글의 이름을 단 첫번째 스마트폰인 픽셀폰이 공개됐습니다.
제가 궁금해하던 VR기기인 데이드림을 제껴두더라도, 이번 구글의 스마트폰/하드웨어 패밀리 발표는 구글이 어떤 회사인지를 인식하게 해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갤럭시노트7의 폭발로 정신이 없는 삼성전자에게는 장기적인 악재를 예고하는 발표였다고 생각합니다.
구글에게 삼성을 비롯한 다양한 하드웨어 벤더의 파트너의 가치는 크게 떨어졌으며, 구글이 더 관심있어 하는 “검색”의 미래에는 삼성전자의 자리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도 그럴것이 구글의 적이 수직플랫폼의 하드웨어를 무기로 하는 애플과 아마존이라면, 이미 플랫폼 점유율을 달성한 구글에게 삼성전자를 비롯한 제조사의 연합관계는 큰 가치를 갖지 못합니다.
2. 사실 이 모든것은 인공지능을 위해 준비한 것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구글은 픽셀폰과 다양한 하드웨어를 발표했지만, 사실 단 하나의 서비스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로 구글에이전트, 곧 인공지능 검색서비스입니다. 누구나 인공지능이 미래의 가장 중요한 먹거리임은 인정할 것입니다. 사람을 알아보고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사람의 속마음까지 꿰뚫어 서비스하는 이 매력적인 기계를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3. 파편화된 안드로이드, 인공지능 훈련에는 지옥
하지만 이러한 인공지능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뽑으라면 바로 “데이터”입니다. 그리고 이 데이터는 질과 양이 모두 중요한데, 구글은 양적인 측면에서는 이미 전세계 최고의 수준이어서 이제 “질”의 문제가 남습니다.
질 좋은 데이터란 두가지를 의미합니다. ‘목표한 서비스의 특징을 잘 담고 있는 데이터인지’와 ‘대량의 데이터들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에 노이즈나 다른 의존성이 없는지’입니다.
먼저 전자의 측면을 보자면, 구글 픽셀폰에서 4K해상도의 비디오를 무료로 구글포토(클라우드)에 무제한 저장시킨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고해상도의 깨끗한 훈련데이터를 확보 가능하다는 의미인데, 사용자 입장에서는 한 번 여기에 사진을 백업하기 시작하면 벗어나기가 참 힘듭니다. 아이의 사진이 인질로 잡혀 2년마다 구글폰 사야하는 상황이 닥칠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데이터의 일관성과 의존성 문제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 안드로이드는 최악의 환경이었습니다. 800만화소의 보급형 스마트폰 카메라부터 DSLR 뺨치는 고급형 스마트폰 카메라까지 데이터는 일관되지 않았고, 단말별, 버전별 파편화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안 그래도 이미지나 음성은 실제 다양한 자연환경의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데, 기기에 따라 일관성까지 사라진다면 데이터를 정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를 잡기 위해 정규화니 전처리 과정이니 하는 것들을 거치지만, 이는 결국 데이터를 망가뜨리는 일이라 최선은 아니며 가능한 통제가능한 범위에 넣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하드웨어가 전혀 통제되지 않는 안드로이드는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이들(곧 구글 인공지능 서비스 개발자)에게는 최악의 환경입니다.
4. 데이터의 일관성 확보를 위해 중요한 구글 하드웨어
그런데 구글이 Made by Google을 찍고 폰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더 이상 HTC폰이 아닙니다. 어떤 센서를 쓸것인지 몇만 화소인지, FOV는 얼마인지 마이크의 미세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이 모든 것을 구글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안드로이드의 API표준을 정했던 수준을 넘어 센서의 값을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데이터의 일관성 확보에서 구글 픽셀폰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훈련환경과 실제사용 환경이 동일해야 실험실 상의 98%, 99% 인식율을 보여주는 것이 인공지능입니다. 하이엔드급으로 훈련하고 보급형으로 인식하면 망합니다.
그 반대의 상황도 사실 유사합니다. 인공지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일관성입니다. 아이들이 시험을 칠 때 문제가 쉽더라도 유형을 바꾸면 쉽게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구글 픽셀의 스펙은 구글의 인공지능 서비스를 개발하는 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5. 삼성과는 안녕, 목표는 네이버와 카카오톡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인공지능을 향한 구글의 야심을 보았을때, 인공지능을 중심에 둔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수직플랫폼화의 야심은 당연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파트너쉽은 믿을만한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가상현실 기기인 데이드림뷰는 기어VR을 아예 대놓고 타겟한 제품입니다.
최근 구글에서 지도반출을 문제삼고 있는 것 또한 지도인프라 위에 지역정보와 구글포토 그리고 구글픽셀 폰의 하드웨어까지 연결되는 이 트라이앵글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지도-포토-검색(에이전트) 서비스는 사실 한 덩어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드는데, 검색이 주요 먹거리인 네이버 입장에는 반대를 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또한 스마트폰을 빼앗기면, 카카오톡이라고 해서 그렇게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메시지를 빼버리고 행아웃을 넣는 것은 언제라도 가능하며, 실제 페이스북 메신저의 성장은 놀랍습니다. 구글의 전방위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나치게 한국의 삼성과 네이버의 입장에서 쓴 포스팅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일단 제가 관전하는 내용은 그렇습니다.
최근 인공지능 개발자를 찾는 게시물을 많이 봅니다. 인공지능의 중요성은 너도나도 느끼고 있는 상황같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컴퓨터공학에서도 어렵고 기본적으로 선수과목들이 어느정도 바탕이 있어야해서, 그동안 웹이나 모바일 앱처럼 응용 위주로만 커왔던 한국이 잘 적응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후배들한테 말해줘야겠습니다. 쉬운과목만 찾아듣지 말라고.
덧. 삼성과 네이버를 걱정하는 글을 쓰긴했지만, 전 블랙프라이데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전 구글지역가이드도 200점을 돌파해서 242점. 현 레벨4. (구글 드라이브 100GB 확보, 그런데 픽셀폰 사면 4k 무제한이라니… 내가 왜 그런짓을…)
원문: 숲속얘기의 조용한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