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어서는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분간이 잘 안 되는 이름, 중성적인 이름이 미국에서도 유행입니다. 할리우드에서 부는 반짝 유행을 넘어 많은 사람들이 자녀에게 찰리(Charlie)나 에머슨(Emerson) 같은 이름을 지어주고 있습니다. 아래 번역을 통해 뉴욕타임스 기사를 한글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헐리웃 커플들의 작명
메간 폭스와 브라이언 오스틴 그린 부부는 셋째 아들 이름을 지을 때 아예 처음부터 이든(Ethan)이나 제이콥(Jacob) 같은 전형적인 남자아이 이름은 후보에서 제외했다. 대신 이름만 들어서는 성별을 헤아리기 어려운 저니(Journey)라는 이름을 (아들에게) 지어주었다. 이혼 직전까지 갔던 폭스와 그린 부부의 일거수일투족은 세간의 관심사였다. 이 부부가 아들에게 저니라는 이름을 지어준 데서 부부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닥스 셰퍼드와 크리스텐 벨도 지난해 태어난 둘째 딸에게 성별을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델타(Delta)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셰퍼드는 엘렌 데제너러스 쇼에 출연해 두 딸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했다.
“사실 저희 첫째 딸 이름이 전형적인 남자아이 이름, 링컨(Lincoln)이었으니까 둘째에게 중성적인 이름을 짓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어요. 친구들은 저를 놀리는 듯한 이런 문자를 보내기도 했죠. ‘오 대박! 그럼 둘째 딸은 뭐로 키울 생각이야?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아니면 아이 이름처럼 특수부대 델타포스에 보내기라도 할 거야?’”
사실 이들의 선택이 대단히 튀는 건 아니다. 하이디 클룸과 제시카 심슨, 드류 베리모어는 각각 딸의 이름으로 1962년 NBA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맞서는 상대편 팀 선발 라인업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루(Lou), 맥스웰(Maxwell), 프랭키(Frankie)를 골랐다.
이것은 대세다
할리우드 배우들 사이에서만 번진 유행이 아니다. 패션 브랜드 바나나 리퍼블릭은 어린이 옷 코너에서 여자아이는 분홍색, 남자아이는 하늘색 계통 위주로 진열하던 방식을 폐기했다. 성별에 따라 졸업 가운 색깔을 달리하지 않는 고등학교들이 나타났고, ‘남녀 공용’은 패션계에서는 유행이 됐다. 이름만 들어서는 성별을 분간하기 어려운 중성적인 이름은 일반 미국인 부모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유명한 아기 이름 작명 사이트인 네임베리(Nameberry)의 창업자 파멜라 레드몬드 사트란은 이렇게 말했다.
“‘남자아이 이름이 수(Sue)가 뭐니?’라며 전형적인 여자 이름을 가진 남자아이가 놀림을 받고 창피해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네임베리를 찾는 순 방문자는 한 달에 5백만 명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네임베리는 남녀 아이를 가리지 않고 비슷하게 지어지는 “중성적인” 이름(“post gender” names)이 2016년에 가장 인기 있는 트렌드가 되리라고 전망했다. 여기서 중성적인 이름이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에게 거의 비슷한 비율로 지어지는 이름을 뜻한다.
“이제는 남자아이 이름 테이텀(Tatum)이나 여자아이 이름 로리(Rory) 모두 멋지다고 여겨지는 세상입니다.”
통계로 보는 중성적인 이름
통계를 봐도 이런 추세가 드러난다. 네임베리 소속 연구원들은 미국 사회보장국(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의 신생아 이름 등록 명부에 기재된 이름들을 모아 분석했다. 하퍼(Harper)나 테이텀(Tatum), 퀸(Quinn) 등 중성적인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지난 10년 사이 약 60% 늘어나 지난해 67,831명이었다.
중성적인 이름은 지난 30년 사이 특히 많이 늘어났는데, 1985년 이후로 중성적인 이름의 가짓수 자체가 88%나 늘어났다.
2015년 가장 인기 있는 중성적인 이름은 헤이든(Hayden)으로, 2015년 태어난 헤이든이란 이름을 가진 아이 가운데 여자아이가 39%, 남자아이가 61%였다. 찰리(Charlie: 여자 48%, 남자 52%), 에머슨(Emerson: 여자 60%, 남자 40%), 로완(Rowan: 여자 35%, 남자 65%), 핀리(Finley: 여자 60%, 남자 40%) 등이 뒤를 이었다. 이밖에 리버(River), 다코타(Dakota), 스카일러(Skyler), 피닉스(Phoenix), 테이텀(Tatum)이 많이 쓰이는 중성적인 이름 10개로 집계됐다.
네임베리의 연구원들은 35%를 중성적인 이름의 기준으로 삼았다. 즉, 어떤 이름이 최소한 한쪽 성별에 35% 이상 쓰여야 중성적인 이름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 가운데 로얄(Royal), 저스티스(Justice), 피닉스(Phoenix) 같은 이름들은 전에는 이름으로는 잘 쓰이지 않던 단어로 (신세대) 부모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나머지 이름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예전에는 전통적으로 특정 성별에 많이 쓰이다 중성적인 이름으로 변한 것이다.
예를 들어 30년 전에 트레이시(Tracy)란 이름을 쓰는 아이들 가운데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거의 여덟 배 더 많았다. 압도적인 여자 이름이었다. 정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이 수치는 거의 50:50으로 바뀌었다. 엘리엇(Elliott, 혹은 발음은 같지만, 철자는 여러가지)도 예전에는 압도적으로 남자아이에게만 붙이던 이름이었지만, 지난해에는 엘리엇이란 이름을 가진 아기 네 명 중 한 명은 여자아이였다.
어떤 이름은 특정 성별에 더 잘 어울린다는 인식이 빠르게 옅어지기도 했다. 사회보장국 기록에 따르면 10년 전만 해도 테이텀(Tatum)이란 이름의 90%는 여자아이였다. 이제는 테이텀(Tatum)이란 이름 가운데 38%가 남자아이다. 10년 전 11%에 불과했던 헤이든(Hayden)이란 이름의 여자아이들은 이제 약 39%까지 늘어났다.
존슨앤존슨의 인기 자녀 양육 사이트인 베이비센터(BabyCenter)에 가보면 BNOG(boy name on girl, 여자아이에게 남자 이름 짓기), GNOB(남자아이에게 여자 이름 짓기), GN(gender-neutral, 중성적인) 같은 첫 글자를 딴 줄임말을 쓰며 자녀의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지 고민하며 논의하는 부모들을 볼 수 있다.
● 요즘 아기 이름 고르는 법
아이에게 성별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으세요? 아기 이름 짓기 전문가 파멜라 레드몬드 스트란이 조언하는 작명 원칙 몇 가지를 모았습니다.
중성적인 이름처럼 들리는 이름들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어 애디슨(Addison), 베일리(Bailey), 하퍼(Harper)는 거의 예외 없이 여자아이 이름으로만 쓰이고, 블레인(Blaine), 브렛(Brett), 코리(Corey)는 남자아이 이름으로만 쓰인다. 지금은 그렇다는 것이다. 많은 이름의 성 정체성은 해마다 바뀐다.
통계를 믿어라. 실제로 태어난 여자아이, 남자아이들에 어떤 이름을 지어줬는지를 알아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섯 명 이상 아이에게 지어진 이름의 전체 목록을 다운받아 보는 것이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나무 이름이나 특정 지명, 누군가 만들어 낸 새로운 단어 등) 전통적으로 사람 이름에는 쓰이지 않던 단어는 대개 특정 성별을 초월하기 때문에 그만큼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중성적인 이름으로 쓰기 좋다. 애로우(Arrow)는 여자아이 이름으로 쓰지 말란 법이 없듯이 알래스카(Alaska)가 남자아이 이름으로 이상할 것도 없다.
누군가를 기리는 이름을 지을 때 성별을 뛰어넘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족 중에 이름을 물려주고 싶은 이를 고를 때, 또는 여러분의 영웅의 이름을 딸 때 딸에게는 여자 이름만, 아들에게는 남자 이름만 지어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자. 딸의 가운데 이름으로 당신 아버지의 이름을 따 제임스(James)를 붙여주는 건 어떨까? 아니면 여성형 제임시나(Jamesina)? 아니, 그냥 제임스로 하자.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오키페(O’Keeffe)의 이름을 아들에게 붙여도 좋다.
남들이 모두 이해해주리란 기대는 하지 마시라. 아버지, 할머니, 식료품 가게 점원을 비롯해 누구든 아이 이름은 어떻게 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이제 갓 부모가 된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굳힌 사람들은 더더욱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아들 이름을 사샤(Sasha)로, 딸 이름을 세일러(Sailor)라고 짓겠다고 하면 그건 아동학대나 다름없다며 당신을 나무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나중에 그런 이름을 지어준 부모를 원망할 거라는 경고를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다. 다만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게 하나 있기는 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자기 이름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그런 이름을 지어준 당신을 탓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적어도 여자아이들은 온종일 발레 치마를 입고 놀고 남자아이들은 플라스틱 바나나만 집어 들어도 총싸움을 하는 시늉을 하는 나이 때는 특히 그렇다. 나는 딸의 이름을 로리(Rory)라고 지어줬다. 딸아이는 유치원 같은 반에 남자아이 이름이 똑같이 로리(Rory)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더 들고 청소년기에 접어든 뒤로는 자기 이름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한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중성적인 이름을 갖고 놀리기보다는 오히려 더 괜찮다고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중성적인 아기 이름의 해”
“오늘날 부모들은 남자 이름, 여자 이름의 이분법적 사고에 더는 연연하지 않아요.”
베이비센터의 편집장인 린다 머레이의 말이다. 베이비센터는 지난해를 “중성적인 아기 이름의 해”로 명명하고 애디슨(Addison)부터 윈터(Winter)까지 120개의 중성적인 이름을 선정해 소개하기도 했다.
“요즘 부모들은 자식들이 고정관념의 굴레에 갇히지 않고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자라주기를 바라거든요. 남자아이들도 매니큐어를 칠할 수도 있고, 여자아이라고 스케이트보드 타지 말란 법 없으니까요. 요즘 부모들은 그런 모습도 다 괜찮다고 생각해요.”
머레이 편집장은 말했다.
중성적인 이름의 유행을 불러온 이들 중에는 출산율이 가장 높은 20대 혹은 30대 초반의 밀레니얼 세대도 있다. 머레이 편집장은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사고가 개방적이고 새로운 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세대죠. 무엇보다 이들은 자식이 이런저런 제약이 따르는 고정관념의 틀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는 걸 싫어합니다.”
실제로 마케팅 전문가들은 여성에게 더 많은 경제적 기회가 열리고 전통적인 성 정체성과 성 역할에서 탈피한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점점 더 많이 포용되는 시대 분위기에서 자란 밀레니얼 세대에게 중성적인 것이 호소력 있는 가치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디애나 주 포트 웨인에 사는 밀레니얼 세대 부모 첼시 마쉬도 아이를 성별 고정관념에서 자유롭게 키우는 것이 목표다. 첼시와 남편 사이에 태어난 여섯 달 배기 딸의 이름은 남녀 모두에게 어울릴 만한 파리(Paris)다.
판매 사원으로 일하는 27살 마쉬 씨는 말했다.
“그렇다고 제가 딸 아이 이름을 잭(Jack)으로 지을 만큼 급진적인 건 아니고요. 그저 제 목표는 딸 아이가 여자아이에게만 어울리는 분홍빛 나는 것들만 허락되는 세상에 갇히지 않고 무엇이든 마음껏 경험하며 살게 도와주는 거예요. 우리 딸 아이가 강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흙바닥에서 뒹굴고 뛰어놀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그런 아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마음껏 시도해봤으면 해요.”
마쉬 씨는 말을 이었다.
“딸 아이에게만 특별한 건 물론 아니에요.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이 농구 선수가 아니라 무용수가 되겠다고 해도 저는 그게 아들이 원하는 거라면 당연히 찬성이에요.”
점차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동성 부모들도 전통적인 성별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편에 속한다.
요하나 바스케즈와 그녀의 아내 엘레인은 두 살 난 쌍둥이 딸의 이름을 카이(Kai)와 칼로(Kalo)로 지었다. 중성적인 이름을 고른 건 나중에 딸들이 커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갈 때 선택지를 열어놓기 위해서라고 버지니아 주 스프링필드에 사는 29살 바스케즈 씨는 말했다.
“아이들을 딸(daughters)이라고 칭하는 대신 아이들(children or kids)이라고 부릅니다. 옷을 사 입힐 때도 아동복 코너 전체에서 다 옷을 골라요. 이것저것 섞어서 입히죠. 셔츠를 여성스러운 분홍색으로 하면 바지는 남자애들용 카고 반바지를 매치하는 식으로요. 아니면 남자아이용 히어로물 티셔츠에 발레 치마를 입히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누구인지,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라고 그녀는 말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물론 아이 이름에 관한 유행을 이야기할 때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다른 모든 유행이 그렇듯 반짝 흥했다가 금세 시들고 마는 유행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지난 7월 베이비센터에 의하면 이비(Eevee)나 오닉스(Onix) 같은 이름이 약간 상승세를 보였다. 아마도 포켓몬 고의 영향일 것이다. (이비와 오닉스는 인기 포켓몬 고 게임의 캐릭터 이름이다)
사트란 씨는 전에도 성별을 가늠하기 어려운 이름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먼저 1960년대 반체제, 반문화 운동과 함께 그런 유행이 있었다. 당시 반문화주의자들은 자녀에게 선샤인(Sunshine)이나 레인(Rain)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 베이비붐 세대가 부모가 되면서 특히 딸 이름을 블레이크(Blake)나 매디슨(Madison)으로 짓는 유행이 다시 일었는데, 딸들이 나중에 자라 직장을 가졌을 때 일터에서 남자들과 당당히 경쟁하기를 기원하며 중성적인 이름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중성적인 이름이 매년 전체 아이들의 이름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정부 데이터를 분석한 네임베리에 따르면 지난해 태어난 390만 신생아 가운데 중성적인 이름을 갖게 된 아이는 1.7%에 불과하다.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은 남자아이는 노아(Noah), 리암(Liam), 여자아이는 에마(Emma), 올리비아(Olivia)로 전형적인 남자 이름, 여자 이름들이었다.
브루스 제너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졌던 남자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가 성전환 수술을 받고 케이틀린 제너로 다시 태어난 사실이 끊임없이 매스컴을 뒤덮고, 아마존에서는 성별의 명확한 구분을 허무는 트랜스젠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트랜스패런트(Transparent)”가 방영되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아기에게 중성적인 이름을 지어주는 현상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아기 이름에 관한 책을 10권이나 펴낸 사트란 씨는 말했다.
“페미니즘이 다시 유행을 타고 있죠. 미국은 이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습니다. 트랜스젠더 연예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그러니 혹시 알아요? 언젠가는 남자아이 이름이 케이틀린(Caitlyn), 여자아이 이름이 브루스(Bruce)라고 해도 뭐가 문제냐는 듯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르죠.”
번역: 뉴스페퍼민트 / 원문: 뉴욕타임스 / 특성이미지 출처: QuotesBe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