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맹이었다
나는 북한을 잘 모른다. 솔직히 남북의 관계를 언론이 던진 갈등 관계 말고는 다르게 이해한 적이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 전까지는 ‘북한은 지도에서 없애버려야 한다.’는 아주 철저하게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북맹‘ 중 한 명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북맹’이라는 단어는 <개성공단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개성공단 근로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들은 단어다. ‘북맹’은 북한이나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적대적인 관점으로 농단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북맹일지도 모른다.
가슴 터놓고 이야기해보자. 우리는 얼마나 북한과 개성공단을 아는가?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 믿을 수 없는 언론과 정부가 내놓는 발언을 기반으로 한 아주 단편적인 조각뿐이다. 북한은 언제나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한국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북한 혼자서 미쳐서 설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조금 더 세밀하게 파고들면 ‘겉으로 보이는 모든 게 진실은 아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너무나 한쪽 면만 보면서 생각했고, 정말 정부가 말하는 대로 개성공단은 북한에 퍼주기만 하면서 핵무기를 개발한 자금에 원조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실제로 개성공단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데!
이후의 세대가 달라야 하는 이유
나는 앞으로 우리 세대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북한을 한여름의 모기처럼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성장과 진정한 의미의 평화를 위해서 다르게 생각해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성공단 사람들> 책을 읽어보면 아래의 글을 만나볼 수 있다.
북한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남북관계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행복의 전제조건인 평화를 위해서다. 남북관계와 북한 문제는 평화의 영역이자 안보의 영역이다. 평화와 안보는 국민생존권이 걸려 있는 절대국익의 영역이기에 이 문제를 둘러싼 사실 관계들은 어느 영역보다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본문 29)
남과 북의 ‘다름’은 체제와 제도 등의 형식만 다른 것이 아니라 역사 인식,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인식, 사람의 사회적 의미, 삶에 대한 가치관, 교육과 배움에 대한 인식, 진.선.미의 가치판단, 그러한 가치판단의 기준이나 옳고 그름의 가치규범과 기준, 사물과 사건에 대한 인식의 태도, 관점 등도 다르다. 참으로 다양한 많은 ‘다름’들이 일상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것이 개성공단이고 남북관계다. (본문 38)
책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날 수 있는 이 두 글은 <개성공단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 전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북한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자아도취에 취한 독재자가 있는 테러국이 아니라 ‘남한과 북한의 관계’로 접근해서 정확한 북한의 이야기를 알 필요가 있다.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는 편견을 유발하고, 그 편견은 차별과 갈등으로 번지게 된다. 이명박 정부 이후 한국과 북한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일이 많아졌고, 한국에서는 국가내란죄를 비롯한 현대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서로 예민하게 각을 세워서 갈등만 빚으면 결국 서로 손해다.
평화는 멀리 있지 않다
이 책을 통해 보게 된 것은 개성공단에서 볼 수 있는, 우리가 알지 못한 진짜 이야기였다. 이미 그곳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장소가 되어있었고, 서로 배워가야 할 부분을 배워가면서 함께 숨 쉬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어찌 이런 곳을 일방적으로 날조하여 매도만 하려는가.
어느 날 개성에서 나오는 출경 대기선에서 기다리면서, 참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관리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활용하고 부려먹으면서 함부로 대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성찰의 시간이 있고 난 후, 저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나가다가 만나면 먼저 목례라도 했습니다. 그런 조그만 실천이 그들과의 관계를 더 좋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일종의 선순환인 거죠.
그들에게 진실성을 보여주었더니 그들도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아침에 제가 배고픈 것처럼 보이면 컵라면을 끓여주고, 쉬는 날에는 아이스크림을 사서 같이 나눠 먹기도 했습니다. 같이 무언가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을 ‘식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일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인간적인 소통이 가능해졌어요.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 나갔고 그들과 친해졌습니다. (본문 96)
윗글은 <개성공단 사람들>에서 읽으면서 만난 이야기 중 하나다. 이 이야기 어디에 편향적인 정치 이념이 있고, 갈등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부와 언론이 쓰는 ‘개성공단은 북한의 핵 연구를 퍼주는 곳’이라는 곳으로만 알고 있지,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섞여 조화를 이루는지 모른다.
책에서 ‘개성공단은 북한에 퍼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퍼왔다.’이라는 문장을 읽을 수 있다. 동남아시아 같은 외국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공장을 세우고,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으로 기업을 운영해서 많은 이득을 올렸다고 말한다. 북한이 1만 달러를 벌면, 우리는 100만 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물론,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게 모두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적잖은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북한 사람과 직접 만나고, 인간적인 소통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론과 정부를 통해 듣는 ‘날 선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평화는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통일은 대박? 평화가 대박이다
박근혜 정부는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나오는 소리는 하루가 멀다고 허튼소리밖에 없다.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평화가 대박이다. <개성공단 사람들>은 무조건 한 편의 이야기를 드는 이념과 이분법적 논리로 접근하는 책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의 사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북한과 개성공단에 대해 몰랐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애초에 잘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글의 앞에서 말했듯이 ‘북한은 지도에서 없어져야 하는 나라’라고 생각했고,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사는 게 다를 뿐인데.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유튜브 영상으로 뉴질랜드 사람들이 북한을 거쳐서 한국으로 오토바이로 횡단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영상 곳곳에서 비친 북한의 사는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 이국이라고 생각한 그곳에서 똑같은 말이 들리고, 근대사 책에서 본 풍경이 그려져 정말 너무 신기했다.
이 책이 그 영상을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그동안 접한 싸우는 이야기가 아닌 진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고 믿는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북한을 별로 좋지 않게 보지만, 적어도 이 책은 개성공단이라는 희망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희망이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개성공단이 ‘퍼주기’ 사업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개성공단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남과 북이 함께 윈-윈하는 곳입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개성공단은 남측 경제 전체적으로 우리가 더 많은 이윤을 가져오는 곳입닌다. 개성공단이 우리 남측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본문 135)
원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