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열린 미국 첫 대선 TV토론에서 언론들의 팩트체크 기능은 단연 돋보였습니다. 후보자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곧바로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 대상이 됐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토론 중 실시간으로 팩트체크 페이지에 주요 쟁점에 관한 데이터나 과거 후보들의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이 가운데 몇 가지를 추려 소개합니다.
뉴욕타임스 기자들이 1차 미국 대선 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한 발언의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았다. (실시간 분석과 토론 하이라이트)
1. 외교 안보 분야
트럼프는 “클린턴은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평생 ISIS와 싸워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무장테러집단인 이슬람국가(IS:Islamic State) 또는 ISIS나 ISIL은 2003년 알카에다의 하부 조직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 사담 후세인을 축출한 뒤 생긴 이라크의 권력 공백을 틈타 일어난 수니파 반란군이 IS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 일한 오바마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에 이슬람국가 IS의 세력은 크게 약화해 대부분 시리아로 밀려났다. 마침내 이들은 원래 자신의 뿌리였던 알카에다로부터 완전히 갈라져 나와 스스로 IS/ISIS라 명명하고 2014년 다시 세를 확장해 이라크 일부를 장악했다. 이때 클린턴은 국무장관이 아니었다. — 찰리 새비지(Charlie Savage)
클린턴은 최근 일어난 사이버 공격의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하며 러시아 정부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롱게임”을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미국은 아직 지난번 민주당 전국위원회를 해킹한 것이 러시아라고 확정하지 않았다. 국무부나 백악관은 물론이고 합동참모본부에 대한 공격의 배후가 러시아였다고 공식 성명을 낸 것도 아니다.
클린턴은 “미국은 훨씬 강력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방식으로 맞대응할 수 있다는 위협 섞인 발언인 듯하다. 그녀는 국무장관 재임 시절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해킹한 코드명 “Olympic Games” 작전에서 드러난 미국의 사이버테러 공격 능력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미국이 해당 사이버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시인한 적은 없다.
트럼프는 러시아의 소행이 아닐 수 있다며 러시아를 문책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애쓰는 듯했다. 그는 “러시아일 수도 있지만, 중국의 소행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보당국 관리들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최근 일련의 공격의 원점은 러시아라고 “확신을 가지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 데이비드 생어(David E. Sanger)
트럼프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지 않고, 특히 리비아의 원유를 점유했다면 IS가 세력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렇게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주장이 틀렸다고 확실히 반증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라크에 1만여 명 군인을 계속 주둔시켰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졌으리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시리아나 리비아는 미군이 아예 주둔한 적이 없던 나라여서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IS의 돈줄은 대개 각종 밀수나 점령지 주민들에게 거두는 세금에서 나온다. 또한 석유와 관련된 (시설과) 물류망 대부분은 전쟁 중에 파괴됐고 IS의 운송망도 역시 파괴됐다. —데이비드 생어(David E. Sanger)
트럼프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나는 석유를 장악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몇 주 전에 트럼프는 이런 주장을 펼쳤다가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이라크 석유뿐 아니라 어느 나라든 그 나라에서 나는 (천연)자원을 다른 나라가 탈취, 점유하는 건 국제법 위반이다. (국제법을 거론하기도 전에) 이런 행위는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비난을 살 일이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현실적인 문제만 검토해보자. 이라크에서 나는 석유를 미국이 장악하려면 당장 이라크 전역, 대부분 지상에 흩어져 있는 석유 시설과 물류망을 보호하는 데만 미군 병력 수만 명을 투입해야 한다. 또한, 이라크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제일 가는 부의 원천을 다른 나라의 배를 불리는 데 쓰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는 것도 자명하다. — 매튜 로젠버그(Matthew Rosenberg)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이라크에서 철군하면서 생긴 이라크와 시리아의 권력 공백 때문에 IS가 뿌리내릴 수 있었다며 비난했다.
사실 클린턴은 시리아의 온건 반군 세력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에 찬성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면서 시리아의 권력 공백이 발생했을 수 있다고 사후에 언급한 적이 있다. 클린턴은 또 이라크에서 병력 철수를 앞두고 종국에 남긴 병력보다 이라크에 더 많은 병력을 남겨두려던 국방부의 제안에 개인적으로 찬성했었다. — 마크 랜들러(Mark Landler)
트럼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많은 회원국이 분담금을 충분히 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분담금 문제에 관한 트럼프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부 장관도 이 문제에 관해 불평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토가 대테러 전쟁에 제 역할을 다하는 데 실패했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틀렸다. 나토는 2003년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알카에다와의 전투에 참여했다. — 데이비드 생어(David E. Sanger)
트럼프는 자신이 이라크 전쟁 시작 이전에 전쟁에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이라크에 침공하기 전부터 자신은 전쟁에 반대했다는 게 트럼프의 주장이다. 하지만 전쟁 준비가 한창이던 때 트럼프는 하워드 스턴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버즈피드가 찾아내 공개한 당시 인터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 스티브 에더(Steve Eder)
클린턴은 미국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폭력적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공격을 예방하기 위해 첩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미국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를 모으고 공유하고 있다. 미 연방수사국 FBI는 나라 밖의 테러조직과 연락을 주고받는 용의자들을 체포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보다 법 집행에 있어서의 더 큰 난관은 오늘날 국내 자생적 테러리스트들 가운데는 테러 공격을 일으키기 전까지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는 이들이 많다는 데 있다. 현재 FBI는 범죄 혐의가 있다는 증거 없이는 제약 없이 조사를 진행할 권한이 없고, 개개인의 견해만을 토대로 정보를 모으는 것도 금지돼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이나 IS를 찬양하고 미국을 증오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 맷 아푸조(Matt Apuzzo)
트럼프는 미국의 핵무기가 오래됐는데 현대화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란 핵 협상도 잘못된 협상이라고 깎아내렸다.
트럼프가 틀렸다. 미국은 수백억 달러를 투자해 핵무기 현대화를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란 핵 협상에서는 미국이 17억 달러를 이란에 현찰로 지급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난을 이어갔다. 미국이 17억 달러를 이란에 건넨 건 사실이지만, 사실 그 돈은 원래 이란의 돈이다. 당시 미국이 이란에 무기를 팔기로 계약한 뒤 돈만 받은 상태에서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이 일어나 정작 물건을 주지 못했었는데, 그때 받은 돈 원금 4억 달러에 30년간 쌓인 이자 13억 달러를 얹어서 이번에 지급한 것이다. —데이비드 생어(David E. Sanger)
2. 경제 분야
트럼프는 중국이 위안화 통화 가치를 평가절하해 경제적 이득을 챙긴다고 비난했다.
이는 다소 철 지난 비난이다. 원론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나라는 다른 나라에 그만큼 물건을 싸게 팔 수 있다. 많은 경제학자는 중국이 오랫동안 자국 통화 가치를 낮게 억제했고 이는 중국이 산업강국으로 부상하는데 기여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근래 들어 몇 년간 이런 정책 기조는 바뀌고 있다. 즉, 중국은 위안화 가치를 무조건 낮게 유지하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고, 포괄적인 경제 정책 변화의 일환으로 필요하면 자국 통화 가치를 평가절상하기도 한다. 현재 중국 정부가 통화 가치를 (고의로) 낮추거나 낮게 유지하는 데 개입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 빈야민 아펠바움(Binyamin Appelbaum)
트럼프는 포드자동차 같은 대기업이 미국에서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일자리 수천 개가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포드가 떠나가고 있습니다. 일자리 수천 개도 미시건 주, 오하이오 주에서 사라지고 있어요. 다 미국을 떠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대기업 포드자동차를 예로 들며 미국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포드는 소형차 생산, 조립 라인을 멕시코로 이전하고 있다. 하지만 공장 이전 때문에 미국에서 포드의 고용 규모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하이오나 미시건 주가 급격한 일자리 감소로 지난 세대에 걸쳐 힘든 시절을 보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오하이오와 미시건에는 각각 78,300개, 75,800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지난 8월 실업률은 미시건이 4.9%, 오하이오 4.7%로 미국 전체 평균 실업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닐 어윈(Neil Irwin)
트럼프는 “이미 연간 무역 적자가 8천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데 나선 정치인과 관료들의 과오”라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인용한 숫자는 틀렸다. 2015년 미국의 무역 적자는 약 5천억 달러이고, 올해도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전망된다. 아마 트럼프는 상품수지만 참고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지난해 상품수지는 7,620억 달러 적자다. 하지만 서비스수지가 2,620억 달러 흑자를 기록하여 상품수지의 적자를 상당 부분 감소시켰다. 다시 말해, 수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실제 물건은 (수출보다) 수입을 더 많이 하는 반면, 금융 상품이나 관광, 소프트웨어 등에서는 수출이 수입보다 많은 상태다. — 닐 어윈(Neil Irwin)
클린턴은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에 관해 태도를 바꿨다.
클린턴은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에 관한 견해를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는 비판에 대해 “원래는 협상 과정에서 좋은 내용, 미국에 유리한 내용이 담기기를 바란다는 취지로 말했던 것이지만, 실제 타결된 내용은 제가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종 타결된 협정 결과에 따라 견해가 바뀔 수 있었다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이는 클린턴이 전에 했던 발언과 배치된다. 클린턴은 협정에 찬성한다는 뜻을 40번도 넘게 공개적으로 밝혔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주도적 지위를 견고하게 할 수 있는 전략적 구상”이라고 누누이 언급했지만, 최종 협정 내용을 보고 의견을 밝히겠다고 시사한 적은 없다. — 마크 랜들러(Mark Landler)
3. 에너지 환경 분야
클린턴은 트럼프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트럼프 후보는 기후변화는 중국이 만들어 낸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트럼프는 즉각 말을 잘랐다. “저는 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
2012년 트럼프가 남긴 트윗을 보면 시비를 명백히 가릴 수 있다. “지구 온난화라는 개념 자체는 중국인들이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려고, 그리하여 중국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자 만들어낸 것”이라는 트윗이다. 트럼프는 지난 1년간 기후변화는 속임수라며 자신은 현재의 기후변화가 인간의 활동 때문에 촉발됐다는 과학적인 근거를 “믿지 않는다”고 누차 밝혔다. — 코랄 데이븐포트(Coral Davenport)
4. 후보자의 자질, 과거
트럼프는 아버지로부터 초기 사업자금을 얼마나 받았나
클린턴은 젊은 트럼프가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 때 아버지로부터 1,400만 달러를 빌려 사업 기반을 다졌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들춰냈다. 트럼프는 액수는 언급하지 않으며 “작은 액수”를 빌렸다고 말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가 운영했던 카지노와 관련한 공개된 1985년 문서를 보면, 당시 도널드 트럼프는 일련의 차입금과 증여 형태로 약 1,400만 달러를 아버지와 아버지 회사에 빚지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 스티브 에더(Steve Eder)
트럼프는 “내가 운영하는 인터내셔널 호텔이 백악관 바로 옆집”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이 백악관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바로 옆집은 아니다. 물론 트럼프처럼 전용 헬리콥터를 타고 간다면 얼마 안 걸리겠지만. 백악관에서 호텔까지 걸어가면 구글맵 기준 15분이 걸리고, 택시나 우버를 타면 6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직접 차를 몰고 가면 당연히 복잡한 워싱턴DC에서 주차 공간을 찾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릴 테니 그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 매튜 로젠버그(Matthew Rosenberg)
트럼프의 여성 비하 발언
토론 막바지에 클린턴은 여성을 향한 트럼프의 막말 사례를 들며 트럼프를 맹공격했다. 트럼프가 미스 유니버스 출신인 알리시아 마차도 씨를 가리켜 살이 쪘다며 “돼지(Miss Piggy)”, 라틴계 출신이라며 “가정부(Miss Housekeeping)”라고 불렀다고 한 것이었다.
트럼프는 도대체 어디서 그런 낭설을 듣고 왔는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올해 마차도 씨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밝혔던 내용이다. 심지어 트럼프 본인이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인수한 뒤 공개적으로 그녀에게 살을 빼라고 종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 메간 투히(Megan Twohey)
5. 치안, 형사 제도
트럼프는 뉴욕시에서 살인사건이 늘었다고 말했다.
클린턴은 반대로 살인사건이 줄었다고 말했다. 클린턴이 맞다. 뉴욕시가 집계한 범죄 통계를 보면 작년 대비 올해 살인사건은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은 지난해 257건에서 올해 지금까지 246건으로 줄었다. 뉴욕경찰청 대변인도 트위터를 통해 살인사건이나 총기 범죄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지금 추세대로라면 올해는 뉴욕시 역사상 가장 안전한 해 가운데 한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 스티브 에더(Steve E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