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만동 묘지기가 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뇌물을 바쳐왔던가.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화양동 서원의 권세라면 세금도 병역도 면제니까! 흐흐흐… 잠깐만, 저것들은 뭐지? 뭔 건달 같은 새끼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가운데 놈이 두목인가? 꼴에 부축까지 받고 올라오는구먼. 잘됐다. 오래간만에 기분이나 풀어보자.’
만동 묘지기는 순식간에 달음질치더니 건달 두목으로 보이는 사내의 가슴팍을 힘껏 밀어 차 버렸다. 그 바람에 계단을 오르던 건달들은 서로 엉켜 나뒹굴며 쓰러졌다. 건달 중 하나가 왕족에게 무슨 행패냐며 대들었다. 만동 묘지기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들의 행색은 영락없는 거지꼴이었다. 잘 봐줘야 건달이었다.
“이 잡것들아. 여기가 어딘줄 알고 까불어? 명나라 황제의 신위가 모셔진 만동묘가 있는 곳이야! 상감마마도 부축을 받으면 안 될 마당에 네까짓 것이 감히 부축을 받고 계단을 쳐올라와?”
19세기 조선은 왕의 외척이 정치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의 시기였다. 하나의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다 보니 정치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과거시험에는 부정행위가 일상이었고 부정축재하기 좋은 관직일수록 비싼 값에 팔렸다. 거금을 투자해 요직에 앉은 양반들은 목적에 충실했다. 재빨리 투자금을 회수하고 본격적인 수익을 올리기 위해 신나게 양민들을 수탈했다. 역사에서는 이것을 삼정의 문란이라고 한다.
삼정은 전정, 군정, 환정을 말하는 것인데 요즘으로 치면 서민 증세, 병역비리, 고리대금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양민들은 세금 폭탄에 허덕이다 빚을 지고, 고리대금에 시달리다가 집을 잃고 떠도는 유민이 되었다. 그렇게 수탈해간 재물은 매관매직으로 자리를 차지한 양반들의 몫이었다. 조선말 민란이 끊이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런 처참한 양민들의 삶 때문이었다.
당시 서원은 서민 증세와 병역비리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서원은 원장에서부터 하인에 이르기까지 세금과 병역 면제의 혜택이 있었는데, 이는 서원이 학문 연구와 향촌 부흥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집중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세도 정치로 인한 부패로 말미암아 재산을 은닉하고 병역을 회피하는 용도로 변질되고 말았다.
재산 은닉을 위해 양반들이 모이다 보니 서원은 자연히 세도 정치의 아지트 같은 게 되어버렸다. 서원의 권세는 날이 갈수록 강해져서 제사를 핑계로 여러 가지 재물을 징발하는 창구가 되었다. 서원에 재산을 징발당한 양반들은 당연히 양민을 다시 수탈해서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웠다. 이런 서원의 정점에 화양동 서원이 있었다.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당시에 이런 노래가 유행했었다.
승경가(昇卿歌)
원님 위에 감사
감사 위에 참판
참판 위에 판서
판서 위에 삼상
삼상 위에 승지
승지 위에 임금
임금 위에 만동 묘지기
만동 묘지기의 발차기를 얻어맞은 건달 두목의 이름은 이하응. 훗날 고종의 즉위로 흥선대원군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를 따르던 건달들의 이름은 천희연 · 하정일 · 장순규 · 안필주로 대원군의 수족이 되어 정보를 수집하는 첩보 대장들, 세칭 천하장안이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는 노부부. 아마 대원군이 보기에 당시 양반들의 꼴이 딱 그 모양이었을 것이다. 양민들 등쳐먹는 것도 적당히 해야 하는데 그들은 아예 배를 가르려 하고 있었다. 배가 갈리면 결국 양반들도 먹고살 것이 없어진다. 조선이 망하는 것이다.
대원군은 집권하자마자 개혁에 나섰다. 양반들이 은닉한 토지를 모조리 찾아내었고, 양민들이 빚 때문에 토지를 넘기는 일을 법으로 막아버렸다. 병역 대신 징수하던 군포는 양반에게만 면제되었었는데 양민과 양반 모두에게 동등하게 거두었다. 양반들이 체면 때문에 내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종의 이름으로 군포를 낼 수 있는 제도도 마련했다. 관에서 쌀을 빌리면 이자를 내야 하는 환곡제는 폐지해버린다. 부패의 온상이었던 서원도 없애버렸다. 전국에 천여 개에 달하던 서원은 마흔 개 정도만 남았다. 기득권을 빼앗긴 전국의 수많은 양반들은 대원군에게 몰려가 집단으로 시위했다. 그러자 대원군은 이렇게 일갈한다.
“백성에게 해악을 끼친다면 공자가 부활했다 하더라도 용서하지 않겠다!”
대원군의 개혁은 장기적으로 보면 양반에게도 이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근시안적인 양반들은 그것을 이해 못하고 이윤추구에만 골몰했다.
이런 역사는 양반에서 기업으로 이름만 바뀐 채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다. 기업의 목적이 이윤추구가 되어버리면 임금 감소, 양극화, 구매력 저하, 국가경제파탄의 순서로 나라가 병들어간다. 한쪽만 착취당하는 구조가 되면 경제 대공황이 찾아온다는 사실은 역사로 이미 증명되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신자유주의니 낙수효과니 하는 소리들이 판을 치고 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여 보상해야 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고객의 삶의 가치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이윤은 자연스레 지속적으로 불어나서 지속 가능한 경영이 실현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죄악을 공정히 다스리고 법과 정책을 통해 국민의 삶의 가치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고민해야 지속 가능한 경영이 실현되는 것이다.
조선의 경영자 대원군은 지속 가능한 경영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대원군만 이것을 아는 건 아니었다. 역대 조선의 왕들도 부패를 뿌리 뽑고 국민의 삶의 가치를 개선하기 위해 암행어사를 지속적으로 파견했었다. 심지어 대원군이 성공시킨 개혁의 내용들 대부분이 이미 이전 정권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이었다. 그러나 대원군과 달리 왕들은 실패했다. 왜 그랬던 것일까?
암행어사는 삼정승의 추천으로 임명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추천 없이 왕이 단독으로 임명하더라도 승정원을 통해 파견되었다. 벌써 이 단계에서 정보는 새어나갔다. 암행어사 본인은 법에 따라 사대문 밖으로 나가 왕의 밀서를 열어보고 나서야 자신의 목적지를 알 수 있었지만 그때쯤이면 이미 목적지의 양반들은 암행어사의 생김새까지 보고받은 상태였다.
양반들은 어사가 어떤 목적으로 왔으며 무엇을 알아내려 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 어사가 목적지에 당도하면 양반들은 자신들이 숨기고 싶은 것은 숨기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공개한다. 어사는 양민들이 어떤 피해를 입고 있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내는 것에 실패한다. 암행어사가 아니라 공개어사인 것이다.
“섹스, 스캔들, 루머가 없는 건전한 여성지가 나온다면 구독하시겠습니까?”
여성잡지 마리안느는 창간 전 주부 독자 천여 명을 대상으로 3차례에 걸쳐 시장 조사를 실시했다. 건전한 여성지를 기꺼이 구독하겠다 답한 주부는 95%에 달했다. 1991년 마리안느는 양질의 건전한 콘텐츠로 자신 있게 창간했고 구독자가 없어서 1년여 만에 폐간했다. 주부들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공개한 것이다. 마리안느는 주부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내는 것에 실패했다.
이것이 바로 시장조사에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목적과 의도를 드러낸채 접근하면 진실된 정보에 다가갈 수 없는 법이다. 대원군은 그것을 알았기에 제대로 된 암행어사를 가동할 수 있었다. 그의 암행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정체를 숨기는 것. 두 번째는 관찰하는 것.
대원군은 먼저 자신부터 숨겼다. 안동 김씨는 세도정치를 유지하기 위해 똑똑한 왕족들은 다 잡아 죽여버렸다. 대원군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어리석은 척을 해야 했다. 이름난 양반가의 잔칫집마다 찾아가 구걸을 했다. 양반들이 전에다 침을 뱉어 땅에다 던지면 웃으며 집어 먹었다. 상갓집 개라는 별명이 생겼다.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철종 다음의 허수아비 왕으로 대원군이 거론될 정도였다.
아무도 대원군을 신경안쓰자 첩보전을 개시했다. 궁에는 내시들을 심었다. 팔도 사방 곳곳에는 자신을 따르는 중인과 천민들을 심었다. 세상에 널린 게 중인과 천민이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중인 중에 대원군에게 가장 충성스러운 자들이 바로 천희연, 하정일, 장순규, 안필주 네 사람이었다.
대원군은 천하장안과 대동하여 직접 암행했다. 직접 양반가 잔칫집에 가보고, 직접 장터에 가보고, 직접 농가에 가보고, 직접 서원에 가서 발길질을 당했다. 내가 앞으로 조선의 경영자가 될 것인데 무엇이 불편한지 말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관찰하며 왜? 라는 질문만 던졌다.
‘왜? 저 자는 장터에 주저앉아 울고 있나? 왜? 저자의 처자식은 도망쳤나? 왜? 저자는 땅을 빼앗겼나? 왜? 그 양반은 저자의 땅을 빼앗았나? 왜? 이 부조리를 관가에서 해결 못하나?’
누구도 대원군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천하장안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필요할 때마다 조심스럽게 왜? 라는 질문을 던지며 정보를 모았을 뿐이다. 그렇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무가치해 보이는 인간들이 대원군의 눈과 귀가 되었다. 대원군은 정보를 통해 본질에 접근할 수 있었다. 어디를 어떻게 잘라내야 수술에 성공할 수 있을지 파악한 것이다. 대원군은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당신은 시장조사를 어떻게 하는가? 어떤 사람은 인터넷 검색으로 온갖 통계자료를 모은다. 사용자 중 여성의 비율이 몇 프로이며 어느 시간대에 사용하는지 등등의 통계자료가 사업 타당성의 근거가 되어버린다. 가장 흔하게는 리서치 업체에 맡긴다. 그들은 보통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포커스 그룹 인터뷰 FGI가 있다. 몇 명을 방에 몰아넣고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시장 조사에 대해 과거 노키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얀 칩체이스(Jan Chipchase)는 이렇게 말한다.
“이러면 현미경처럼 시야가 좁아집니다.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저는 이런 걸 ‘맥도날드 어프로치’라고 부릅니다. 어디 가도 구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햄버거밖에는 만들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핸드폰은 뭘까? 아이폰? 아니다. Nokia 1100이다. Nokia 1100은 2003년에 출시되어 5년간 약 2억 5천만 대가 팔렸다. 핸드폰은 물론이고 인류 역사상 전자기기 중에 Nokia 1100보다 많이 팔린 것은 없었다. Nokia 1100의 대표 기능은 다음과 같다.
1. 하나의 번호에 여러 사람을 등록할 수 있다.
2. 특정 통화에 대하여 통화요금 한계를 설정할 수 있다.
3. 문맹자를 위해 시각적인 기호를 제공한다.
1번과 2번의 기능은 하나의 폰을 여러 명이 사용하는 저소득 국가의 농촌 지역에서 유용한 기능이다. 3번의 기능은 문맹률이 높은 지역에서 매우 유용한데, 글을 모르는 사람이 티를 내지 않고 핸드폰을 쓸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디자인된 것이다. Nokia 1100은 저소득 국가와 문맹률이 높은 지역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글을 몰라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핸드폰이 나온다면 사시겠습니까?
만일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식으로 설문조사를 했다면 다들 Yes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설문을 근거로 자신 있게 문맹자 전용 핸드폰을 만들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뻔하다. 마리안느처럼 아무도 안 샀을 것이다. 처음에 노키아는 문맹률이 높은 지역을 틈새시장으로 보고 문맹자 전용 핸드폰을 출시하려 했었다. 그러나 계획을 철회했다. 안 팔릴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아낸 걸까? 얀 칩체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현지 조사는 3주에서 6주 정도 소요됩니다. 그 기간 동안 현지인의 집에서 삽니다. 우리를 도울 현지인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서 친구와 가족 등으로 네트워크를 넓혀 갑니다. 그들의 집에서 살다 보면 형제가 싸우는 모습 등 여러 가지 사생활을 보게 됩니다. 면도처럼 사소한 것도 현지 이발소에서 합니다. 저는 이렇게 얻은 정보를 오가닉 데이터 (Organic Data)라 부릅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전화를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언제든지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글을 모른다는 사실이 시시때때로 공개되는 것이었다. 문맹자 전용 핸드폰처럼 말이다.
양반들이 탐욕스러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돈 때문에 군포 내는 것을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대원군은 원인이 양반의 체면 때문임을 알았고, 종의 이름으로 군포를 내는 솔루션을 제공했다. 대원군이 양반이라서 양반의 심리를 알아챈 것이 아니다. 그런 주장은 당신이 소비자라서 소비자의 심리를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어리석은 것이다. 당신은 심지어 당신 자신의 소비심리도 모른다. 누구나 손에 직접 쥐기 전까지는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법이다. 이것에 대해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만약 제가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았다면 사람들은 제게 더 빠른 말이 필요하다고 했을 겁니다.”
대원군의 정책서비스에는 양반의 군포 같은 디테일들이 녹아들어 있다. 그 디테일은 진실된 정보에서 나왔다. 대원군은 천하장안으로 천하와 장안을 관찰했기 때문에 진실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의 개혁은 그래서 달랐고 그래서 성공한 것이다.
설문지나 인터뷰로는 진실된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 시장조사는 그만두라. 쓸데없이 방대한 정보는 당신을 속이고 혼란스럽게 만들고 직관을 흐트러트릴 뿐이다. 니즈를 파악하고 싶다면 하나만 기억하라. 관찰력이다.
당신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면 얀 칩체이스를 그대로 따라 해선 안된다. 그는 노키아에 있었을 때 시장조사를 좀 특이하게 했을 뿐이다. 이제 사업을 시작하는데 언제 어느 세월에 밑바닥부터 저런 조사를 하겠는가? 당신이 창업가라면 대원군처럼 평소에 관찰을 했어야 한다. 대원군이 만일 집권을 하고 난 후에야 천하장안으로 관찰을 시작했다면 개혁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평소에 관찰을 할 때는 왜? 를 던져보면 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왜? 동네 곳곳에 크레인 게임기가 생기더니 요즘에는 폭발적으로 증가할까? 왜?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이 인형 뽑기 동영상으로 가득차는 걸까? 왜? 크레인 게임기는 하얀색일까? 왜? 사람들은 뽑기 어렵게 조작된 기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몇만 원씩 넣어 인형을 뽑을까? 왜? 친구들이랑 함께 온 사람들이 크레인 게임기에 돈을 더 많이 넣을까?’
니즈 파악은 둘 중 하나다. 내가 불편했던지 아니면 나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있던지. 전자는 사업성이 있는지 바로 실험해보면 된다. 후자는 평소 일상의 관찰을 통해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이 창업의 첫걸음이다. 인터뷰나 설문지로는 페인 포인트를 정확히 집어내는 것이 매우 매우 어렵다. 주변의 니즈를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관찰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잊지 마라. 중요한 것은 천하장안! 관찰력이다.
※ 이 글을 쓸 수 있게 해 준 책 및 자료들
- 얀 칩체이스 & 사이먼 슈타인하트, “관찰의 힘”
- 에이드리언 슬라이워츠키 & 칼 웨버, “디맨드”
- 송인혁 시민기자, “everybody LIES – 있는 그대로 믿지 마시라”, e수원뉴스 2008.04.15
원문: 여현준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