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다소 길더라도 다음의 인용을 서두로 삼고자 한다. ‘그곳’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고스란히 담게 될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쩌면 아래 인용문에서 느낄 수 있는 바로 그것인지 모른다.
부자는 경멸해도 괜찮은 것이지만 빈자는 절대로 미워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었다. 당연히 그래야만 옳은 것으로 알았다.…(중략)…
우리는 우리정부가 베푸는 제반시혜가 사회의 밑바닥까지 고루 미치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우리는 거리에서 다방에서 또는 신문지상에서 이미 갈 데까지 다 가버린 막다른 인생을 만날 적마다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긁어모으느라고 지금쯤 빨갛게 돈독이 올라있을 재벌들의 눈을 후벼 파는 말들로써 저들의 딱한 사정을 상쇄해 버리려했다. 저들의 어려움을 마음으로 외면하지 않는 그것이 바로 배운 우리들의 의무이자 과제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한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임을 나는 솔직히 자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분노란 대개 신문이나 방송에서 발단된 것이며 다방이나 술집탁자 위에서 들먹이다 끝내는 정도였다. 나도 그랬다. 내 친구들도 그랬다. 껌팔이 애들을 물리치는 한 방법으로 주머니 속에 비상용 껌 한 두개를 휴대하고 다니기도 하고, 학생복차림으로 볼펜이나 신문을 파는 아이들을 한 목에 싸잡아 가짜 고학생이라고 단정해버리기도 했다. 우리는 소주를 마시면서 양주를 마실 날을 꿈꾸고 수십 통의 껌 값을 팁으로 던지기도 하고, 버스를 타면서 택시합승을, 합승을 하면서는 자가용을 굴릴 날을 기약했다.
-윤홍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중에서
‘갈 데까지 다 가버린 막다른 인생’을 ‘마음으로 외면하지 않는 그것’은 우리의 가슴이지만, ‘껌팔이 애들을 물리치는 한 방법으로 주머니 속에 비상용 껌 한 두개를 휴대하고 다니기도 하고, 학생복차림으로 볼펜이나 신문을 파는 아이들을 한 목에 싸잡아 가짜 고학생이라고 단정해버리기도’ 하는 것은 우리의 머리다. 윤홍길 씨의 글을 읽고 가슴과 머리의 괴리에 대해 고민하며 ‘가슴’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던 때는 벌써 10년이 지난 고등학생 때다.
햇수로 4년 전 ‘그곳’에 처음 들어가며 나는 가슴을 가지고 들어갔다고 믿었다. 내가 그동안 몇몇 부자는 종종 경멸했어도 빈자는 미워했을 리도 없고 앞으로도 미워할 리도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그곳에서 주말마다 만나는 빈자들을 ‘절대적으로’ 미워하고, 주말마다 만나는 ‘갈 데까지 다 가버린 막다른 인생’을 마음으로 외면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때는 사람으로 보지도 않게 될 줄이야. 게다가 그들에게 쌍욕을 하고 주먹질까지 하게 될 줄은 더더욱 알지 못했다.
지금은 미움과 경멸의 기준이 빈부의 차에 있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 역시 이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을 욕하는 내 입과 나를 욕하는 내 가슴, 그들을 외면하는 내 머리와 그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내 가슴은 요즘도 계속 출렁이며 세력다툼을 하는 중이다. 나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모순을 끌어안고 이 글을 쓴다.
2004년 1월 17일 토요일 나의 첫 근무가 시작되었던 그곳, 매주 주말마다 그들을 만났던 그곳은 실내경마장이다.
실내경마장이란 어떤 곳인가
보다 실감 나는 설명이 뒤에 이어지겠지만, 실내경마장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 정도는 알고 넘어가는 것이 글을 읽는데 좋을 것 같다. 2004년만 해도 실내경마장에서 일한다고 말했을 때 가장 많이 접했던 사람들의 반응은 “스크린 경마?”라는 되물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주말에 실내경마장에서 일한다고 하면 대번에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마사회가 반사이익을 얻고, 2005년 9월 말부터 부산경남 경마장 개장과 함께 주중 평일경마를 시행하면서 인지도가 올라간 탓일까? 2002년을 정점으로 하향세를 그리고 있는 매출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마사회가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들 그런 것쯤은 알만한 나이가 된 것일까?
실내경마장은 성인 오락실인 ‘스크린 경마장’이 아니라 한국마사회에서 직접 운영하는 합법적인 경마장이다. 정식 명칭은 ‘KRA플라자’로 언론에서는 ‘TV경마장’, ‘화상경마장’이라고도 하며 법률상으로는 ‘장외발매소’라고 한다.
2007년 7월 현재 서울에 13개소(1999년 10월 16일 개장한 서초지점은 건물 임차기간 만료로 2007년 8월 27일부로 폐쇄된다. 참고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장외발매소는 92년 9월에 개장한 창동 지점이며 가장 최근에 생긴 장외발매소는 2006년 12월에 개장한 강동 지점이다), 경기도에 9개소, 인천에 4개소가 있고, 충남 천안에 1개소, 대전광역시에 1개소, 대구광역시에 1개소, 경남 창원에 1개소, 부산광역시에 2개소, 광주광역시에 1개소가 있다. 전국에 이렇게 총 33개의 지점이 있고 그 중 약 43%인 13개소가 서울에 몰려 있다.
실내경마장에는 기본적으로 경주실황을 방영하는 데 필요한 시설(텔레비전과 스피커), 마권의 발매와 환급금 교부에 필요한 시설(발매기를 포함한 발매창구)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좌석과 매점, 화장실, 배당률을 적는 배당판, 수표환전소, 경마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경마정보조회기 등이 있다. 또 그곳에는 발매, 안내, 질서유지, 응급구조, CCTV 등 시간제 경마직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있고, 경비, 청소 등 용역업체에서 근무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매점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경마예상지를 파는 분들도 계신다. 물론 마사회 직원들도 있다.
그리고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고객들이 있다. 우리들끼리는 고객들을 ‘마쟁이’라 부른다. 흔히 듣는 ‘경마팬과 경마꾼’이라는 구분은 무의미하다. 밖에서는 그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경마를 하는 모든 사람은 우리에게 마쟁이일 뿐이다.
마사회 본사는 과천에 있고 제주본부와 부산경남본부를 두고 있다. 과천 본장과 제주 본부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경마를 시행하고 있다. 2005년 9월 말 문을 연 부산 본부는 금요일에 경마를 시행했지만, 개장 3년차를 맞은 2007년 새해부터는 금요일과 토요일 주 2일 경마를 시행하고 있다.
실내경마장에 온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되는 화면을 보게 되며 창구에서 마권을 구매할 수 있다. 경마가 없는 날에는 지역 주민의 레저, 문화 공간으로 무료 개방하고 있다. 지점 특성에 맞게 공부방, 노래교실, 꽃꽂이, 댄스 교실, 서예 교실, 탁구 교실 등등을 시행하고 있다.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실내경마장?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내경마장이 문화 공간이 될 수는 없다. 그곳은 서울 경마공원처럼 말이 뛰는 것을 보며 쾌감을 얻는 곳도 아니고, 실제 말을 볼 수 있는 곳도 아니며, 무료로 승마강습을 해주지도 않는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대여해주는 곳도 없고, 공원이 있는 곳도 아니다.
과천의 서울 경마 공원은 마사회의 주장대로 어느 정도 ‘가족형 레저공간’인지 모르지만, 실내에서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말이 뛰는 것을 보며 베팅을 하는 실내경마장이 도박장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나로서는 통 알 수가 없다. 내가 마사회 실내경마장에서 일한다고 했을 때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어머니께 아버지께선 간단하게 ‘나라에서 허가해준 도박장’이라고 하셨다.
2005년 5월 국회의원회관 1층에 소회의실에서 있었던 세미나 자료집(『한국마사회법, 경륜·경정법 일부개정법률안 토론회 : 장외지점의 문제,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도박산업규제 및 개선을 위한 전국네트워크)을 보면 2006년 11월에 지역 주민의 반대로 전격 철회된 순천 장외발매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순천 YMCA에서 정리한 이 자료에는 주민들이 순천 마권장외발매소에 반대하는 9가지 이유가 있는데, 거기에선 개장하지 않는 날 문화센터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불필요한 발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작 문화센터가 필요한 농어촌 지역에서 본연의 임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개장하지 않는 날 이를 문화센터로 개방하는 것은 마사회 홈페이지에서 말하고 있는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KRA 플라자의 사회적 역할’ 여섯 가지 중에 4번 항목이다.
한국마사회는 홈페이지에서 ‘경마공원 이용이 불편한 원거리 경마팬에게 경마이용 편의를 도모하고, 지역주민에게 레저 이용 기회를 증대시켜, 경마 대중화를 촉진코자’ KRA플라자를 운영하고 있다고 운영목적을 밝히고 있다. 또 앞서 말했듯 KRA플라자가 설치되면 지역사회발전에 많은 도움이 된다며 KRA플라자의 사회적 역할을 다음의 여섯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1. 레저세 납부로 지방자치단체 재정에 기여하게 됩니다.
2. KRA Plaza 운영에 필요한 인력을 현지인으로 우선 채용하므로 지역 고용증대에 도움이 됩니다.
3. 다수고객이 이용함에 따라 주변지역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됩니다.
4. 경마가 없는 날에는 KRA Plaza를 지역주민의 레저·문화공간으로 무료 개방합니다.
5. 경마시행을 통한 수익금 중 일정액을 지역사회에 기부함으로써 지점인근 불우이웃의 생활 안정화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6. KRA Plaza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봉사활동 및 지역행사지원을 통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기반 조성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 중 3번 ‘다수고객이 이용함에 따라 주변지역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됩니다’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순천지역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들은 ‘장외발매소의 특성상 돈이나 사람이나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않으므로 지역의 상권 활성화는 기대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지금껏 일해 본 경험으로 비춰 봐도 활성화되는 주변지역 상권이라고 해봐야 근처의 음식점밖에는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경마가 끝난 후에는 기대할 수 없고 점심시간에 평소보다 조금 더 오는 정도인데, 많은 경마팬이 건물을 떠나지 않고 매점을 이용하여 점심을 해결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미미한 수준, 적어도 마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지역의 상권 활성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을 열 때 우르르 들어가서 가지고 있던 돈을 거의 몽땅 써버릴 때까지 나오지도 않고 밥도 그 안에서 대충 해결하는 이들이 지역의 상권을 활성화시킨다고? 모르긴 몰라도 노숙자와 경마중독자들로 인해 주변 상권이 입는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전에 일하던 영등포 지점에서도 그랬고, 지금 일하고 있는 동대문 지점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 장외발매소 근처의 편의점에 붙어있는 ‘주말 알바 구함’은 도대체 언제쯤 떨어지는 걸까?
마사회에서 밝히고 있는 KRA플라자의 사회적 역할 5번, ‘경마시행을 통한 수익금 중 일정액을 지역사회에 기부함으로써 지점인근 불우이웃의 생활 안정화를 도모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는 나를 실소케 했다. 내가 모르는 부분도 있겠지만 내 경험과 느낌에 따르면 ‘지점인근 불우이웃’은 KRA플라자가 들어섬으로 인해 더 불우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동의 획득?
개설 형식은 대부분 몇 층부터 몇 층까지를 마사회가 임차해서 장외발매소로 사용하는 식이다. 이런 임차 형식의 지점 28개소 이외에도 신축 1개소, 매입 4개소가 있다. 한국마사회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는 KRA 플라자 개설절차는 다음과 같다.
1. 장외발매소 설치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2. 농림부에 설치지역 개소수 승인 신청 및 농림부의 가승인을 받는다.
3. 건물을 모집하고 조건부로 선정한다.
4. 용도변경 및 지역사회(주민 등)동의 획득의 과정을 거쳐 개장한다.
5. 개장 후 임대차계약 체결 및 시설공사에 들어간다.
6. 농림부에 선정 건물 승인신청 및 농림부의 본승인을 받는다.
7. 건물을 최종 선정한다.
이 중 4번 ‘지역사회의 동의 획득’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순천의 경우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순천 시민들은 순천 장외발매소 설치와 관련해서 이 개설절차에 명시된 ‘지역사회 동의 획득’은커녕 ‘단 한차례의 시민공청회나 공식적인 의사를 수렴하는 자리도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실내경마장 주변 풍경
실내경마장 앞의 풍경은 어디나 비슷한 편이다. 예상지와 종합지를 파는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포장마차, 얼마의 수수료를 떼고 수표를 바꿔주는 ‘꽁지 아줌마’들. 그 밖에 1층에서 근무하시는 경비대원 아저씨, 아이를 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자, 아이를 맡기고 누군가를 찾아 들어가는 여자, 애완견을 맡기고 들어가는 여자, 경찰과 경찰차, 주차 문제로 시비 중인 건물 관리 아저씨와 운전자, 리어카꾼과 엿장수, 팔던 과일 놔두고 경마하러 들어가는 과일장수, 술 먹고 주정 부리는 취객, 경마장에 들어가려고 하는, 들어가서는 안 되는 사람과 이를 막는 경비아저씨, 1층에 근무하는 질서유지 요원 등의 모습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몰래 가지고 들어가려던 술을 들켜서 뒷문으로 들어가려고 돌아가는 손님과 이를 따라가는 질서유지 요원의 모습도 있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급한 마음에 헬멧도 벗지 않고 올라가는 손님들도 있다. 건물에 올라가서 밖을 볼 때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이 바퀴벌레처럼 그득한 오토바이와 자전거다.
경마가 진행되면서 야바위꾼과 구경꾼들, 실의에 빠져 길가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싸쥐고 있는 사람, 누군가에게 마구 고함을 지르고 있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시끄러워지는 중이다. 가끔 들리는 예상지와 종합지를 파는 아주머니들의 싸우는 목소리도 한몫한다.
또 침 뱉는 사람, 담배꽁초 버리는 사람, 예상지와 종합지의 필요한 부분만 찢고 나머지는 버리는 사람, 마권과 구매표를 갈기갈기 찢어 뿌리는 사람들도 있다. 지저분해지는 중이다. 종종 하늘에서 마권이나 구매표가 펄럭펄럭 내려오기도 하는데 이는 몇 층인가의 어떤 손님이 홧김에 창문 밖으로 이것들을 던지고 계시다는 뜻이다.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모른 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차갑다.
건물 안에는…
다른 층에는 다른 입주업체가 들어오는데 신용회복지원위원회의 상설 상담소가 마사회 바로 위층에 있는가 하면 웅진코웨이 같은 일반 회사들도 있다. 스크린 경마장과 같은 성인 오락실이 있는 곳도 있다. 경마하다가 신용불량자가 되면 위층 신용회복지원위원회에 올라가 상담을 받고 내려와서 다시 경마를 하는 경우도 있다.
1층에 스크린 경마장과 같은 성인 오락실이 있는 경우는 더 심각하다. 일부 경마팬들이 경마가 끝나고도 건물을 나서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성인오락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떤 사람은 경마에서 딴 김에 오락실에서 좀 더 따보려고, 어떤 사람은 경마장에서 다 잃어 집에 들어가기가 부끄러워 성인오락실의 문을 연다. 웅진코웨이 같은 일반 기업이 있는 경우는 입주해놓고 경마장 때문에 다시 나가려고 한다는 소문이 돈다.
작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바다이야기’ 사태로 정부는 2006년 10월 29일부터 성인오락실의 영업시간을 오전 9시에서 자정까지로 제한하고 있지만 실제로 얼마나 지켜지는지는 의문이다. 일하면서 종종 보게 되는 ‘찌라시’에 따르면 영업시간이 ‘오후 5시에서 익일 05시까지’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로 대출 관련 홍보물이 가장 많고, 성인 오락실, 성인용품 홍보물도 종종 눈에 보인다. 대출 관련 홍보물들을 보면서 ‘이런 거 누가 전화할까’했는데, 영등포 지점에서 일할 때 한 손에 ‘소액대출’이라고 적힌 카드를 들고 떨리는 손으로 공중전화 버튼을 누르는 손님을 본 적이 있다.
객장에 들어가게 되면 우선 좌석과 창구들, 텔레비전을 볼 수 있다. 공중전화가 있는 층도 있고 ATM기기가 있는 층도 있다. 텔레비전은 예전에는 브라운관을 나무상자에 넣어둔 모습이었는데 평면 TV로 바꾸면서 천장에 매달아 둔 모습이 됐다. TV는 벽면을 따라 층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고 좌석은 TV를 향해 있다.
창구의 배치는 지점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영등포 지점은 창구가 한쪽에 일렬로 몰려 있는 형태다. 반면 지금 일하는 동대문 지점의 3층부터 5층까지처럼 창구를 가운데 몰아놓고 반반씩 양쪽을 향해 배치한 지점도 있다. 2층과 VIP실, 6층은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동대문 지점의 4층을 평면도로 봤을 때 중심에서부터 바깥으로 발매 창구, 좌석, TV가 있다. 사람들은 주로 창구와 좌석 사이의 공간으로 다니고 마권을 살 때는 줄을 선다.
1년 9개월 동안 일한 영등포를 떠나서 동대문 지점에 처음 왔을 때 새로운 만남과 깨끗한 시설들이 좋기는 했지만 일했던 사람으로서 정말 볼수록 답답한 구조가 아닐 수 없었다. 화장실이 두 군데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옆의 화장실은 마치 담배를 피우라고 만들어 놓은 듯 건물 안쪽으로 쑥 들어가 있다. 우리가 아무리 단속을 해도 중과부적이자 결국 마사회에서는 그쪽 천장에 환풍 시설을 설치했다.
창구만 해도 한쪽 벽면에 일렬로 늘어선 것이 아니라 가운데 창구가 있고 반반씩 반대편을 향해 있는 구조다. 이 구조가 좋지 않은 것은 사각지대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가운데 공간을 창구가 막고 있 다보니 한쪽에 있으면 고개를 돌려도 창구만 보일 뿐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가 없다.
마권 발매 마감 10분 전에 창구 옆에 서 있어야 하는 근무자도 창구가 한 줄로 늘어선 경우보다 더 필요하게 된다. 발매원들 입장에서는 건물 바깥과 통하는 창문이 없으니 공기가 안 좋을 수밖에 없다.
경마팬들 입장에서는 마권을 사려고 줄을 서면 이동공간이 없어져 버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이동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새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경우에도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고, 이를 역이용해서 새치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기 쉬운 구조다.
창구와 좌석 사이에 있는 건물의 기둥들은 가뜩이나 좁은 이동 공간을 더 좁게 만들고 줄을 섞이게 한다. 건물의 계단과 화장실에는 마사회가 관여하지 않았겠지만 객장 내 구조에 대해서는 분명 관여했을 텐데, 이런 점을 고려하지 못한 것일까?
5만 4천 155명. 이 인원은 마사회 홈페이지에 공시된 서울 13개 실내경마장 각 지점의 입장정원을 모두 더한 숫자다. 짐작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입장정원, 1일 평균 입장인원이다. 실제로는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다. 입장정원이 큰 곳으로는 영등포(11000명), 창동(8410명), 용산(5840명) 등이 있다.
서울의 13개 지점을 제외한 나머지 20개의 지점에서 밝히고 있는 입장인원을 모두 더하면 7만 9천 141명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과천 본장을 제외한 서울에서만 5만 명 이상, 전국에서 1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건물에 모여 텔레비전 화면을 보며 열광하는 경마, 이 경마는 과연 어떻게 시행되고 있을까. (과천 본장의 수용 인원수는 해피빌 관람대 3만 5천명, 럭키빌 관람대 4만 2천명이고, 제주공원의 경우 6천 4백 명, 부산경남 공원은 3만 명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