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선배랑 저녁 잡혔다”
온라인 매체 시절 이런 지침을 자주 받았다. 그날은 팀원 모두가 저녁 자리에 참석해야 하는 자리다. 혼자 빠져나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정된 저녁 식사 자리에 도착했다. 제법 호화스러운 음식점이다. 기자 월급으로 후배들을 데리고 삼겹살에 소주를 산다고 해도 수십 만 원이 나오는데, 여기는 단가가 좀 세다.
술을 사겠다고 하는 선배는 미리 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일면식이 없는 이가 한 명 동석해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였다.
“오늘 저녁 자리 동석해”
팀 대 팀으로 마시는 술자리도 많았다.
취재원과의 대면식이라는 명분은 있었지만, 결국은 서로 면피하는 자리였다.
오고 가는 술잔에 의미를 담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날은 결국 무의미하게 애꿎은 술과 간만 죽어나는 자리가 된다.
“비싼 거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후배 입장에서는 이런 자리에 매우 불편하다.
솔직히 비싼 거 먹고 싶은 생각도 없고, 정말 먹고 싶다면 알아서 사 먹으면 된다. 처음 보는 이에게 신세 지는 느낌은 굉장히 불편하다.
친한 선배가 아니어서 그와 같이 식사하는 것도 불편한데, 여기에 생판 모르는 이까지 함께하면 ‘들러리’된 기분이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런 느낌이랄까…
솔직히 후배들은 취재할 시간도 모자라 하루하루 아이템을 구걸하며 버티며 살아가는데, 저녁 술자리까지 강제로 해야 하는 상황이면 정말 절망적이다.
물론 고급 취재원을 소개해주는 자리라면 쌍수를 들고 가겠지만, 안타깝게도 선배 술자리에 들러리일 때가 대부분이다.
기자회견장
기자회견장에 가면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다. 기자회견에는 관심 없고 회견장에 참석한 이들에게 주는 선물이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이들을 볼 때다.
실제로 기자회견이 끝나면, 민망할 정도로 줄 서 있는 경우를 자주 봤다.
‘나만 깨끗하다’는 것이 아니다. 구걸하듯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솔직히 부끄럽다.
업체들이 그런 기자들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우습게 여길까.
실제로 한 홍보부장은 선물을 받지 않고 가는 나를 붙잡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기자님 선물 안 가져가세요?”
“아… 네… 괜찮아요…”
“에이 그러지 말고 여기 하나 더 드릴게요. 가져가세요”
순간 난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굉장히 사람을 우습게 보는 듯한 눈빛… 손을 뿌리치고 나왔다. 아직도 그 눈빛이 생생하다.
김영란법 시행
이런 측면에서 난 김영란법이 좋다.
불필요한 저녁 자리를 가지 않아도 된다. 자기 돈 내기 싫은 사람들과의 저녁 자리가 대폭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불편한 사람들과 만나지 않아도 된다. 점심으로 대신하자는 명분이 생긴다. 물론 점심을 먹으면서 서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저녁 자리를 하면 된다. 이땐 서로 더치페이하면 된다. 물론 내가 사도 된다.
일부 수십, 수백만 원의 비정상적인 접대를 받아왔던 이들에게 김영란법은 하나의 악법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 기자에게 김영란법은 좋은 법이다.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상투적인 허례허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김영란법에 감사하다. 기자들의 로망인, 저녁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명분을 안겨줘 감사하다.
김영란 법이란?
- 공무원을 포함해 공공기관과 언론사, 사립학교 임직원, 이들의 배우자까지 합치면 법 적용 대상자는 4백만 명.
- 부정청탁을 하는 건 누구든 예외 없이 금지. 위의 대상자는 부정청탁에 따른 직무수행을 해선 안 됨.
(금품 제공 없이 부정 청탁만 해도 처벌. 청탁의 실제 실현 여부와도 상관없음) - 한 번에 1백만 원, 1년에 3백만 원 이상 금품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 이 금액을 넘지 않아도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과태료 대상. (부정청탁이 드러날 경우 청탁을 한 당사자는 1천만 원 이하, 청탁을 전달한 사람은 2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 공직자가 청탁을 들어줬다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
- 다만, 원활한 직무 수행이나 사교 목적을 위해서 예외뒀는데, 식사비는 3만 원, 선물은 5만 원, 경조사비는 10만 원까지 허용. (밥을 먹고 자리를 옮겨서 커피를 마실 경우에 액수를 합해 3만 원을 넘으면 안 됨. 공직자는 커피 한 잔도 얻어먹어서는 안됨)
더 자세한 정보는
- 김영란법 – Daum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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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신동진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