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임대아파트 거주자의 죽음
지난 6월 3일 오후 26세 청년 이모 씨가 임대아파트 베란다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4년 10월부터 임대아파트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그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망하자 이모씨와 아버지가 함께 살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어 SH공사로부터 퇴거 통보를 받았다.
이 씨는 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을까? 그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어 취업을 하기 힘들었고, 일자리를 구해도 한 달을 채 다닐 수 없었다. 그래서 소득이 없었지만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었다. 신체에 장애가 없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일정치 않은 정신장애인의 경우, 근로능력이 없다는 판정을 받아 수급자로 선정되기는 매우 어렵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이 씨가 아버지의 집으로 전입신고를 할 경우, 아버지는 수급비가 삭감되거나 수급에서 탈락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전입신고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퇴거 통보의 이유인 전입신고 문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로 인해 발생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씨가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 살아야 했던 이유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청년은 소득이 없어도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의 죽음은 한국 사회 주거권의 피폐한 현실을 비춘다.
5퍼센트에 불과한 공공임대주택
주택정책이 처음 수립되던 시기부터 지속되어온 정부의 관심은 건설 경기 부양을 통한 경제발전이었다. 따라서 주택정책도 임대주택보다 자가주택 공급 위주로 설계되었다.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경제개발과 주택 모두에서 소외된 도시빈민과 저소득 노동자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단편적·상징적인 수준에서 출발했다. 이후에도 정부는 석유위기, IMF 등 국가 외부적 충격과 부동산 시장 상황, 여론 등을 의식하며 그때그때 방향을 수립하고 수정해왔다.
그 결과 영구임대주택, 50년 임대주택, 국민임대주택, 보금자리주택, 행복주택 등 각 정권마다 이름을 바꿔가며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오긴 했지만, 10년 이상 거주 가능한 장기공공임대주택의 공급률은 턱없이 부족하다. OECD 평균 11.5퍼센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5퍼센트대에 불과한 실정이다.
주택 임대가 대부분 민간에 맡겨진 상황은 많은 이들을 주거 빈곤으로 몰아넣고 있다. 현재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절대적 주거 빈곤층이 500만 여 명이고, 주거환경이 열악한 집·옥탑 거주를 포함하면 579만 명, 여기에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 비주택거주민을 포함하면 600만 명(13.1퍼센트)이 주거 빈곤 상태에서 살고 있다. 인구의 20퍼센트가 소득의 절반 이상을 주거비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상대적 주거 빈곤 또한 심각한 상황이다.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의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다. 민간임대시장의 높은 임차료를 감내하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주거환경이 좋지 못한 거주지를 비자발적으로 택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인구 천만의 메가시티 서울시의 주거정책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박근혜 정부의 민간임대 활성화
박근혜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대한 의지가 없다. 2013년에 11만 호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2013~14년 동안 증가한 건 3만 6264호에 불과하다. 특히 건설임대와 달리 의지에 따라 바로 공급 가능한 매입임대주택은 8192호, 전세임대주택은 783호 증가에 그쳐,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계획만 있고 실행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정권이 추진하려는 것은 기업형 민간임대인 ‘뉴스테이’를 임대주택의 새로운 대안으로서 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뉴스테이는 부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의 대안이 전혀 아니다. 뉴스테이의 정책 대상은 민간임대시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주거 빈곤층이 아니라 비싼 임차료를 감당할 수 있는 중·고소득층이다. 기업이 중산층을 대상으로 임대업을 하도록 하고, 그 기업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뉴스테이다.
박원순 시정의 민관협력형 주택정책
박원순 서울시장은 진보적인 주택정책을 추진하고 있을까? 서울시의 임대주택 공급 계획 중 서울시에서만 시행하는 정책으로 서울리츠와 사회주택이 있다. 서울리츠(REITs)는 SH공사가 자본금을 출자해 부동산투자회사를 설립하고,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하여 부동산에 투자·운용하여 발생하는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하는 방식이다. 소득7분위 이하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가구를 대상으로 주변 임대료 시세의 80퍼센트 이하로 저렴하게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결국 민관 협력 형태의 기업형 임대의 일종이다. 서울리츠 역시 투자자들의 수익을 보장해줘야 한다.
서울시의 ‘사회주택’은 기존의 사회주택 담론과 달리 좁은 의미로 공공이 투자하고, 민간이 운영하는 형태를 특정해서 일컫고 있다. 서울시는 사회적 기업, 주택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주체에게 토지를 장기간 저리로 임대해주거나, 리모델링 비용의 50퍼센트(최대 1억 5000만 원 이내)를 지원해준다. 또 건축비에 대해선 사회투자기금을 저리로 대출해준다. 그러나 사회주택 또한 수익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토지, 대출금에 대한 임대료와 신축·리모델링 비용이 여전히 존재해 수익성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규모 주택협동조합이 아닌 이상 참가할 사업자가 없다.
실제 작년 사회주택 공급계약은 30호에 그쳤으며, 올해의 경우도 상반기 500가구 이상 공급을 목표로 모집에 나섰으나 지원 사업자가 전무했다. 공급물량이 전적으로 의지가 있는 사업주체 유무여부에 달려있어 대규모 공급이 불가능하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7월 4일부터 다시 공모를 시작하면서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토지 임대료 수준을 낮추고, 사업자격 대상을 중소기업까지 확대했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사회주택 사업자로 나선다면 이는 ‘서울형 뉴스테이’가 될 뿐이다.
안정된 주거에 대한 열망
주택 소유 위주의 주택정책은 전환되어야 한다. 사실 집 소유에 대한 열망은 안정된 주거에 대한 열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임차인의 입지는 매우 취약하다. 현재 필요한 것은 ‘주택 소유의 권리’가 아닌 ‘주거에 대한 권리’, 즉 주택을 소유하지 않았어도 안정된 주거를 영위할 수 있는 권리이다.
안정된 주거의 요건은 무엇일까? 자신이 원하는 곳에, 자신이 원하는 혹은 필요한 기간 동안,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임대료로, 자신에게 필요한 형태의 거주공간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안정된 주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너무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요구로 제기된 것들이다.
공공임대주택 확대가 답이다
공공임대주택의 확대는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할 수 있다. 하나는 취약한 주거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보다 나은 주거를 제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안정된 주거의 올바른 예’로서 민간임대시장을 견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공공임대주택은 잔여적 공급정책으로 인해 이 두 가지 역할 모두가 미약하다.
그동안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철저히 공급자의 입장에서 시행되어 왔다. 앞서 언급한 ‘안정된 주거의 요건’을 수요자에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목표한 수량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데 신청자들을 어떤 기준으로 줄을 세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전부였다. 때문에 각종 점수표와 함께 요건은 까다로워졌고, 수요자들이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해보기도 전에 포기하게 만든다.
어렵게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했더라도 유형에 따라 임대료가 부담스러운 경우도 많다. 10년 이상 장기간 거주 가능한 곳도 적어 여전히 주거가 불안정할 수도 있다. 민간임대시장을 견제하기엔 재고라는 측면에서도, 내실이라는 측면에서도 한참 부족한 것이다.
따라서 주거공공성의 확보를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의 전면적 확충을 요구해야 한다. 잔여적으로 찔끔찔끔, 최대한 불쌍해보여야만 겨우 얻는 것이 아니라, 주거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로서 공공임대주택이 존재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민간임대시장의 임대료 수준을 통제하고, 최저주거기준에도 미달하는 불량주거지들이 사라지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수익성’ 앞에 억눌린 ‘적절한 주거를 영위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당당한 요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원문: 오늘보다 / 필자: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 특성이미지 출처: New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