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자본, 결탁하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비율은 OECD 평균의 2배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38% 낮은 임금을 받는다. 이런 차별적 노동 환경은 저임금 근로자를 양산했다. 2015년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은 세계 2위다. 97년 고용시장을 개혁하겠다는 이유로 도입된 비정규직법은 그동안 한국의 노동환경을 심각하게 악화시켰다.
20년이 흐른 2016년 정부와 자본은 이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현재 한국의 임금체계는 70% 이상이 호봉제다. 공공기관부터 성과제를 도입하여 민간에까지 확산시키겠다는 게 정부와 자본의 그림이다. 성과연봉제의 목적도 고용시장 개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권력과 자본이 결탁한 정책 치고 국민의 삶을 힘들게 하지 않은 게 없다. 대학등록금만 봐도 그렇다. 사학자본이 대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며 등록금 자율화를 주장해서 관철시켰는데 대학등록금만 천정부지로 올렸을뿐 한국 대학의 경쟁력은 제고되지 못했다.
성과연봉제의 유효성
한 사회의 제도엔 그 사회와 닿아있는 맥락이 있다. 그래서 다른 사회의 제도를 도입할 때는 그 맥락을 잘 살펴 적용해야 한다. 맥락을 놓치면 제도는 그걸 도입하려는 자들의 탐욕을 위해서만 작동하게 된다.
성과연봉제는 우리 사회와의 맥락을 찾기는 어려운 제도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호봉제로 세계가 칭찬하는 경제기적을 이루었고 지금도 한국경제에 대한 서구 선진국의 호평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건 호봉제가 한국경제에서 잘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오히려 한국보다 성장율이 낮은 경쟁국들이 한국의 협력적 노동시스템인 호봉제를 배우는 게 맞다.
대체 유기적인 노동에 분절적인 평가는 가능할까? 세계적 기업들조차 성과연봉제의 효과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MS나 GE 등은 저성자과를 해고했던 성과평가제를 버리고 직원들의 협력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한국GM은 2014년 15년 동안 운영했던 성과연봉제를 버리고 호봉제로 돌아갔다. 세계적 평가기관인 맥킨지는 이런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성과평가제가 엉터리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공기관과 성과연봉제
공공기관에서의 성과연봉제는 더욱 맥락이 없다. 일단 성과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다. 공공성이 중요한 목표인 공공기관에 이익을 요구하면 공공성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공기관이 이익을 거둘 수록 시민은 손해를 보게 되는 제로섬 게임이 되면 성과는 시민들 호주머니 터는 일이 될 수 있다.
성과연봉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객관적인 평가표가 어렵다는 것이다. 달을 가리키면 사람들은 손가락을 본다. 당연하다. 달을 봐야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으니 그 달을 가리킨 사람을 볼 수밖에. 평가표가 모호하거나 납득되지 않으면 평가자를 볼 수밖에 없다. 2011년 OECD 자료는 성과평가제가 경영진의 정책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한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기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성과평가제가 직원들 통제수단이었다는 말이다.
비정규직법에 성과연봉제를 더하면
이쯤되면 비정규직법으로 한국 노동환경을 헬조선으로 만든 자본이 성과연봉제를 어떻게 써먹을지 짐작이 된다. 성과연봉제의 맥락은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성과연봉제로 어떻게 하면 자본의 이익을 더 증대할 것인가만 집중적으로 고민할 것이다.
일단 노동조합을 무력화 시킬 것이다. 노동자는 개인이 아닌 집단이다. 집단이 되어야 자본에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과연봉제는 노동자 개인을 평가하면서 집단으로서 노동자를 무력화 시킨다. 헬조선에서 노조마저 무력화된다면 그건 재앙이다.
차별도 더욱 심해질 것이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법 도입 당시를 떠올리면 이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과거 현대차의 식당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현대차 노동자들과 똑같은 월급을 받았다. 그러나 IMF가 터지면서 식당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비정규직화 되었다. 당시 많은 여성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정리해고 되었고 이후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똑같은 일을 해야 했다.
현재 기업의 인력 구성상 성과평가자는 대부분 남자다. 그들이 임신과 육아로 부재한 여성에게 좋은 성과를 줄까? 비장애인은 장애인에게 어떤 평가를 줄까? 지역이 다르면? 나이 많은 노동자들은? 한국의 성과평가제는 성과가 높은 사람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약자들의 월급을 착취하는 무기가 될 것이다.
“성과연봉제가 공공에서 시작해서 민간까지 잘 퍼져나간다면 아마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이 상당히 높아질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22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직접 한 말이다.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이어서 민간까지 퍼져 한국 사회는 성과주의 사회로 가게 된다. 비정규직법이 도입되자 가능한 모든 분야까지 비정규직화 시킨 자본이다. 이익을 빼먹을 수 있다면 청소노동자들까지도 성과연봉제를 도입해서 빼먹을 것이다. 비정규직법에 이어 성과연봉제까지 갖게된 자본이 주무르는 한국의 미래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원문: 거다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