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휴의 마지막 날, <가디언>에 실린 팀 로트(Tim Lott)의 결혼생활에 관한 칼럼을 번역했다. 전문은 블로그에 두고, 줄인 버전과 나의 코멘트를 옮겨왔다.
무엇이 성공적인 결혼을 만드는지에 대해 쓰고 싶지만, 안타까운 건 나도 그 답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건 원만하게 유지되는 결혼이 어떤 것인지인데, 그건 좀 다른 문제다. ‘행복한 결혼’에 대해서라면, 가장 먼저 이야기할 것은 과연 그런 것이 많이 있긴 한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대략 절반의 결혼이 이혼으로 끝난다.
나는 이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이들 가운데 절반은 아이나 돈,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버티고 있을 거라 의심한다. 어떤 이들은 정말로, 한결같이 행복하지만 그건 특별한 종류의 사랑이나 기술 때문이라기보다 잘 결합된 제반 조건이라는 행운 덕분이다.
유지되는 결혼의 대부분은 행복이나 불행이 아니라 적응 및 협상과 관련이 있다. 서로가 사랑한다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것에 불과하다. 내 생각에 결혼생활에는 세 가지 필수요소가 있는데, 모두 매우 갖추기 힘든 것들이다.
첫 번째 요소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미 이 지면에서 한 번 쓴 적이 있어 다시 반복하지는 않으려 한다. 이번 글에서는 좋은 커뮤니케이션이란 연습, 선의, 의지, 그리고 상당한 양의 타고난 재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해두는 정도로 충분할 것 같다.
두 번째 요소는 존중으로, 존중은 여러 면에서 사랑보다 중요하다. 사랑은 생겼다 사라지지만 상대에 대한 존중은 그 와중에도 지속되며, 마음의 썰물 후에도 사랑이 흐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모든 오래가는 결혼에는 반드시 서로에 대한 존중이 존재한다.
세 번째는 신뢰인데, 세 가지 가운데 신뢰가 가장 어렵다. 왜냐하면 한 번이라도 실망한 적이 있다면(물론 우리는 모두 그런 적이 있다), 신뢰를 다시 쌓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신뢰란 바람을 피우거나 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오히려 지키지 못한 약속과 좋지 않은 의도, 좌절된 희망 같은 사소한 여러가지들이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당신은 반드시 믿어야 한다. 실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아무 것도 없을 때조차 믿어야 한다. 그리고 실망하게 되더라도 믿고, 다시 믿어야 한다. 이는 내가 ‘망각력’이라 부르는 것을 필요로 하는데, 망각력이란 기억력의 반대말이다. 당신은 당신이 받은 상처와 상대가 한 잘못에 대해 잊고 또 잊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다고 해도 당신은 절대, 결코 ‘행복한 결혼’에 이를 수 없다. 그건 다다르는 종착역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은 끊임없이 진행되는 과정이며 살아있는 유기체라서, 존재론적인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그 순간 만료된다. 사랑의 부족보다 결혼을 죽이는 것은 안주와 게으름이다. 그리고 이것이 결혼이 어려운 일로 묘사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도 이보다 궁극적으로 보람되지는 않을 것이다.
2010년의 웹진 연두의 칼럼으로부터 시작되어 2011년의 대학내일 칼럼, 2013년 연애인문학 강의와 2014년 『내가 연애를 못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학 탓이야』, 그리고 2015년 여기저기 연재했던 연애칼럼들까지 20대의 절반을 연애를 붙들고 지냈다. 연애 참… 열심히 했고, 그보다 더 많이 고민했고, 정리된 생각들은 글로 썼다.
이제 연애의 시간이 만료되었음을 느낀다. 이유는 명료한데, 결혼했기 때문(…)이다. 연애가 던지는 질문들과, 그것이 안기는 강렬한 감정들에 관심이 식어버린 스스로를 반쯤은 당혹스럽고, 반쯤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바라보고 있다.
결혼은 아직 그만큼 내게 흥미로운 주제는 아닌 것 같다. 다른 글에서도 한 번 쓴 적 있지만 나의 결혼은 여러 모로 한국사회에서 결혼에 얹어지는 각종 짐들이 제거된 무균실 같은 것이기도 하고, 지금 내가 절실하게 하는 고민들은 결혼이라는 테두리로 잘 묶이지 않는 것들이다.
나는 차라리 대학원을 박차고 나와 제주에 온 나란 인간, 이제까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상당히 타율적이고 에너지가 적은 나란 인간이 앞으로 과연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가 고민이다. 물론 이 고민의 가장 큰 변수 중 하나가 나의 남편이긴 한데…
그래도, 결혼에 관한 글들을 읽으면 아무리 통속적인 글이라도 예전보다 훨씬 공감하게 된다. 이 글 역시 굉장한 통찰을 담고 있다고 보긴 어렵고 간단히 하나 번역해보려고 고른 거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부분들에서 내 경험을 반추한다. 예컨대 ‘망각력’과 ‘신뢰’에 대한 부분.
내가 결혼 이후 남편과의 갈등에서 경험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나 이 사람은 변하지 않으리라 홀로 생각할 때였다. 우리는 오래 가는, 가급적 평생 지속되는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상대의 어떤 부분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고약한 기분에 빠져들게 한다. 잘못된 선택을 한 자신에 대한 자책, 후회, 상대에 대한 분노, 서운함, 이 모든 것들이 반복되리라는 예상에서 비롯되는 무언가가 짓누르는 듯한 고통.
그래서 지난 8월말 아주 크게 싸우고 나서 우린 서로를 그냥 무조건 믿기로 했다. 나는 당신이 우리를 위해 노력할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사람 어디 변하나 영 변하지 않을 것 같고, 같은 실수가 앞으로 수백번 반복될 게 너무나 당연히 예상되어도, 일종의 자기주문처럼, 그래도 나는 너의 선의와 우리 관계와 나의 인내를 믿는다는 것이다. 일종의 나믿가믿 같은 것…
그리고 이 근거 없는 믿음에 가장 필요한 것이 선택적 망각의 능력이다. 모든 관계를 지금부터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지나간 잘못들로 나의 새 믿음을 위축시키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관계를 끝내는 것까지를 고려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냥 잊고 매일 새롭게 믿어야 한다.
뭔가 쓰고 보니 결혼이란, 하나이며 전체인 타자(他者)와 영원히 함께 살기로 하는 것이란, 시시포스의 형벌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게 정말 rewarding한 일이라는 데, 참 상투적인 마무리라 번역하면서도 별로라 생각했지만, 아낌없이 동의하게 된다. 기혼의 깨달음이다.
아, 혹시나 하여 쓰는 사족. 뭔가 이 글만 보면 남편만 나를 속 썩이는 모양새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나도 열심히 힘 닿는 대로 남편의 복장을 터뜨리고 있음을 밝혀둔다.
원문: 심야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