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상한 떡밥이긴 하지만, 오심 얘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 없어서 몇 자 적는다. 지난주 프로야구는 오심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넥센-LG의 경기에서 2루심 박근영 심판이 저지른 희대의 오심으로 여러 사람이 피를 봤다. 브랜든 나이트의 평균자책점이 치솟았고, 넥센은 연패의 늪에 빠졌다. 주위의 몇몇 넥센 팬은 급격한 혈압 상승으로 건강에 치명타를 입었고, 염경엽은 엄청난 소화불량을 겪고 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의 밥줄과 건강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프로야구 야구 심판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사건이다. 물론 오심을 한 심판 본인도 검색어 1위에, 평생 들어도 모자랄 온갖 욕을 먹고 2군으로 강등되며 심판의 권위에 치명상을 입었다.
이번 사건을 놓고 각종 매체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심을 근절하기 위한 다양한 해결책이 나온다. 전가의 보도인 비디오 판독부터, 심판에 대한 징계 강화, 심판 재교육까지 이번 기회에 심판들의 못된 버릇을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는 분위기다.
물론 이런 조처들이 오심을 줄이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가령 비디오 판독을 강화하면, 인간 눈으로는 분간하기 힘든 몇몇 상황에서 잘못된 판정으로 피해를 보는 사례를 조금은 줄일 수 있을 거다. 징계 강화와 재교육도 집중력 부족과 잘못된 위치 선정으로 인한 오심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걸로 충분할까? 비디오 판독이 정확한 판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될 순 있지만, 야구 경기의 특성상 무한정으로 활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디오 판독을 할 때마다 경기의 흐름이 끊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경기당 사용할 수 있는 횟수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얘긴데, 이렇게 되면 비디오 판독을 하는 효과도 제한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비디오 판독은 육안으로 구분이 힘든 상황에서 적용하게 마련인데, 이번 박근영 심판의 오심은 누가 봐도 그 즉시 아웃임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의심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오심이었다.
ESPN 전문가의 조언, 한국은 이미 하고 있다고요?
심판에 대한 징계 강화나 관리도 마찬가지. 일부 팬들은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사실 한국 프로야구는 다른 리그에 비해 심판부에 대한 관리와 감독이 꽤 엄격한 편에 속한다. 얼마 전 미국의 스포츠 매체 ESPN 제이슨 스탁이 ‘심판 판정을 향상시킬 8가지 방법(Eight ways to improve umpiring)’이란 칼럼을 썼는데, 여기서 스탁이 ‘획기적인’ 방법처럼 내놓은 제안 대부분은 이미 한국 프로야구에서 시행하고 있거나, 오히려 더욱 가혹하게 적용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스탁이 제시한 8가지 해결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비디오 판독을 늘리고
②선수 출신을 채용하고
③능력이 떨어지면 자르거나 마이너로 내려 보내며
④필요하면 징계도 내리되
⑤잘하는 심판에겐 상을 주고
⑥심판들이 보다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자.
⑦판정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답변할 의무를 갖도록 하고
⑧무엇보다 오심을 했을 때는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라.
자, 일단 비디오 판독을 늘리자는 제안은 앞에서 설명했으니 넘어가고 3번과 4번을 보자. 스탁은 심판도 제대로 못하면 선수처럼 잘리거나 마이너로 내려가야 한다고, 그걸 모두가 알 수 있게 공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심판에 대한 징계도 공개적으로 발표될 필요가 있다고 쓰고 있다.
이거 사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시행한지 꽤 오래된 일이다. 프로야구 심판들은 문제가 생기면 2군으로 강등되거나 장기간의 출장 정지 징계를 받는다. 매 경기마다 판정 정확성을 갖고 평가를 매겨 시즌 뒤에는 고과에도 반영한다. 점수가 심각하게 낮을 경우에는 계약 해지 철퇴를 맞을 수도 있다. 이거 도입하느라 2007년에는 심판위원회가 집단으로 경기를 보이콧하는 사태를 겪기도 했다. 온갖 반발과 진통을 겪은 끝에 심판들을 ‘쪼는’ 장치를 어렵게 마련했다.
반면 메이저리그 심판들은 잘리거나 마이너로 가거나 징계를 받는 일 자체가 극히 드물다. 특히 오심 문제로 마이너로 내려가는 경우는 거의 생기지 않는다. 심판노조가 워낙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앙헬 에르난데스처럼 비디오 판독에서조차 오심을 범하는 심판도, 밥 데이비슨처럼 스트라이크존이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 시각화 모양으로 계속 변하는 심판도 건재하다. 감독이건 선수건 심판에게 개기면 그 즉시 퇴장시켜 버린다. 한국 심판들은 퇴장 한번 시키면 심판 본인 평가에도 악영향을 받기 때문에, 퇴장 명령을 내리는데 훨씬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5번의 인센티브 제안도 마찬가지. 제이슨 스탁은 잘하는 심판에게는 연봉 인상과 시상을 통해 훌륭한 판정을 장려할 것을 권한다. 이 역시 프로야구에서는 이미 하고 있는 일이다. 프로야구는 2009년부터 3단계 심판 등급에 따라 연봉 인상폭이 결정되고 있다. 고과가 좋으면 연봉도 많이 오르고, 고과가 나쁘면 연봉에 손해를 보는 시스템이다. 우수 심판은 연말 시상식에서 상도 받는다. 연차에 따라 연봉이 올라가는 미국 심판들보다는 더욱 잘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6번 항목의 이동거리와 일정 문제도 프로야구에선 해당사항이 없다. 스탁의 글에서는 심판들의 힘겨운 이동 스케쥴이 판정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자고 권유하고 있다. 미국 심판들은 4인 1조로 비행기를 타고 미국 전역을 이동한다. 장거리 비행을 하다 보면 컨디션은 엉망진창이 되고, 자연히 판정의 정확성에 영향을 미친다. 경기 중에 심판 하나가 지각하거나 부상을 당하면 남은 세 명이서 경기를 진행해야 한다. 이따금 MLB 경기에서 2루심 없이 진행되는 경기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그에 비해 한국 심판은 5인 1조로 움직이며, 가장 먼 이동거리래야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 안팎에 불과하다. 경기 시간에 지각하거나 컨디션을 망칠 일은 별로 없다. 심판 하나가 다치면 대기심이 대신하면 그만이다. 미국보다 훨씬 좋은 몸과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판정에 대해 문제제기가 나올 때 해명하라는 7번의 지적도 비슷하다. 프로야구에선 조종규 심판위원장이 필요할 때마다 언론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심판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심판원 본인이 기자들에게 설명하기도 한다. 가령 얼마 전 ‘야구교실’ 논란이 일었던 최규순 심판위원의 경우, 다음날 경기 전 취재진을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의혹을 해소한 바 있다. 스탁의 글에 등장하는 메이저리그 심판 앙헬 에르난데스는 비디오 판독에서 어이없는 오심을 해놓고도 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이 면에서도 명백히 한국 심판들이 낫다.
선수출신 심판 도입, 미국이 한국을 배우려 하고 있다?!
심지어 스탁의 제안 중에는 프로야구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내용도 있다. 2번의 ‘선수 출신들을 채용하라’는 제안이 그렇다. 일반인 출신으로 심판학교를 거쳐 심판이 된 이들이 대부분인 메이저리그와 달리, 한국 프로야구는 심판원의 절대 다수가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다. 야구계에서는 이른바 ‘엘리트’ 출신들이다.
일반 출신과 엘리트 심판, 뭐가 다를까? 한 전직 심판원은 “야구 경기를 읽는 눈과 순간적인 판단력, 신체적인 능력에서 일반인 출신과는 차이가 크다”고 했다. “비선수 출신이 선수 출신의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따라잡으려면 4~5년은 걸린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일반인 임창정이 심판학교를 거쳐 1군 심판이 된 뒤 한국시리즈에서 주심을 보고 톱스타 고소영과 결혼까지 하는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은 [반지의 제왕]보다 더한 환타지 영화다. 심판이 고소영과 결혼하는 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면 생길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일반 심판이 입봉하자마자 한국시리즈 주심을 보는 일은 해가 텔레토비 동산 모양으로 바뀌어도 생길 수가 없다. 고릴라가 야구하는 [미스터 고]가 차라리 더 현실적이다.
아무튼. 기본적인 자질이 우수한 심판들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한국야구는 미국과 일본에 비해 판정의 정확성도 높은 편이다. 팬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사실은 사실이다. 실제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면 경기당 2~3차례는 기본으로 나오는 오심이, 프로야구에서는 많아야 한 두 차례에 불과하다. 스트라이크/볼도 비교적 일관된 판정을 내린다. 적어도 류현진 경기에서처럼 한가운데 들어간 공이 볼 판정을 받는 사태는 나오지 않는다.
미국야구 낮경기를 보면 볼카운트가 3볼인데 심판은 볼넷을 선언해서 타자가 1루로 나간 뒤 홈런으로 득점했는데 아무도 모르고, 파울이 선언됐는데 2루까지 뛴 1루 주자가 그대로 2루에서 개기다 후속타자 적시타로 홈까지 들어오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실제 작년 메이저리그에서 나온 상황이다… 한국 심판들은 아무리 ‘혼’을 중시하는 그분이라도 이런 실수를 하지는 않는다.
재미있는 건, 요즘 한국야구에선 미국과 반대로 ‘일반 출신 심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온다는 점이다. 엘리트 심판들이 워낙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어서 나오는 얘기다. 야구팬들은 학연과 지연, 선후배 관계로 엮인 심판들이 과연 공정한 판정을 하고 있는지 의심한다. 실제로 외국인 선수들 중에는 경기 전에 덕아웃 근처에서 심판과 감독, 코치들이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친목을 나누는 한국적인 풍경을 의아하게 여기는 이가 적지 않다.
후배 감독이나 선수들을 향해 보여주는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도 문제가 된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감독이나 코치들이 죄다 심판보다 선배다 보니 심판이 너무 꼼짝도 못해서 문제가 됐는데, 요즘에는 그 반대가 됐다. 여기에 HDTV와 초고속카메라의 등장으로 과거보다 심판의 실수가 자주 눈에 띄면서, ‘차라리 일반인 심판이 낫겠다’는 말이 나오는 빌미를 주고 있다.
이제 최근 생긴 오심 논란으로 돌아가 보자. 많은 사람이 박근영 심판의 오심을 ‘일부러 특정 팀을 골탕 먹이려고 했다’ ‘심판 권위에 도전한데 대한 보복’이라고 확신하거나,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사실 당시 상황만 보면 그런 오심은 도저히 일부러 누굴 엿먹이려고 할 수가 없는 오심이다. 굳이 느린 화면을 보지 않아도 아웃인 게 명명백백한데,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오심을 일부러 할 멘탈갑이 어디 있겠나. 정말로 나쁜 맘을 먹고 넥센을 물먹이려고 했다면 그보다 훨씬 애매한 상황에서 교묘하게 불리한 판정을 했을 거다.
박근영 심판은 그저 메이저리그의 짐 조이스가 ‘퍼펙트 오심’을 했을 때처럼 잠시 헛것을 봤거나, 뭔가에 홀렸거나, 아니면 멀쩡한 사람도 이따금 영구나 맹구같은 실수를 하듯이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무슨 음모가 있지 않은가 의심하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물론 박 심판의 심판으로서 자질이나 능력을 문제삼을 수는 있다. 박근영 심판은 이미 ‘임찬규 보크’ 사건 때도 오심을 범한 당사자였다. 하지만 일에서 무능하다고 비난하는 것과, 악의를 품고 고의적으로 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심판의 신뢰 회복, 핵심은 오심의 인정
심판의 자질이나 능력이 아니라, 심판 판정의 신뢰와 공정성이 의심받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번 일로 뿌리 깊은 심판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는 만천하에 드러났다. 야구팬들에게 심판은 레너드 코페트가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이야기한 ‘악당’ 내지는 영화 <더 팬>에서 심판복을 입은 로버트 드니로처럼 여겨지는 실정이다.
앞으로도 언제 어떤 계기로 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심판 불신의 뇌관을 제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아마 다음에는 아예 야구 경기의 정상적인 진행이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심판이 있어야 야구 경기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없을까. 물론 오심을 줄이려는 심판들의 노력은 필요하다. 앞에서 짚고 넘어간 것처럼 비디오 판독이나 심판 교육도 어느 정도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무슨 해법을 동원해도, 결국 심판들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다.
앞서 살펴본 대로 한국야구는 미국야구에서는 아직 시행하지 않는 다양한 방식으로 심판을 관리하고 감시하고 있다. 심판들의 기본적인 자질도 우수하다. 그럼에도 프로야구는 단 하루도 오심 논란이 끊이지 않고, 한번 논란이 불붙으면 온 야구계가 발칵 뒤집히는 난리가 난다. 로봇이 아닌 인간이 심판을 보는 이상, 과학기술의 활용이나 심판에 대한 압박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얘기다.
어쩌면 앞에 나온 제이슨 스탁의 8번째 제안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스탁은 심판들에게 ‘사과해도 된다’고 제안한다. 판정이 잘못됐을 때 이를 시인하고 사과하라. 심판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게 스탁이 주장하는 요지다. 이건 그가 제안한 8가지 해결책 중에 한국 심판들이 가장 취약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동안 야구팬들은 카메라상으로 100% 오심을 저지른 심판이 되레 큰 소리를 치고, 항의하는 외국인 선수를 조롱하는 모습을 보며 분개했다. 판정으로 피해를 본 선수가 심판실에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엘리트 심판 특유의 자부심과 확신이 실수를 인정하기 어렵게 만든 것도 있다. 전경기 중계방송 시대 이전까지는 오심인지 아닌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초고속카메라가 야구공의 실밥이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까지도 포착하는 시대가 됐다. 카메라맨이 마음만 먹으면 2루 베이스 아래서 짝짓기하는 개미들의 잔털까지 포착하는 것도 가능한 시대다. 아무리 두 눈을 부릅뜨고 최선을 다해 판정해도 카메라의 느린 화면을 인간이 따라잡는 건 역부족이다. 600만 달러의 사나이를 데려다 심판을 보게 해도 오심은 시청자들 눈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제 심판이 완벽하지 않다는 건 선수들도 알고, 야구팬도 알고, 심판들 스스로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실수를 했을 때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권위를 내세우며 ‘나는 한번도 오심을 한 적이 없다(미국의 심판 빌 클렘)’고 우기거나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회피하는 대신, 실수했다고, 심판도 틀릴 수 있다고, 앞으로는 더 신경 써서 판정하겠다고 하는 게 어떨까.
심판위원회의 사과, 심판 신뢰 회복의 첫 걸음이 되기를
제이슨 스탁은 심판의 사과가 ‘문제를 크게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자 ‘심판의 신뢰를 해치기보다는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또한 앞의 7가지 제안 중 어느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당장 시행하는데는 제약이 있지만, 8번째로 제안한 태도(attitude)는 언제든 바꿀 수 있는 부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스탁의 말이 옳다. 비디오 판독 도입도, 강도 높은 징계도 심판의 눈을 초고속카메라와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는 없다. 그게 인간의 한계다. 오히려 요즘에는 워낙 비난과 압박 속에서 심판을 보다 보니, 스트레스와 부담감 때문에 오심이 나온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심판이 정말로 공정하게 판정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어떤 유혹이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 있게 판정하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그들이 때때로 실수를 하더라도 사람들은 훨씬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오심에 대해 격렬하게 화를 내는 건, 심판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일부러’ 틀렸다고, 아니면 제대로 보지 않아서 틀렸다고 의심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신뢰가 있다면, 실수에 대해 질책할지언정 그런 의심과 비난은 하지 않을 거다.
앞서 이야기한 ‘퍼펙트 오심’의 주인공, 짐 조이스 심판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실수를 자책했다, 피해를 본 투수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건넸다. 역사적인 오심에도 불구하고 심판으로서 조이스의 권위는 실추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큰 존경을 받았다. 그해 ESPN에서 선수들이 뽑은 최고의 심판 1위는 바로 조이스의 차지였다. 여기에는 조이스가 원래부터 정확하고 공정한 심판으로 권위를 쌓아온 것도 크게 작용했다.
최근 프로야구에서 오심 논란이 벌어진 뒤, 다음날 조종규 심판위원장은 넥센 덕아웃을 찾아가 정중하게 사과했다. 박근영 심판 역시 염경엽 감독에게 울면서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의 고압적인 프로야구 심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던 모습이다. KBO 심판부도 달라지려는 모습을 보인다.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첫 걸음으로는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이번 파문이 심판들이 잃어버린 신뢰와 권위를 되찾는 계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