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기업의 다르면서 같은 성공 이야기
– 1999년 샌프란시스코. 닉은 하루 종일 시내를 돌아다녔지만 마음에 드는 신발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인터넷으로 신발을 팔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처럼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찾다가 하루를 날리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닉은 자신의 생각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먼저 슈사이트닷컴(shoesite.com)이라는 도메인으로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동네 신발가게들을 돌며 신발 사진을 찍어서 가격과 함께 올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슈사이트닷컴에서 신발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닉은 주문이 들어오면 동네 신발가게에서 신발을 사서 보냈다. 물론 소매가로 구매했으므로 수익은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 생각한 비즈니스 모델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확인했다. 가능성을 확인한 닉은 본격적으로 온라인 신발 판매 사업을 시작했다.
– 3년 전의 같은 샌프란시스코. 오라클(Oracle)이 재미없어서 퇴사한 토니와 산제이. 두 사람은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에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아이디어는 인터넷 링크 익스체인지(Internet Link Exchange, ILE)라는 이름의 광고 플랫폼이었다.
개념은 이랬다. ILE 회원은 포인트를 주고 다른 회원의 웹사이트에 광고를 게재할 수 있었다. 이때 지불된 포인트는 웹사이트 주인과 ILE가 반씩 나눠 가졌다. 회원은 무료로 광고를 할 수 있어서 좋았고, ILE는 모인 포인트를 큰 기업에 파는 것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토니와 산제이는 하루 만에 프로그램을 만들고 50여 개의 사이트에 이메일을 보냈다. 반 이상의 사이트가 24시간 내에 참여의사를 밝혀왔다. 실험은 시작되었고 일주일 만에 사업성이 판가름 났다. ILE는 회원들의 입소문을 타고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토니와 산제이는 회원들의 피드백을 통해 ILE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다섯 달 후 빅풋 Bigfoot이라는 회사에서 ILE를 1백만 달러에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토니와 산제이는 2백만 달러면 팔겠다고 했다. 거래는 무산됐다. 1997년 1월 1일, 야후 Yahoo의 제리 양 Jerry Yang이 찾아왔다. 그는 2천만 달러를 제안했다. 거절했다. 대신 세쿼이아 캐피털에게 3백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그리고 2년 후, ILE는 마이크로소프트에 2억 5천만 달러에 팔렸다. 토니와 산제이는 3년 만에 큰 부자가 됐다.
부자가 된 토니는 벤처 프로그(Venture Frogs)라는 투자 회사를 세우고 신생 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방 지루해졌다. 토니는 또다시 재미있는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었다. 마침 투자한 기업 중에 유독 토니의 욕구를 자극하는 곳이 있었다. 결국 1년도 안되어 토니는 그곳에 CEO로 합류한다. 기업의 이름은 슈사이트닷컴. 1999년, 닉의 작은 시험으로부터 시작된 그 신발 판매 회사였다.
슈사이트닷컴은 자포스(Zappos)로 이름을 바꿨다. 자포스는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속에서도 1,300%의 성장률과 75%의 재구매율을 기록한다. 2009년에는 연매출 12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리고 그 해 아마존 Amazon에게 12억 달러에 팔렸다. 이 날까지 토니가 자포스에 투자한 돈은 약 1천5백만 달러였다.
창조- 측정 -학습의 사이클
당신은 ILE와 슈사이트닷컴의 이야기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닉은 인터넷으로 신발을 파는 것에 성공한 후 사업을 시작했다. 토니는 하루 만에 만든 광고 플랫폼에 하루 만에 스무 개가 넘는 회원사를 유치하는 성공을 거둔 후 사업을 시작했다. 둘 다 깔끔하게 승리로 시작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정확한 시장조사, 철저한 계획, 완전한 제품이 비즈니스 성공의 열쇠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런 열쇠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업계 1위의 과점 기업을 신생 기업이 추월하는 허다한 광경이 그것을 증명한다. 변화무쌍한 시장에서 완벽에 근접하려면 테이블에 앉아 시장을 분석하기보다는 직접 시장을 실험해야 한다. 이런 방식은 스타트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의 신사업에서도 이미 입증되었다.
세계 최대의 글로벌 인프라 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의 아버지 에릭 리스(Eric Ries)의 컨설팅을 받아 패스트 웍스(FastWorks)를 도입했다. 패스트 웍스의 구조는 창조 Build – 측정 Measure – 학습 Learn의 사이클로 린 스타트업과 동일하다. 다만 GE에 알맞게 다듬어졌을 뿐이다.
GE는 패스트 웍스의 도입을 통해 공급 체인 15% 통합, 신제품 개발 사이클 30% 단축, 거래 사이클 50% 단축, 고객 응대 속도 4배 향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2014년에 발표된 7HA 가스터빈이 있다. 개발 사이클은 2년 단축되었고, 일찍부터 고객에게 제품을 공개하고 피드백을 받아 적용한 덕분에 적은 비용으로 높은 고객 만족도의 가스터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패스트 웍스는 현재 린 Lean, 식스 시그마와 함께 GE의 핵심 경영 기법이 되었다.
이제 사업을 승리로 시작하는 방법의 윤곽이 흐릿하게 보이리라 생각한다. 윤곽을 또렷이 잡기 위해 린 스타트업의 창조 – 측정 – 학습 사이클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보겠다.
린 스타트업의 사이클
1. 먼저는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짚어내야 한다. 자신이 평소에 불편해했던 문제점이면 최고로 좋고, 다른 사람이 불편해할 만한 것을 발견하는 것도 좋다. 닉은 마음에 드는 신발을 찾느라 하루 종일 고생한 것이 페인 포인트였다. 토니는 작은 기업들이 광고 예산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예상했다.
2. 다음은 페인 포인트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생각해야 한다. 단, 조건이 있는데 현재 보유한 자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자원에는 기술, 인력, 원료 등등 솔루션을 만드는 것에 필요한 모든 것이 포함된다. 만일 만들 수 없다면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 로봇으로 암세포를 공격하는 솔루션을 생각해냈다고 치자. 이런 솔루션은 관련 기술을 보유한 상태에서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있다 하더라도 만들 줄도 모르고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도전한다면 예상치 못한 수많은 변수에 부딪혀 좌초하고 말 것이다.
닉의 솔루션은 인터넷 신발 쇼핑몰이었다. 토니의 솔루션은 포인트로 사용되는 인터넷 광고 플랫폼이었다. GE는 7HA 가스터빈이었다. 모두 자신들이 현재 보유한 자원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이었다.
3. 다음은 가설을 세워야 한다. 가설 세우기는 딱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가치 그리고 성장. 이 두 가지는 기업의 전 생애에 있어서 항상 고민해야 할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가치 가설 Value Hypothesis은 시장에 실제로 페인 포인트가 존재하고 솔루션이 페인 포인트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기 위한 것이다. 성장 가설 Growth Hypothesis은 사람들이 충분한 가치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전파할 수 있을지,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기 위한 것이다.
슈사이트닷컴과 ILE 모두 인터넷 서비스다. 시작 단계에서는 “회원들이 웹사이트에 재방문하는가?”, “실거래가 이루어지는가?” 등이 가치 가설을 위한 질문이 될 수 있다. 성장 가설을 위한 질문은 “신규 가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사용 경험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이 있는가?” 등이 될 수 있다.
4. 솔루션과 가설을 생각했다면 그것을 기반으로 최소 기능 제품(Minimum Viable Product, MVP)을 만들어야 한다. MVP 제작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 번째는 페인 포인트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기능만을 최소로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능이 적어야 가설을 명확히 측정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짧은 기한 내에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비용과 직결된다. 제작에 드는 시간은 적을수록 좋다.
닉은 유통망을 구축하고 상품을 준비하는 것에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않았다. 모든 상품은 동네 신발가게에서 확보했다. 오직 슈사이트닷컴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에만 시간을 사용했다. 웹사이트의 기능은 고객이 신발 사진을 보고 주문하는 것이 전부였다. 토니는 광고 플랫폼의 시험버전을 하루 만에 만들었다. 여기까지가 사이클 중 창조 단계에 해당된다.
5. 측정은 고객의 행동과 관련된 데이터를 분석하는 단계다. 측정의 목적은 데이터로부터 유의미한 지표를 도출하는 것이다. 가설이 옳았는지 아니면 틀렸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수치가 지표가 되어야 한다.
인터넷 서비스라면 사용자가 어느 페이지에 가장 오래 머무르고, 어느 기능을 자주 사용하는지 등의 상세한 데이터를 서버에 저장하여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구글 애널리틱스 같은 분석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분석을 통해 재방문율이나 전환율 같은 유의미한 지표를 도출해야 한다.
슈사이트닷컴은 전환율이 주요 지표였다. 닉은 웹사이트 방문자가 실제로 구매하는 비율을 보고 사업의 타당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ILE는 광고가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가 중요하므로 광고의 노출 수가 주요 지표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측정의 또 다른 목적은 고객의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고객이 의견을 쉽게 남길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온라인이라면 이메일이나 게시판, 오프라인이라면 직접 의견을 듣거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6. 학습은 측정된 지표와 고객의 피드백으로부터 무엇이 부족하고 필요한지를 배우는 단계다. 앞서 세운 가설이 옳았는지 틀렸는지가 이 단계에서 판단된다. 목적은 새로운 페인 포인트를 도출하는 것, 즉 1번으로 돌아가서 하나의 사이클을 끝내는 것이다.
가설이 틀렸고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이 너무 적다면 방향 전환(Pivot)을 생각해야 한다. 방향 전환은 농구의 피벗을 연상하면 좋다. 한쪽 발을 축으로 회전해서 패스나 슛 같은 찬스를 만들어내는 플레이가 피벗이다. 에릭 리스는 이것을 “비전의 변경 없이 전략을 수정하는 것”이라 표현했다.
에릭 리스의 설명은 너무 어렵게 들린다. 게다가 에릭 리스 본인이 피벗의 예로 자주 드는 고객의 니즈에 관한 피벗은 비전이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비전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할 수도 있으므로 적합한 설명이 아닌 것 같다. 어차피 벤처에게 비전은 앞으로 확인해야 할 가설 아닌가? 가설은 틀리다면 언제든 수정되어야만 한다.
피벗을 쉽게 설명해보겠다. 피벗은 농구에서 한쪽 발을 축으로 회전하는 것처럼, 사업에서 고객 · 기능 · 비즈니스 모델 등을 축으로 회전하는 것이다. 고객이 회전축이라면 타깃을 바꾸는 것이 예가 될 수 있다. 10대 소녀가 타깃이었던 것을 20대 여대생으로 바꾸는 식이다. 기능이 회전축이라면 보조 기능이었던 것을 핵심 기능으로 바꾸거나 그 반대가 예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진 편집은 보조기능이었는데 고객이 그 기능을 많이 쓰면 아예 사진 편집 앱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이 회전축이라면 B2C였던 것을 B2B로 바꾸는 것이 예가 된다.
앞의 설명은 에릭 리스가 자주 언급하는 10가지 피벗의 예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않았다. 피벗에서 중요한 것은 목적이다. 피벗의 목적은 옳은 가설을 찾아내는 것에 있다. 그 과정은 마치 과학 실험을 연상케 한다. 실험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소들은 최대한 고정시킨 채 실험하고자 하는 요소만 바꿔가며 답을 찾아가는 것 말이다.
가설이 옳았다면 측정에 사용된 지표들을 더욱 향상시키는 고민을 페인 포인트로 짚어내고 새로운 사이클을 시작하면 된다. 이것이 최초의 사이클이었다면 사업을 시작해도 좋다는 신호탄인 셈이다. 제2, 제3 사이클을 거치면서 사업은 점점 성장해간다.
닉은 슈사이트닷컴에서 거래가 발생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첫 번째 사이클을 끝냈다. 그것은 작은 승리였고, 벤처 프로그에게 투자를 받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해도 좋다는 신호탄이었다. 만일 닉이 고전적인 방식으로 이 사업에 도전했다면 유통망을 구축하는 것에만 어마어마한 시간과 비용을 들였을 것이다.
토니는 광고 플랫폼을 만들고 플랫폼 회원사들이 광고를 집행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첫 번째 사이클을 끝냈다. 비용도 얼마 안 들었고 기간은 단 며칠이었다. 역시 작은 승리가 사업 시작의 신호탄이었다.
당신의 사업은 무엇인가? 고객은 누구이며,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가? 돈 몇만 원에 며칠의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설에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거창함보다는 영리함을 선택하자. 비록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끝이 창대해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린 스타트업을 마치 절대 공식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다. 틀에 박힌 사고는 린 스타트업의 근간이 되는 애자일 Agile 정신에도 위배되기 때문이다. GE가 그랬던 것처럼 린 스타트업을 당신과 당신의 사업 DNA에 알맞게 적용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글이 당신이 사업을 스마트하게 시작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원문: 여현준 님의 브런치
이 글을 쓸 수 있게 해 준 책 및 자료들
– 에릭 리스 ‘린 스타트업’
– 딜리버링 해피니스 ‘토니 셰이’
“Do you see a man skilled in his work? He will serve before kings; he will not serve before obscure men.” – Proverbs 2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