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시절부터 글을 쓰게 해서 전문성을 키운다는 생각을 2, 3년 전부터 해오다 지난 학기에 처음으로 ‘강제’로 시도해봤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부분적으로는 상당히 만족스럽다. 혼자서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널리 퍼트리고자 간단히 자체 평가를 해봤다.
개요는 간단하다. 학생들에게 블로그를 쓰도록 약간 강제성 있는 동기부여(?)를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차원에서 설계된 수업이다.
나는 모교인 외대 포르투갈어과에서 3, 4학년 대상 전공수업으로 ‘루조폰의 경제와 비즈니스’를 작년 초부터 강의 중이다. 루조폰(Lusofone)은 포르투갈어권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수업 개설 초기부터 대학 3, 4학년쯤 되면 배우는 것도 배우는 것이지만 슬슬 자기 것을 발산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학생들에게 글을 쓰라고, 그것도 꼭 집어서 블로그를 쓰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글쓰기만큼 시작하기 어려운 것이 없다. 다이어트나 금연에 비해서도 그 시작이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강요’를 계획했다.
강의 평가 기준에서 ‘과제’ 비중을 50%로 잡고, 그 과제를 1주일에 한 번씩 블로그를 쓰는 것으로 했다. 주제는 포르투갈어권에 관련된 어떤 것도 상관없되, 가급적이면 학생 자신의 관심사를 정해서 일관성 있게 써보라고 권했다.
처음부터 엄청난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줄여주기 위해 초반에는 현지 뉴스 가운데 한두 꼭지를 골라 (포르투갈어를) 우리말로 요약 번역을 하고 자신의 분석과 평가를 간단히 붙여보라고 했다. 점점 진척되어감에 따라 여러 관점을 비교하기도 하고, 우리나라 사정과 연결하기도 하면서 글의 깊이를 더해갔다. 발표가 있는 주에는 카드뉴스 형식의 발표자료를 올리느라 빼줬지만, 이걸 빼고도 각자 최소 10회 이상의 블로그 포스팅을 올렸다.
블로그 쓰기 사례
- 학생 1은 물류회사에 취업할 계획이라 물류공부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포르투갈어권의 물류 상황을 파악하는 기사를 옮기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대륙을 넘나들며 아프리카와 남미의 물류에 관한 얘기를 풀어놨다.
- 학생 2는 화장품 시장에 관심이 많은 남학생이다. 브라질 화장품 시장만 가지고 블로그를 썼다. 이 친구가 재학 중 블로그 100개를 돌파하면 난 취업을 책임져야 한다.
- 학생 3은 국가를 가리지 않고 화제가 되는 뉴스를 쫓았다. 아마도 적당한 주제를 잡기에는 아직 이것저것 다 뒤적여 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도 주로 앙골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꽤 아기자기하다.
- 학생 4는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준 학생이다. 처음에는 도대체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어려움을 토로하다가, 나중에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 때에 맞춰 브렉시트와 올림픽을 치르는 브라질의 치안상황도 다뤘다.
카드뉴스식 발표
수업 중에 발표한 과제도 일반적인 PPT가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카드뉴스 방식으로 만들어 봤다. 포르투갈어 전공자인 동료가 아니라 일반인 (즉 포르투갈어 전공자를 찾는 고객)에게 설명하는 식으로 만들었다. 간단한 것이라도 고객을 위해, 고객의 언어로 만들어야 한다는 내 의도가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한 번씩 둘러보시고 평가해 보시길.
사실 학문의 실용성을 강조하느라 수업 중에 진로 탐색, 공부법, 서유럽사 등 얘기가 뻗어 나가는대로 오만가지를 다뤘다. 결과적으로 9개 포르투갈어권 국가 가운데 한 학기분인 절반을 다 다루지 못했다. 2학기에는 좀 더 밀도 있게 발표를 진행해야겠다.
블로그 콘텐츠의 유통
위 블로그들을 유통하기 위해서는 좀 더 강력한 매장이 필요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포르투갈어권 세계 O Mundo Lusofono’라는 그룹 페이지를 열었는데, 오늘(2016. 7. 12.) 기준 멤버는 182명이다.
지난 한 학기를 돌이켜보니 딱 ‘절반의 성공’이다. 학기가 끝났어도 자기 블로그에 애착을 가지고 글을 올리는 학생이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숙제 그 이상은 아니라고 느끼는 학생도 있는 듯하다. 그래도 작년에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 가운데 자발적으로 글을 쓰고 올리는 재미있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아프리카 강의를 듣고, 흥미가 생겨 휴학하고 모잠비크 EDCF 현장에 나가 있는 학생이 있는데, 거기 소식을 다량의 사진과 함께 전해 와서 꽤 유익하고 재미있다.
절반의 성공인 이 강의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다음 학기까지 한 번 더 시도해 보고 싶다. 어느 정도까지 학생들의 가능성을 끌어낼 수 있을지, 그 결과가 어떤지 정말 알고 싶다.
원문 : 개발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