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리수에서 린 마굴리스와 도리언 세이건의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드디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예전에 지호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책이다. 지호출판사에서 나왔던 린 마굴리스의 책을 읽으며 기존의 다윈 적자생존만을 강조하는 생명관에 답답함을 느끼던 차에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청량제를 맛보는 듯했다.
생명의 관계에 대하여 약육강식만을 강조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생명은 더불어 사는 공생명임을 그 책을 읽고 사람들의 생각이 변화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린 마굴리스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절판이 된 상태였다. 이렇게 좋은 책이 절판되다니 너무 안타까워 리수출판사에 이렇게 좋은 책은 널리 읽혀야 한다며 개정된 부분도 있으니 다시 출간하자고 강력히 권하였다.
자연과학서적은 저자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라면 독자가 한정되어 있어 잘 판매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한번 출간되었던 책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생명 위기의 시대에 생명의 관계를 다시 인식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런 책은 꼭 출간해야 한다고, 그것이 출판인의 사명과 같은 것이라고 강권하여 출간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4년 만에 힘겹게 책이 나왔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 의문은 오랫동안 인류의 큰 관심사였다. 끝을 알 수 없는 이 질문은 오랫동안 철학과 종교 그리고 예술의 영역이었다.
그 미지의 영역에 파동역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뤼딩거는 1944년 과학자로서는 최초로 생명이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항해를 시작하였다. 그 항해에서 제시한 그의 여러 가지 생각은 이후 많은 과학자에게 영감을 주었고, 과학이 생명을 연구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50년 후 린 마굴리스는 그간의 과학적 성과들을 바탕으로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그 생명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다윈의 적자생존을 뛰어넘는 린 마굴리스의 ‘공생명론’
이제 우리는 생명이 진화를 해왔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윈은 생명들은 진화를 해왔다고 주장하였으며, 그 진화론의 핵심은 경쟁을 통하여 환경에 적응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이었다.
하지만 린 마굴리스는 이러한 적자생존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시베리아 벌판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는 물새나 사슴은 어떤 개체일까? 다른 개체보다 더 강한 체력과 면역력을 갖추고 있어 경쟁에서 이긴 물새나 사슴일까? 아니다. 시베리아의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개체가 아니라 무리가 얼마나 잘 협력하는가에 의해서이다.
러시아의 동물학자인 케슬러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더 많은 개체가 함께 모이면, 서로 더 많이 도울 수 있고, 지능적으로 더욱더 발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종들이 살아남을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된다.”
유전자 보존의 문제는 개체의 문제가 아니라 종이 살아남는가 살아남지 못하는가에 의해서 결정된다.
또 칠레의 철학자 움베르또 마뚜라나는 생명은 주어진 환경에 일방적으로 적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명은 살아가면서 환경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다시 변화된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진화하는 구조접속 관계를 맺는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린 마굴리스는 생명은 끝없이 확장하며 그 확장의 영역은 항상 새롭고 고달픈 곳이기 때문에 종들이 서로 협력하여 생명의 지평을 확장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가 일관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생명은 공생명이라는 것이다.
생명역사의 주도권은 여전히 박테리아에게 있다
지구상 가장 진화한 생명체는 무엇일까? 다윈적 사고에 의하면 경쟁에서 가장 선두에 있는 듯이 보이는 인류가 가장 진화된 생명체이며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이며 생명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생명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위하여 생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세균으로부터 시작한 생명의 여정을 뒤돌아본다.
태초의 생명인 박테리아는 끝없이 번식하며 주변 환경을 변화시켰다. 오랜 시간에 걸친 환경의 변화는 자신에게 위협이 되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박테리아는 매번 문제를 해결해나가 생명 도약의 계기로 삼는다. 그리고 박테리아끼리의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과정을 거치며 다세포 생물로 진화해나갔다. 동물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와 식물에 엽록체의 유전자는 각 개체의 유전자와 다르다. 그것은 초기에 거대 박테리아에게 잡아먹힌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 박테리아의 흔적이다. 이들 박테리아는 포식자의 몸속에서 살아남아 포식자와 함께 또 다른 생명체로 진화한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세포내공생설에 생물학계는 초기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제 세포내공생설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테리아는 끝없이 변화는 환경에 적응하며 다양한 생물 진화의 바탕을 만들고 또 오늘날에도 각 생명체와 공생의 관계를 맺고 있다. 지금의 생명체들은 개별 생명체가 아니라 다른 생명체 특히 박테리아와 공생명체이다. 지구의 생명은 다른 종과 공생하는 관계를 맺으며 지금과 같이 무수히 많은 종으로 진화하였다. 그렇기에 진화의 선두주자는 따로 없다. 모두가 같은 진화의 여정을 걷고 있는 동반자들이다.
생명은 끝없이 번식하며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해 나간다.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은 힘겨운 일이기에 생명은 협력한다. 메마른 바위에 사는 지의류는 균류와 조류가 협력한 결과이다. 균류와 조류는 단일종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을 협력함으로써 이루어내고 있다.
환경의 변화와 생명의 위기 속에 새로운 길 모색하기
오늘날 인류의 산업화로 인하여 다양한 환경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또 수많은 생명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을 해야 한다. 그 고민은 먼저 생명의 관계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환경의 변화로 생명이 위기를 겪은 것은 지구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생명의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환경의 문제 더 나아가 다른 생명들과의 관계를 다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저자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생명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해주고 있다.
원문 : 태양 아래 사람이 머무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