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박사까지 만연한 한국의 표절, 지적 도둑질의 현장
신정아 사건 때만해도 주변의 박사과정 학생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었는데 잇달아 터진 논문표절사건에 다들 이젠 포기한 듯 한숨만 쉰다. 표절을 해놓고도 당당하게 “다들 그렇게 하길래…”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학위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이젠 할말도 없어질 정도다. 다들 그렇게 하다니. 그럼 그들의 주변엔 모두 표절자들이 난무했단 말인가.
그들에겐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다들’ 그렇게 하지 않는다. 표절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학위를 받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찾기 힘든 논문을 기어이 찾아서 읽게 되었다는 소소한 기쁨부터 시작하여, 내 몸 속에 피가 도는지 커피가 도는지 모른 채 논문과 연구 속을 파고들며, 끝도 없이 자기 자신과의 “넌 결국 못할 거야.”라는 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 무엇보다 지도교수님의 “그래, 자네 이젠 졸업할 수 있을 것 같네.”라는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춤을 출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모든 과정을 이미 남이 피땀 흘려가며 이뤄놓은 결과물을 슬쩍 하고 학위를 받는 건, 말 그대로 도둑질이다. 도둑질은 남들이 하니까 저도.. 라는 말로 무마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학위도둑질(표절)을 해놓고도 당당할 수 있었을까? 한국의 대학교육에서 표절이 얼마나 큰 죄가 될 수 있는지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과정이 미리미리 정착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대한민국이 항상 선진국의 예를 보고 결정하자고 하듯이 필자도 선진국 (하면 천조국)의 예를 개인적인 경험을 살려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 수업의 첫 마디 “표절하지 마세요.”
개인적인 경험을 살린다고 했으니 잠깐 필자 이야기를 하자면, 초/중/고등학교 교육은 한국에서 주욱 받았고, 학부-석사-박사 과정은 모두 미국에서 해왔으므로, 대학이전의 교육에 대해선 함구하도록 하겠다. 박사과정을 하기 전엔 한국에서 잠깐 대학강사를 했었고, 지금은 미국 어느 시골 대학에서 박사과정이면서, 이 대학교 학부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아주 저렴한 노동교육자 신분이다. 미국이라고 조교 신분에게 돈 많이 주지 않는다.
학생들을 대하는 첫 강의 날은 다들 알다시피 실라버스(강의계획표)를 주욱 훑어주는게 일반적이다. 필자는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빠뜨리지 않고 “표절은 절대 안 됩니다. 타인이 써둔 글이나 말을 어디에서 인용해 왔는지 표기하지 않고 내가 쓴 것처럼 하는 행위, 그대로 베껴오는 행위는 모두 표절이고, 표절을 할 시엔 이 코스의 학점을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라고 명시해둔다. 미리미리 경고를 해주는 거고, 정말로 F를 줄 수도 있다. 표절과 치팅 (cheating)은 다를 게 없는 범죄행위니까.
하지만 여전히 경고를 무시한 채 한국학생들은 숙제를 인터넷검색을 통해 Ctrl+C, Ctrl+V를 반복하는 노동의 결과물을 들고 오던 기억이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대학생이라면, 조금 더 생각을 해보시길 권한다. 교수라는 직업상, 학생들의 숙제 채점을 할 때엔 이미 비슷한 여러 개의 리포트를 놓고 읽게 되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 학생들의 수준이 바로 드러나 보인다.
한 수업을 맡아 강의를 하는 사람이라면 통상 그 분야에 어느 정도 연구를 해왔던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간단히 말하자면, 교수는 학생들이 “이 정도면 감쪽같이 모를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학생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단 말씀. 사실 어디에서 인용해왔는지 표기하지 않더라도 “이 녀석이 어디서 베꼈구만!“ 하는 정도는 박사생에 불과한 나에게도 보인다. 네이버든 구글이든 빤질나게 검색질하여 복사해오는 노동은 교수들도 이미 다 해봤고, 그 소스를 제공하는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사해온 내용들은 학생 수준에서 나올만한 글이 아닌 경우가 많다(…)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자면 90년대 중고등학교를 한국에서 다닌 필자로서는 대학 입학 후 표절에 대해 정말이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아무데서나 긁어오는 것도 내 힘으로 해낸 것이고, 점수만 잘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교수님들에게 혼줄이 나고 뒤늦게서야 그게 도둑질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사실 버벅거리는 영어 때문에 처음 미국에 도착하고 정규수업이 아닌 전세계에서 몰려든 어학연수생들과 함께 영어수업을 들을 때에도 처음 배운 것 중 하나가 “표절하지 마세요, 치팅하지 마세요.” 였다. 워낙 타국에서 온 학생들이 필자마냥 아무 생각 없이 표절한 보고서 낸 경우가 많아서 생긴 듯한 교육지책이었던 모양. 표절에 관해 아무런 경고도 받아보지 못했었으니 이에 대한 죄책감이 있을 리 만무한 거지. 하지만 표절에 대한 학습은 타국에서 온 학생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은 글쓰기 수업 (writing class)를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고, 꾸준히 표절에 대한 경고를 의무적으로 들을 수 밖에 없다.
한국 대학의 표절, 다들 그렇게 한다고요? 한국만 그래요.
후에 어떤 교육과정을 밟아왔는지 이해를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강의할 때에도 표절에 관해 끝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았으나 “남들도 하는데요. 다른 수업에선 아무 말 없던데요.” 식의 변명을 들으면 정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남들이 다 도둑질 하면 너희들도 해야 하는 거냐, 누가 아무 말도 안 하면 도둑질도 괜찮은 거냐 하면 그때만 고개를 숙일 뿐, 뒤에선 깐깐한 년 이란 욕을 듣는 일이 수백 번. 그래도 굴하지 않고 표절이 빤히 보이는 보고서는 받아주지 않았다.
미국은 다르냐고 누군가가 물을지 모르겠다. 확실히 표절과 치팅에 관해선 한국에 비해 엄격하고 여러 번 미리미리 경고를 해둔다. 제대로 말하자면 표절은 잘 걸리니 치팅을 더 하는 편이다. 어느 시험 감독자로 들어갔다가 치팅하는 녀석 학생법정까지 끌고 간 전력도 있으니.. 결국 그 학생은 과락처리. 땅땅!
Authority, 즉 교수의 권위자체가 아시아권에 비해 학생과 더욱 평등한 편이라서 그런지, 눈치도 잘 보지 않는다. 맞다. 이것들 아주 약았다. 눈치 봐서 이 감독관이 어리고 아시아권 여자로 보이니 더 눈치 안 보고 치팅을 감행한다. 물론 학생들이 얕보든 말든 치팅하면 감독관에게 걸리는 거고, 걸리면 얄짤 없이 F다.
시험이 아닌 보고서의 경우엔 표절은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한국보다 더욱 엄한 처벌이 있다는 걸 학생들도 수많은 경고를 들어 알고 있다. 그래서 어느 소스에서 나온 말이었는지, 누구의 말을 인용했는지 스타일이 틀리더라도 표기를 해둔다. 나름 안전한 전략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그리고 적절한 인용은 논리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결론을 더욱 설득시켜주는 결과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개인적인 경험상 이 정도 규칙은 미국학생들이 잘 지키는 편이다. 지난 학기에 어처구니 없이 말도 안 되게 짜깁기한 보고서를 낸 학생이 있긴 했지만 알고 보니 온두라스에서 유학 온 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아예 개인 면담으로 표절에 관해 엄청난 잔소리를 퍼부어주었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은 학부생은 물론이고 연달아 터진 표절 논문 사건을 보아하니 석박사급에도 표절에 관해 너무도 관대한 게 아닌가 싶다. 졸업하기 위해서, 남들이 하니까, 학위를 따기 위해서… 따위의 변명을 앞세워 학자가 양심을 팔아선 안 된다. 안 된다는 것을 더욱 확고하게 미리미리 알려주어야 하는 것도 대학의, 또는 교육자의 의무가 아닐까. 고등교육의 현장에서 도둑질이 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