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민주주의란 게 별 게 아니다. 공동체의 의사결정과 운영에 있어서 각 구성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개별 구성원의 의사를 골고루 반영하는 공동체의 운영원리를 담은 체제다. 원어인 democracy 자체가 이념(ism)이 아닌 지배체제(cracy)를 의미하고 있다.
이는 개별 구성원의 권익이 중요하므로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함께, 그렇게 하는 것이 공동체의 운영을 더욱 원활하게 하며 공동선을 확보하고 공동 이익을 증대시키는 데 훨씬 유리하다는 도구론적인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과연 민주주의란 운영 원리가 공동체의 운영을 원활하게 하여 공동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정말 유리한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경우를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나 하나의 길지 않은 인생을 돌이켜봐도 민주주의고 좃이고 쎼리 조지니까 팍팍 돌아가더라(…) 하는 경우와 이리저리 보살피고 일일이 물어보고 합의를 하고 하니까 굳이 간섭하지 않아도 알아서들 잘 하더라는 경험이 비슷한 빈도로 공존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공동체들이 운영 원리로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거나 추구하고 있고, 최소한 그런 척이라도 하고 있는 데에는 위에서 말한 대로 이 운영원리가 궁극적으로는 더 효율적이라는 인류 차원의 합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더민주의 민주주의
그러나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한 “김종인이 낫다”는 주장에 대하여, 김종인의 가장 큰 문제인 비민주성과 민주적 소양의 부족이 더민주라는 정치 공동체의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미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명확한 주장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총선의 결과가 상대적으로 좋아서 묻혀버렸지만, 선거 전략과 운영에 있어 김종인 체제의 무능은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다. 중앙당 차원의 선거전략이란 거의 없다시피 했고, 그에게 가장 크게 기대했던 경제관련 이슈 파이팅도 전혀 없는 것보다는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그것은 김종인이라는 존재가 가졌던 상징으로서의 위력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김종인 체제의 무능은 선거 운영 책임자로서의 김종인 개인의 무능도 있지만, 그의 반복적인 비민주적 결정과 처신으로 인해 더민주의 공조직이 꽁꽁 얼어붙어버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단순노동력만 투입되면 되는 일이라면 몰라도, 자발성과 창의성이 필요한 어떤 과업에 있어서 리더의 민주적 소양 결핍이 얼마나 큰 악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교과서적 사례로서 기록될 만하다.
당내 민주주의
당내 민주주의란 것이 불문곡직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최소한 집권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1인의 결정에 의해 당이 운영되는 것보다는 당내 구성원들의 의사와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그 과정에서 합의된 원칙과 전략에 의해 당이 운영되는 것이 훨씬 더 양질의 결과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집권을 위해 당내 민주주의를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면 고려해볼 필요는 있으나, 최소한 그것은 더민주라는 공동체가 운용할 수 있는 수준의 당내 민주주의가 (물론 가상에 불과하긴 하지만) 김종인 1인 지배체제보다 심각하게 비효율적일 것이며 승리를 담보하기는커녕 그나마 조금이라도 있는 승리의 가능성을 치명적으로 손상시킬 것이라는 확고한 전망에 기반해야 한다. 과연 그런가?
김종인의 민주주의
민주주의라는 운영원리는 개별 구성원의 인격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김종인은 이 기본 전제부터 갖추지 못하고 있다.
김상곤이 탄핵을 논하고, 추미애가 거국내각을 논한다고 해서 김종인으로부터 문재인의 대리인이라는 모욕을 받을 이유는 전혀 없으며, 문재인 또한 김종인에게 무슨 죽을 죄를 졌다 한들 대리인을 당대표로 내보내는 구체제적인 인물로 묘사될 이유 또한 전혀 없다. 초선의원 6인의 중국방문은 김종인 체제 출범 이래 거의 최초로 김종인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더민주 소속 의원들의 정치 행위다. 그런데 그는 이것을 마치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들의 경거망동 쯤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김종인이 대표로 계속 남을 가능성은 전혀 없으므로 그가 대표로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전망하는 것은 전혀 의미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당내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거론하며 그의 능력과 위상을 과대포장하면서 더민주의 다른 구성원들을 폄하하는 일부 사람들의 시각이다.
나는 솔직히 그 분들이 왜 더민주의 집권을 희망하는지 모르겠다. 김종인이 계속 지금과 같은 짜르 스타일의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혹은 당내 지도자들이 다 김종인 짜르의 노선에 순종하여 집권에 성공한 뒤, 그때부터는 다시 민주주의 모드로 돌아가 극히 일부라도 민주주의를 회복하기를 원하는가? 그때 가서 더 큰 목표를 위해 또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를 희생시키거나 유보해야 한다는 박정희식의 주장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가?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더민주의 짜르식 통치가 이루어져 군대마냥 일사불란 상명하복으로 움직이면 집권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이 맞긴 맞는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민주주의란 것이 무슨 거룩한 이념이라서 숭배하고 숭앙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입증이 된 것인지 아직 가설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공동체가 추구하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1인 혹은 과두 지배체제보다는 궁극적으로 훨씬 더 합목적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체제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채택하고 운용해야 하는 것이다.
대표 후보든 원내 대표든 그들이 부족하면 그들을 비판하고 견인하면 된다. 왜 그들이 뭔가 아쉬운 짓을 할 때마다 김종인을 소환하여 빗대면서 조지는가. 더민주가 김종인 1인 지배체제가 아니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집단이라면 더 가능성 있어보이는 다른 조직을 밀든가 아니면 가슴은 아프시겠지만 그냥 포기하는 것이 낫다. 짜르 스타일의 지배가 아니면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조직에게 뭘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가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다.
원문: 고일석 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