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학적으로 남자가 된다는 건 고달프고 애처로운 일이다. 수정란 단계에서 남자와 여자의 성비는 1.3 대 1로 남자가 30% 많다. 하지만 태어날 때 성비는 1.06대 1로 줄어든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남자는 그 줄어든 24% 어치만큼 여자보다 더 많이 사망한다는 얘기다.
유전병도 남자가 더 많다. 남자의 성염색체는 XY이기 때문에 염색체 X에 오류가 있으면 직빵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반면에 여자는 X가 하나 더 있어서 오류가 있어도 백업할 여지가 있다. 또한 남성호르몬은 근육과 체격을 키우지만 질병에 대한 저항력은 감소시킨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보다 병에도 잘 걸린다.
덧붙여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들은 대부분 화끈하게 사고치고 시원하게 죽어버리기 딱 좋은 것들이다. 속도, 폭발, 경쟁, 모험…
이런 연유로 수정란을 포함한 모든 연령대에서 남자의 사망율은 여자보다 최대 2.7배까지 높다. 그렇다면 남자가 된다는 건 결국 더 쉽게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고, 더 많은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것이고, 의외로 나약한 자신의 저항력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 이런 남자가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그것을 알려주는 영화 4편을 함께 살펴보자.
1. 가장으로 산다는 것: <인 굿 컴퍼니>
아들에게 신자유주의 비즈니스 세계에서 남자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려주고 싶다면 이 영화의 댄 포먼(데니스퀘이드)을 보여주시라. 그가 아침을 시작하는 장면부터 말이다.
새벽 5시였던가, 그는 조용히 일어나 혼자 커피를 끓이고 가벼운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TV를 보며 식사를 마친 후에는 조용히 컵과 접시, 커피메이커 필터를 씻어 놓는다. 그리고 옷을 입고는 잠자고 있는 마누라에게 키스를 한 뒤 출근한다. 모든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물론 마누라가 늦둥이를 임신 중이라는 상황도 고려해야겠지만 아마 그렇지 않더라도 이 남자는 혼자서 그렇게 아침을 시작할 것이다.
그의 삶은 어찌보면 듬직하고, 어찌보면 애잔하다. 직장에 가니 회사는 합병되었고 새파랗게 젊은 놈이 낙하산타고 내려와서는 상사라고 댕댕거리는 것도 모자라 동료를 자르라는 요구까지 들어온다. 그래도 이 남자, 최선을 다해 동료를 보호하고, 어린 상사와 협력하고, 회사의 고참으로서 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망아지 같은 두 딸과 마누라에게 최선을 다한다.
자신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가 불같이 화를 낸 건 딱 한번 뿐이다. 맏딸이 애비 몰래 젊은 상사와 연애질을 하다 딱 걸린 순간.
그 딸이 자그마치 ‘스칼렛 요한슨’이라, 그 조차도 이해해야 한다(…)
2. 진짜 꼰대의 모습: <밀리언달러 베이비>
발달심리학자로서 청소년과 성인이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책임’이라고 답한다. 청소년은 어른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단지 책임질 수 없을 뿐이다.
그러니 어른이 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것을 뜻한다. 책임감에 덧붙여 확고한 신조를 갖추면 남자는 진짜 꼰대가 될 수 있다. 대개의 가짜 꼰대들은 책임감에 휩쓸려 지조가 없거나, 자기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줄 모른다. 그럼 진짜 꼰대란 어떤 사람일까?
그냥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보면 된다. <밀리언달러 베이비> 만이 아니라 <그랜토리노>도 좋고, <용서받지 못한 자>도 좋다. 그가 적과 친구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어떻게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를 위해 무엇을 하는지, 그의 신념이 무엇에 기초한 것인지, 그가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하는지. 다 같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동림옹(東林翁), 진짜 꼰대의 모습이다.
꼰대는 회한이 많다. 책임감이 클수록 죄책감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서, 실수를 피하기 위해서,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하고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건다. 더 이상은 회한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서다. 바로 이게 존경받아 마땅한 진짜 꼰대의 모습이다.
3. 멋진 리더란: <하우스>
이건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다. 폭스에서 7년째 방영중인 미드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프린스턴 플레이즈보로 교육병원’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진단학과’에서 그레고리 하우스(휴 로리) 팀이 1만 명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희귀한 증례를 파고들어 병명을 밝혀내는 과정을 매회 보여주는 메디컬(추리)드라마다.
그런데 대박이 났다.
많은 이들이 하우스의 매력을 ‘성격 나쁜 천재’ 설정에 있다고 오해한다. 정말 오해다. 물론 그는 만성통증증후군 때문에 마약성진통제 중독인 데다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를 모토로 삼고 모두를 의심하고 파헤치고 무시하고 이용하는 또라이다.
놀라운 건 이 또라이의 부하들이다. 이들은 매일 그의 착취와 모욕에 시달리면서도 기죽기는커녕 번번이 따박따박 대든다. 하우스가 그걸 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걸 팀원들이 생각하고, 자신의 아이디어에 숨은 오류를 찾아내고, 자기가 미친 짓을 하려들 때 그걸 막아주기를 바란다. 팀원들이 그렇게 할 때는 인정하고 칭찬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는 무자비한 모욕을 가한다.
리더는 이래야 한다. 젠틀하고 남 높여주고 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팀원들이 제구실을 하게 만들고 그걸 제대로 평가하고 인정해주지 못한다면 애초에 리더라 할 수 없다. 유감인 건 현실에는 성격도 나쁘고 리더 구실도 못하는 꼴통들이 더 많다는 점이다.
4. 남자도 귀여울 수 있다: <노팅힐>
양성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양성성을 발휘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재들이 채팅창에 이모티콘을 남발하며 애교를 떤다. 그러지 마시라. 징그러울 뿐이다. 진짜 양성성은 이전에는 여자만의 분야로 간주되던 분야에서도 남성성을 발휘하는 걸 말한다. 귀여움을 예로 들어보자. 양성성을 발휘하는 남자라면 남자답게 귀여움을 떨 수 있다.
<노팅힐>의 휴 그랜트를 보라. 그는 전형적인 영국 남자다. 감정표현 잘 못하고, 말수 적고, 소심하기까지 하다. 그런 그가 줄리아로버츠를 낚은 비결은? 수려하면서도 골빈 듯한 외모를 제외하면 귀여운 유머감각 덕분이다.
귀여운 유머의 핵심은 자신을 낮추는 거다. 무심하게 자신의 한심한 처지를 과장함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열게 만들고, 무뚝뚝하던 입으로 “에그머니나”라는 비명을 질러서 키스를 얻어낸다. 수줍은 나머지 줄리아의 프러포즈를 거절한 뒤에 기자회견장으로 허겁지겁 달려가 “그 멍청이가 뒤늦게 자기 실수를 깨닫고 무릎 꿇고 싹싹 빈다면 마음을 바꾸실 생각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들도 휴 그랜트의 양성성을 배우라. 남자다운 귀여움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당신 얼굴은 휴 그랜트가 아닐지라도 많은 여자들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
원문: 싸이코 짱가의 쪽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