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지향 주거 커뮤니티에 대하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했던가. 이미 우리들은 혼자서 ‘사는’ 데 익숙해진 지 오래다. 직장과 학교에서의 전쟁 같은 하루를 마치고 아무도 없는 자취방에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서늘한 조용함. 형광등보다 TV 전원을 먼저 켜고 소파, 혹은 침대, 혹은 방바닥에 드러누워 한숨만 픽픽 내뱉는 현대인들에게 집이란 그저 부족한 수면욕을 가까스로 해소하는 자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던가.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연애에 목을 매고, 주말에 억지로 약속을 잡고, 번번이 숙취로 고생하면서도 폭탄주에 기꺼이 간 건강을 바치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오랫동안 노트북 겸상을 반복하고 폭탄주로 외로운 주말을 지워본들 우리네 인생이 쉽사리 무소의 뿔처럼 단단해질 리 만무하다. 그러니 외로움에 사무친(?) 청년들을 중심으로 셰어하우스와 공유 주거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치솟는 부동산 임대료를 감당하기 힘든 젊은이들에게는 비슷한 조건의 원룸이나 자취방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저렴한 가격에 조금 더 넓고 쾌적한 공간을 누릴 수 있으니, 거실이나 화장실을 공유하는 것쯤이야 충분히 참을 만하지 않은가! 운이 좋다면 미드 〈프렌즈〉나 이제는 고전이 된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같은 일상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고.
실제로 미주, 유럽 할 것 없이 세계적인 대도시에선 대학생들이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에 하우스메이트/룸메이트를 구하는 게시글을 올리느라 바쁘고, 집값도 히키코모리 문화도 글로벌 넘버원 수준인 일본에서 또한 셰어하우스가 청년층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제는 한국도 그저 알음알음 하우스메이트들을 구해 같이 사는 단계를 벗어나 젊은 스타트업과 사회적 기업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공유 주거 서비스를 접할 수 있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목표로 서울 내 27개 지점을 운영하는 ‘셰어하우스 우주’, 통의동집과 소담소담을 운영하는 ‘서울소셜스탠다드’, 협동조합 형태로 주거 공간을 확보, 공유하는 ‘민달팽이 유니온’, 최근 역삼 쉐어원을 오픈한 ‘어반하이브리드’와 ‘뉴튼프로퍼티’ 등이 대표적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이제는 단순히 공간 공유를 통해 월세 부담을 낮추는 수준을 벗어나 원피스 주인공 같은 동료들을 만나 혈연, 학연, 지연만큼 무섭다는 집연(?)을 만들어가려는 시도들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비슷한 목표를 가진 하우스메이트들과 꿈과 고민을 나누고, 서로에게 배우고, 깊이 있는 대화와 교류를 통해 성장하는 끈끈한 주거 공동체의 로망! 그게 말이 되냐고? 그 어려운 걸 해내는 곳들이 곳곳에 꽤 있다.
일본의 토키와장 프로젝트와 커넥트하우스
토키와장 프로젝트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동영상
일본에는 특히 특정 직업을 중심으로 한 공유 주거 모델들이 눈에 띈다. 먼저 ‘토키와장 프로젝트‘는 만화가 지망생들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낭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저렴한 가격에 공동 주거지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프로 만화가를 꿈꾸는 청년들이 함께 사는 집이다.
선배 만화가나 출판 편집자들과의 만남이나 재능 있는 입주민들의 계약 주선이 이뤄지기도 하고, 개개인의 목표 관리를 위한 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커넥트하우스‘는 요리사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함께 사는 곳으로 입주민들이 요리 실습 및 식사를 할 수 있는 큰 공용 주방을 마련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그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요식업 전문가, 유명 요리사, 외식업 컨설턴트 등을 초빙하여 워크숍을 진행하거나 직접 만든 요리를 공개하고 평가 받는 이벤트 등을 운영하여 입주자들의 성장을 돕는다.
같은 목표를 향해 정진하고 있는 비슷한 상황의 동료들을 만나 서로에게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셰어하우스는 주거공간일 뿐 아니라 업무 공간이자 교육공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의 위리브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성화된 미국에서는 보통 기업가 정신을 테마로 한 청년들의 공동주거시설 사례를 찾기 쉽다. 특히 ‘임팩트 허브(Impact Hub)’와 ‘위워크(WeWork)’를 필두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워킹 및 디지털 노마드 문화의 연장선에서 꽤 대규모의 코리빙 스페이스(co-living space)도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는 아무래도 ‘위리브(WeLive)’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10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위워크는 그간 코워킹스페이스 운영 경험을 토대로 주거 공간 공유 사업에 진출하며 위리브라는 이름을 붙였다. 결국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커뮤니티 안에서 자원을 공유할 때 발생하는 시너지’를 업무 공간 뿐 아니라 주거공간에도 확대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아이폰만 들고 다니면 개인 방 스피커로 듣던 음악을 복도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이어 들을 수 있도록 음향 시설과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조성할 만큼 모바일 앱을 통한 공간, 서비스의 통합 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덴마크의 네스트 코펜하겐
‘네스트 코펜하겐(Nest Copenhagen)’은 나란히 붙은 4개의 아파트 공간에 창업가와 혁신가들이 함께 사는 셰어하우스로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해 있다. 덴마크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던 피터 한센은 스타트업 기업가로 살던 중 ‘나 같은 청년 기업가들을 위한 최고의 집’을 만들고자 친구들과 함께 네스트를 시작했다. 현재는 창업자 자신을 비롯하여 6개국에서 온 21명의 입주민들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년까지 머무르며 함께 생활하고 있다.
다른 셰어하우스들에 비해 이들의 선발 과정 및 생활규칙은 밖에서 보기엔 꽤 엄격하다. 입주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기업가적 활동 내용과 성격, 가치관 등에 관한 서류를 접수하고 담당자와의 인터뷰를 거쳐 네스트의 저녁 파티에 참석한 후 입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만 입주가 가능하다.
이들은 주 1회 이상 소속 아파트 식구들과의 저녁 식사, 2주에 1회 이상 입주민 전체 모임, 월 1회의 자치회의 참석은 물론 연 2회 이상의 단체 여행과 크리스마스 점심 등까지 모두 의무로 규정하고 이를 지켜나가고 있다.
“다들 바쁜 창업자들인데, 이런 의무나 일정이 부담스럽진 않나요?”
“다른 데 놀러 가는 것보다 이런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더 유익하고 재밌거든요.”
왜 같이 사느냐고?
셰어하우스, 특히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중심으로 비슷한 뜻을 가진 입주민 간 커뮤니티와 네트워크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 주거 서비스는 이제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가까운 중국에서도 샤오미 창업자 레이쥔과 처쿠카페 창업자 쑤디 등이 공동 창업한 부동산 스타트업 ‘유플러스'(그 유플러스가 아니다…)가 청년 창업가들을 위한 주거공간을 운영 중이다. 현재 광저우를 비롯한 6개 주요 도시에서 입주민들 간 네트워크와 시너지를 강화하고 있다.
루트임팩트에서 2014년부터 서울에 설립, 운영하는 체인지메이커들의 커뮤니티 하우스 ‘디웰(D-WELL)’ 역시 주거문화 측면에서 마찬가지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기업가와 소셜 벤처를 중심으로 사회혁신을 위해 일하는 디자이너, 스타트업 팀, 비영리 활동가, 과학자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살며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과 고민을 나누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 식구같이 가까운 사이가 되고,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의 대화와 교류를 통해 영감을 주고받는 집. 때로는 고민을 나누고, 때로는 정보와 자원을 나누면서 각자의 꿈을 키우고, 마침내는 꿈을 이루는 집.
어디에 사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사느냐’가 훨씬 중요한 문제임을 알기에. 외로운 시대일수록 우리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에. 창업자와 예술가, 사색가와 혁신가들이 모여 사는 셰어하우스가 이렇듯 세계 곳곳에 만들어지고 또 많은 입주민이 함께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 하는 세상, 왜 같이 사느냐고? 이렇게 답하겠다. 나와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나 같이 살면서 진짜 나 자신을 찾고 성장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잖아?
원문: ROOT IMPACT / 필자: 허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