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사람이지만, 남들은 다 비난해도 나는 절대 비난하지 않는 사안이 하나 있다. 바로 대통령의 선거운동 문제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발의까지 몰렸던 바로 그 사안이다. 한번 첫 단추가 이렇게 잘못 끼워지니, 후임 대통령들도 계속 이 족쇄에 얽힐 수밖에 없다.
물론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탄핵의 ‘ㅌ’ 자도 나오지 않지만, 선거 때만 되면 일정 하나하나가 선거법 위반의 혐의를 받으면서 정치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 어디 시장을 들러도 욕을 먹고, 아파트 단지를 둘러도 욕을 먹는다. 우리나라 선거법 해석상 대통령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9조에서는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機關ㆍ團體를 포함한다)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공무원이니깐 선거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공무원이라고 모두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도 공무원이지만 당연히 선거운동을 할 수 있고, 또 열심히 한다.
헌법재판소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공무원의 범위를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심판결정문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헌재의 결정문에 의하면, “좁은 의미의 직업공무원은 물론이고,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통하여 국가에 봉사하는 정치적 공무원(예컨대,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 등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포함한다.”고 한다. 명시적으로 대통령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는 연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미국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이 지지연설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힐러리 민주당 대선후보를 위해 미셸 오바마 대통령 영부인이 지지연설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지지연설을 한다. 그 연설문은 실시간으로 번역되어 우리에게 전달된다. 똑같이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인데, 어느 나라에서는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는 발언 한마디로 탄핵발의까지 되고, 어느 나라에서는 현직 대통령이 직접 자기 당의 후보를 찍으라고 지지연설을 한다. 이렇게까지 다를 수가 있는 것인가?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의무를 지고, 선거에 개입할 수 없다는 말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민주주의의 절대 원칙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당원이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당원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당원이다. 당원으로서 당의 집권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지고 있다. 그런데 집권을 위한 선거에는 개입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모순이 어디에 있는가?
이런 혼란이 생기는 것은 대통령이 이중적 지위를 갖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정치적 중립을 강제 받는 행정부의 수반임과 동시에 정치적 결사체인 정당의 당원이다. 행정부의 수반이라는 지위에서 국가의 행정력을 선거운동에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부당하다. (예를 들어 이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뽑아주면, 대통령의 권한으로 온갖 특혜를 주겠다는 식의 발언은 현행법상으로도 위법하고, 민주주의 원리에 비추어 봐도 반민주적이다)
그러나 정당의 당원이라는 지위에서 자기 당 소속 의원의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행동이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 후보는 인격적으로도 훌륭하고 국가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지지를 해 달라는 식의 발언은 정치적으로 합당하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은 선거운동의 자유가 있다. 정치인들도 당연히 선거운동의 자유가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정치인만 이 자유를 부정당한다.
미셸 오바마의 명연설은 계속 회자되고 있다. 그녀 역시 엘리노어 루스벨트의 뒤를 이어 위대한 영부인의 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이명박의 부인인 김윤옥 씨가 박근혜 씨에 대한 지지연설을 공적으로 한다면 도대체 무슨 욕을 얻어먹겠는가? 나는 설사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그녀를 욕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대통령의 선거운동은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발의가 부당했던 이유는, 대통령이라는 정치인이 합법적인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그 발언이 문제의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명박이나 박근혜도 마찬가지로 선거운동이 인정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자신이 가진 행정력을 정파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사적 이익의 발로가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새누리당 후보 지지연설도 기대가 된다.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그녀가 티비 앞에서 반기문을 지지해 달라고 연설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진다면 대환영이다. 아마 반기문 씨가 극구 사양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정치인은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그러니 대통령이라는 정치인이 정치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가? 자기가 속해있는 정당의 후보자를 지지해 달라고 하는 그 당연한 정치적 행동은 당연히 수용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대통령이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