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내내 미디어와 SNS를 다루는 핫뉴스는 중국 정부의 한류 콘텐츠에 대한 규제 내용이다. 그로 인해 관련 주식은 폭락하고 있고, 우려와 분노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홍수처럼 쏟아지는 해당 보도와 기사가 과연 팩트에 기반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사실에 기반한 위기상황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근거 없는 괴담일 수 있는 이런 이러한 내용을 좀 더 심층적으로 작성해 보았다.
1. 모 매체에서, CCTV에서 보도하기를 광전총국에서 한류제재를 명문화했다는 기사가 떴다. 늘 그렇듯 해당 기사는 포털사이트에 올라가 분노가 가득한 한국인들의 댓글이 올라왔고, 페이스북을 포함해서 SNS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빅뱅·엑소 등 아이돌의 중국활동 금지, 신규 한국 문화콘텐츠 회사에 대한 투자 금지, 1만 명 이상의 한국 아이돌 공연 금지, 한국 배우 출연 드라마 제작 공지 등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담았다.
그런데 아무리 한국과 중국의 외교 상황이 사드 때문에 냉랭해져도 이 정도로 충격적이고 구체적인 제재를 정부 산하 광전총국에서 대놓고 발표하고 공영 뉴스에서 다룬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확인한 결과, CCTV에서는 그런 뉴스를 내보낸 적이 없다. 즉 중국발 뉴스를 낸 해당 미디어의 기사는 오보다. 혹은 모종의 노림수가 있는 계획된 오보일 수도 있겠다.
해당화면은 합성이다. 그것도 엉성한 합성이다. 지금 중국 위챗 채팅방에서 돌고 있는 조악한 합성사진이다. 물론 나도 그제 보았으나, 포스팅 거리도 되지 않아 그냥 무시했던 것에 한국의 매체가 덥석 낚인 것이다. 화면에 찍힌 8월 22일 CCTV 뉴스에는 다른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있고, 해당 시간에는 터키 관련 뉴스를 보도하고 있었다.
단독으로 취재해서 보도했다던 그 매체는 어쩌려고 최소한의 확인도 하지 않고 이런 대형 뉴스를 내보낸 것일까?
2. 어제 마침 중국 메이저 드라마 제작사를 만날 일이 있어 관련한 내용을 가장 먼저 문의했다. 한중 합작 프로젝트 관련하여 어떤 정부 측 공문이나 지시가 내려온 일이 없다고 한다. 현재 촬영 중인 프로젝트에 한국 연예인을 출연 금지하라는 내용은 더욱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광전총국 측 우회 루트를 통해서 본 내용을 문의해 보았다. 총국에서는 그 어떤 규제조치도 내린 일이 없다고 했다.
여기까지 공식적인 팩트이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어떤 제재나 보복 조치도 내린 일이 없는 것이다.
3. 지금부터는 (익명을 전제로) 관계자들의 추측성 의견인데,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윗분들의 불편한 심기를 관심법(?)으로 들여다보고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혹은 본인들의 움직일 수 있는 권한 선에서 알아서 액션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건 중국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심의를 늦춘다든가 프로그램 출연이 예정된 한국 연예인의 섭외를 취소한다든가 하는 식의 액션은 얼마든지 실무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전 <색, 계>를 찍은 이후 탕웨이가 그런 대상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비자 문제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상무 비자 발급이 중단되었다고 난리가 났던데 엄밀하게 말하면 상무 비자 발급이 중단된 것이 아니다. 규정을 FM대로 준수하겠다는 것이다. 원래는 여행사-비자 대행사-영사관의 커넥션에서 편의를 봐 주던 초청장에 대한 부분을 이제부터 영사관에서 제대로 서류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규정이 바뀐 것은 없다. 단지 지금까지 봐 주던 편의를 봐 주지 않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공문을 통해 밝힌 것이 전부인데, 이 상황을 대다수의 비자발급을 취급하는 대행사에서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그냥 ‘상무 비자 비자발급을 중단했다’고 이야기하면서 혼란이 가중된 것 같다.
두 번째 시각. 중국 콘텐츠 업계, 특히 방송국 쪽에서는 원래부터 한류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부정적으로 보던 세력이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친한이 있으면 혐한도 있는 법이다. 물론 시청률에 목매는 방송사에 입장 그리고 돈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한류 혹은 한류스타를 중점적으로 취급했으나 내심은 못마땅했던 것이다.
다른 이야기지만 여기에는 중국에서의 폭발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급작스럽게 S급으로 발돋움한 뒤에 너무 몸값이 치솟거나 스케줄을 핑계로 캐스팅을 고사하는 한국 연예인들에 대한 반감도 작용하였다.
그 와중에 사드 이슈가 터지니 마침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격으로 시청률에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고 대중들의 한류 콘텐츠에 대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 수 있었다는 해석인 셈이다. 이 해석도 나는 상당 부분 공감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한국 속담도 있다.
4. 하지만 나의 진정한 걱정은 현재의 상황이 아니다. 정치적인 이슈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고 (현 단계에서 크게 신뢰는 가지 않지만) 한국 정부에서 나서서 잘 해결하는 것 말고 딱히 방법이 없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 혹은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인 양 호들갑스럽게 보도’하는 미디어의 선정적인 보도 태도를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해당 기사나 보도를 접하는 대중들은 크게 진영논리에 의해 한국 정부의 무능함을 질타하거나 중국 정부의 무대포를 욕하는 두 부류로 나뉠 것이고 (혹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도 있겠구나) 그로 인해 어쨌든 분노에 찬 대중들이 대다수가 될 텐데, 그런 미디어의 보도와 대중들의 모습은 중국에서 보기에는 도리어 심각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인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경계한다.
국가 간 부정적 여론은 동일하게 부정적 여론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정부 차원에서도 진짜 경제보복이나 제재를 만들 명분을 줄 수 있게 된다. 즉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미디어에 의해 ‘팩트’로 둔갑하고, 그로 인해 양국 국민에게는 ‘부정적 여론’이 생기고 결국은 ‘진짜 경제보복조치’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 내가 가장 우려하는 점이다. 나뿐만 아니라 중국 업계 관계자들도 이 문제는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중국 언론도 국수주의와 선동에는 도가 텄다는 것을 (나와 가까운 콘텐츠업계 관계자들도) 대 놓고 말은 못하지만 알고 있는 것이다.
5. 선정적인 내용과 자극적인 기사에는 당연히 트래픽이 몰린다. 그래서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오고 싶은 미디어의 생리는 나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나도 프로는 아니지만 글을 쓰면서 더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고 공감해 주기를 바랄진대, 하물며 그걸 업으로 삼는 이들은 오죽할까?
하지만 미디어에서 원하는 것이 중국이 진짜 한국에 경제보복조치를 해서 한국의 경제인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 보도의 목적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작금의 팩트에 대한 확인 없이 추측성으로 기사를 쏟아내는 방식은 한참 잘못된 방식이라 주장하고 싶다.
6. 정리를 하자면 당분간 심의 등은 FM을 준수할 것이다. 콘텐츠 분야의 신규 합작 프로젝트의 경우 지금까지의 일방적 러브콜을 하던 중국업체들이 다소 속도가 더뎌지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도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이지 공식적인 규제도 아닐뿐더러, 내심은 돈이 되는 한국과의 합작 프로젝트에 여전히 관심이 높다. 양국 간의 현안이 해결된다면 금방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고 타결이 늦어진다면 지금의 관망세가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관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또 하나 덧붙이자면, 한국과의 제휴를 원하는 그들 중에서 그게 성공의 확신이 있는 프로젝트라 판단되면 관망세를 털고 먼저 추진할 배짱이 있는 이도 등장할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자.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민간사업자로서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주변 정세에 너무 목메기 보다는 우리가 가진 경쟁력을 한 번 더 돌아보자는 의미이다.
8. 한중간에 마늘전쟁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도 한국 정부는 한국 마늘 농가를 보호한다고 (그 여파가 외교 통상적으로 가져올 이슈는 생각지도 않고 단지 국내 정치이슈로) 중국산 수입마늘에 관세를 때렸다가 한국 반도체가 전면 수입이 중단되는 등 거대한 역풍을 맞고 몇 개월간의 협상 후 타결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보다는 작금의 사드 배치 문제가 군사 안보적인 부분까지 포함된 지라 더 민감한 사안일 수 있으나, 나는 부디 우리 정부가 외교적으로 잘 나서서 민간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신중하고 현명한 액션을 취해 주기를 바란다.
정작 해당 산업의 중심에 있는 이들은 차분한데, 주변의 호들갑으로 인해 없는 사실이 팩트로 둔갑하고 그로 인해 생기지 않아도 되는 피해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