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몇 년간 읽은 책 중 베스트 3에 올리고 싶은 책이다.
- 저지방 식단(채소와 곡물 위주, 곧 저지방 고탄수화물)이 건강식이란 생각은 허구다.
- 동물성 포화지방이 좋다. 많이 먹자.
책의 핵심 메시지를 이렇게 요약하면 딱 B급 건강서적 스멜이 난다. 앳킨스 다이어트 홍보하는 그저그런 싸구려 건강서적 느낌. 그러나,
절대 아니다
이 책이 너무나 흥미진진한 이유는 단순히 내가 먹을 음식과 나의 건강에 관해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20세기 의학·영양학계가 어떻게 심장질환을 이해하고 어떤 데이터를 만들었고, 그 결과들을 토대로 어떻게 권위 있는 전문가 단체와 국가가 권고안을 만들어왔는지, 여기에 영향을 미친 자본가들의 로비, 그 와중에 자신의 이론에 신념을 가진 과학자들이 보였던 지극히 비과학적인 편향적 태도들과 대립, 정치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모든 게 제약업계의 로비? 모든게 낙농업자들의 로비? 풋…그것도 이제 식상한 음모론 레파토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역시 이 책은 그런 자극적 레파토리에만 집중하는 (선수들에겐 식상한) B급 서적이 아니다.
나의 경우, 딘 오니시의 책을 읽고 수년간 채식을 했던 경험이 있다. 나름 과학자라고, 오니시의 책에서 제시한 풍부한 역학 연구결과들과 임상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내린 판단이었다. ‘적어도 고기를 안 먹어야 심혈관, 뇌혈관질환, 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건 과학적인 팩트구나.’ 그래서 채식하는 나를 마치 순진한 운동권 청년 보듯 보는 사람들에게 항상 강조했다. 철저한 과학적 팩트에 기반해서 건강을 위해 채식하고 있는 거라고. 오니시는 분명 위대한 과학자였고, 난 그의 풍부한 연구결과와 근거에 기반한 판단을 믿었다.
이 책에도 오니시가 등장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영양학계의 역사를 꼼꼼하게 다루며 비평하고 있기에, 당연히 한때 근거기반 건강식단으로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오니시도 등장한다. 저자는 오니시의 연구를 포함해 수많은 주류 영양학, 의학 연구자들이 고탄수화물, 저지방 식단의 근거로 들었던 역학, 임상시험 연구들을 실제 raw data 수준까지 파고들어가 비판한다.
그리고 인과관계를 판단하기엔 너무나 미약했던 근거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소수의 신념과 권위를 가진 과학자들, 그리고 여기에 동조한 언론과 위원회 등이 짧은 시간에 미심쩍은 가설을 확고한 과학적, 의학적 진실의 위치로 올려놓을수 있었는지 보여준다.
이미 학계와 정부가 한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한 이후엔 거듭된 증명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반대의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관성에 따라 불도저처럼 밀고 갈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시리얼 회사 등의 로비 때문이 아니었다. 과학자들 역시 그들의 커리어를 바친 학설을 어떻게든 수호하기 위하여, 반대학설을 무시하고 짓밟는 지독한 선택편향을 보여왔다.
심지어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었던 학자들도 반대진영에 섰다 전투에 패배하면서, 숙청당한 정적마냥 고꾸라저야 했고, 이후 수십년간 반대 학설에 대한 연구는 연구자금을 지원받을 수도, 논문 게재를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학계에서의 전쟁에는 (어떻게든) 승리했지만 분명 수십년간 그들의 권고안에 따라 미국인의 음식섭취가 확연히 개선(?)되었음에도 비만, 대사증후군과의 전쟁은 패배했다는 사실이 명확해지면서 2000년 이후로 반대진영의 연구결과들이 다시 조명받고 있는 게 오늘날의 상황이다.
정리
개인적으로 이 책의 흥미로운 포인트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저자가 구체적으로 역학연구와 임상시험결과를 소개하고 비판하는 내용들은 의사로서, 의학연구자로서 충분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 저명한 학자들이 네이처, NEJM에 논문을 개재해도 그 이후 학계 전반의 컨센서스가 만들어지고 나아가 권고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엔 또 얼마나 비과학적인 선택 편향과 정치가 작용하는지, 여기에 대항하는 학자들이 어떻게 숙청되고 커리어를 망치게 되는지 등, 리얼 과학계의 세세한 묘사는 한 명의 과학자로서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 우리의 통념과 달리 인류가 포화지방을 든든히 섭취해왔고, 그를 통해 더 건강을 유지해왔음을 보이기 위해 엉뚱하게도 역사와 문학을 뒤지는 대목. 20세기 영양학의 연구결과들을 종합적으로 치밀하게 분석하여 이 분야의 과학을 한단계 발전시킨 영웅이(학계에서 인정받고 상도 받음ㅋ) 놀랍게도 과학자가 아닌 비전공 과학기자였다는 내용 등은 과학의 방법론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또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 기자는 학계에 속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울 것도 없었고, 주류의 지독한 선택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있었다.
아무튼 정말 이 책은 모두에게 머스트 리드 아이템이다.
원문: 김창업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