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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5일, 부산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고등학교 2학년 학생 권 군이 투신자살하였다. 경북 지역의 한 자율형사립고 재학생이었다. 2학년에 진급해 치른 첫 번째 모의고사에서 인문계 1등을 차지했다. 1학년 때 반장, 2학년에 올라가서 부반장을 맡았다. 투신 1주일 전 담임교사와 상담을 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행정학과에 가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권 군이 투신 직전 자신의 어머니에게 남긴 유언은 다음과 같았다.
“제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데 이제 더는 못 버티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죄송해요.”
공부 잘하는 학생이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다며 자살하자 교육 당국이 내놓은 주요 정책 과제 중 하나가 ‘인성교육 중심의 수업 강화’였다. 인성교육에 초점을 맞춰 수업하면 권 군처럼 성적 압박으로 자살하는 학생을 막을 수 있다? 어떻게 수업하면 그렇게 되나? 교육 당국에는 미안하지만 실소가 나왔다.
2014년 8월 경기교육청이 상벌점제 폐지 내용을 담은 ‘건강한 성장, 인권 친화적 생활교육 추진계획’ 공문을 각 학교에 발송했다. 당시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상벌점제 폐지가 ‘지도와 훈육 중심의 생활 지도에서 탈피해 새로운 생활교육 방안을 제시하는 측면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주장했다.
보수 교원단체 한국교육단체총연합회(교총) 대변인(김동석)이 반박했다. “상벌점제는 생활지도의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인성교육의 한 방편”이다. “학생들은 상벌을 통해 권리와 책임, 옳고 그름을 배우게 된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학교 현장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거나 무시와 냉소의 대상이 되는 상벌점제가 인성교육의 한 방편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놀라웠다.
권 군의 자살 사건과 경기교육청발 상벌점제 폐지 논란은 시공간적으로 별개의 사안들이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 인성교육이다. 자살을 막고 학생들에게 권리와 책임을 가르친다! 놀라운 능력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때까지 교육 당국은 인성교육의 ‘위력’을 몰랐던 걸까. 인성교육 만능론이 작동하지 않는 인성교육 만능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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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1일부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인성교육진흥법〉(이하 〈인성교육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다. 2014년 12월 출석 의원 199명의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률이었다.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人性)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여 국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 교육은 좋은 인성과 태도를 지닌 민주시민을 길러내고 있는가? ‘인성’을 한두 마디로 규정하기란 어렵다. 〈인성교육법〉은 어떻게 규정해 놓았을까. 인터넷으로 조문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 “인성교육”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말한다.
- “핵심 가치·덕목”이란 인성교육의 목표가 되는 것으로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가치 또는 덕목을 말한다.
- “핵심 역량”이란 핵심 가치·덕목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실천 또는 실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공감·소통하는 의사소통능력이나 갈등해결능력 등이 통합된 능력을 말한다.
〈인성교육법〉은 인성교육의 기본방향을 “인간의 전인적 발달을 고려하면서 장기적 차원에서 계획되고 실시되어야 한다”라고 밝혀 놓았다. 전통적으로 고귀한 가치를 지니는 핵심 가치와 덕목을 중심으로 인간의 성품과 역량을 장기적으로 기른다는 것. 좋은 말들이다. ‘인성교육’을 잘 받으면 훌륭한 인격자가 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렇게 물어보자. 〈인성교육법〉에 따라 일정 시간 인성 수업을 이수하면 아이들은 예를 지키고 효도하며 정직하고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1920년대 후반 휴 하트숀과 마크 메이는 아이들이 어른들이 지켜볼 때 바르게 행동하라는 덕목의 지시를 따르지만 그들의 감시를 벗어날 때는 자주 규칙을 어긴다는 점을 연구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고 한다(넬 나딩스, 『21세기 교육과 민주주의』(2016), ‘9장 전인을 위한 교육’).
하트숀과 메이의 연구 결과는 로런스 콜버그에게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공하였다. 콜버그는 인격교육을 ‘덕목 보따리(bag of virtues)’ 접근이라고 하면서 비판했다. 첫째, 인격교육은 효과가 없다. 둘째, 그것은 교화의 형태를 띤다. 우리는 교화가 독재체제나 전체주의 사회에서 즐겨 사용되는 교육방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공동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20세기 전체주의가 부상하는 상황을 보면 덕과 인격이 파시즘과 나치즘 아래에서 크게 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직, 용기, 자기희생, 동료애, 충성심, 그리고 애국심을 열렬히 가르쳤지만, 이 덕목들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공동체의 도덕적 선과 관련하여 지속해서 관찰되고, 성찰되어야 한다. 우리는 히틀러 체제 내에서 도덕/사회 교육을 경험한 청소년들에 대해 무한한 동정심을 가져야 한다. 그 당시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들이 그들과 같은 교화를 당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몸서리쳐진다.
- 넬 나딩스, 『21세기 교육과 민주주의』,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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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이 대세다. 대학과 기업이 인성을 평가 요소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성교육 강화 및 대입 반영 확대가 교육부의 2015년 주요 업무과제 중 하나로 제시되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2017학년도 입시에 보육·사범대학 중심으로 학교생활기록부상의 인성 발달사항을 핵심적으로 반영했다. 2017학년도 전문대학 입시에서 인·적성을 평가하는 ‘비교과전형’으로 선발하는 인원이 2016학년도 대비 196퍼센트 늘어났다. 대입 수시모집에서 인성면접을 신설하기로 한 대학도 등장했다.
사교육 시장도 들썩였다. 인성 평가와 관련된 교육부 인증을 받기 위해 ‘인성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인성교육 실천 인증 급수제’를 논의하는 민간교육단체들이 생겨났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된 인성 관련 자격증 및 자격시험은 200종이 넘는다. 인성 ‘자격증’으로 인성을 인증해 준다는 발상이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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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부모 등 대한민국 어른은 대체로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들이 인성이 좋다고 말한다. 착함과 순응을 좋은 인성으로 보는 논리에 문제가 없는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은 이들에게 프랑스 그르노블대학 사회심리학과 로랑 베그 교수가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말하는가』에 인용한 자신의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하고 싶다.
베그 교수는 성격이 권위에 대한 복종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대인 관계에 유리한 긍정적인 경향, 예컨대 양심 있고 상냥하며 호감을 주는 성격이나 태도들이 사회적 순응의 형태로 악행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서였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참가자가 양심적일수록 권위에 쉽게 복종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친절하고 순리대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들, 사회에 나무랄 데 없이 편입되어 있는 사람일수록 권위에 대한 불복종을 꺼렸다는 것. 베그 교수는 성실한 인격의 소유자들이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권위에 잘 저항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착함’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시각도 크게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는 착함을 한 사람의 내적 기질이나 성격, 태도 정도로 축소해 이해한다. 그렇지 않다. 착함은 어느 한쪽의 무조건적인 순응이나 복종, 일방적인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착하다’를 가리키는 한자는 ‘善(선)’이다. 사전에서는 ‘善’의 근원을 ‘좋다’로 풀이한다. 善은 금석문에서 ‘羊(양)’ 아래쪽 좌우에 ‘言(언)’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으로 쓰여 있다. ‘言’이 병립한 글자 ‘言言(경)’은 각각 원고와 피고의 발언을 뜻한다. ‘羊’은 ‘神(신)’이다. 따라서 ‘善’의 자원(字源)인 ‘좋다’는 양을 신으로 하여 원고와 피고 양자가 서로 ‘좋은’ 결론을 구하는 모양에서 나왔다. 착함은 상호작용 속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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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육과정의 최고 목표는 민주주의 시민 양성이다.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인성교육으로는 성취하기 힘들다. 인성, 인성교육에 대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원문: 정은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