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부산행〉이 한국 좀비영화의 새 역사를 쓰며 주목받았습니다만 그동안 한국에 좀비영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80년 강범구 감독의 〈괴시〉를 시작으로 〈죽음의 숲 – 어느날 갑자기 네 번째 이야기〉 (2006) 〈이웃집 좀비〉(2009) 〈미스터 좀비〉(2010) 〈좀비스쿨〉(2014)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그저 대규모 상업영화에 좀비가 등장한 것은 〈부산행〉이 처음일 뿐이죠.
세계 최초의 좀비영화는 1932년 작 〈화이트 좀비〉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 영화는 제목에만 ‘좀비’가 들어갈 뿐 정작 벨라 루고시가 연기한 좀비 자체는 온순합니다.
인간을 물어뜯고 감염시키는 좀비가 등장한 것은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흑백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 시초입니다. 하지만 정작 영화 속에선 ‘좀비’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리빙 데드’로만 표현하는데, 이들을 ‘좀비’로 지칭한 것은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언론에 소개된 이후의 일입니다.
좀비영화 베스트 10을 꼽아봤습니다. 한때 좀비영화를 참 좋아했거든요. 우선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0. 플래닛 테러(Planet Terror), 2007
한쪽 다리에 머신건을 장착한 로즈 맥고완의 강렬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영화입니다. 어떤 영화는 이렇게 한 장면만으로도 충분합니다.
9. 데드 스노우(Dead Snow), 2009
노르웨이에서 온 저예산 좀비 영화입니다. 나치가 좀비라는 설정이 기발한데요, 생각해보면 나치와 좀비는 너무 잘 어울려서 왜 이런 영화가 진작 없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8.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 2007
친구도, 가족도, 직장 동료도 다들 좀비가 되어 지구 상에 홀로 남았다면 얼마나 외로울까요? 이 영화가 바로 그 주제를 다룹니다. 인류 멸망 이후 최후의 생존자가 된 윌 스미스의 친구는 개 한 마리뿐입니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절망의 도시에서 무언가 해야 할 일을 찾습니다.
또 이 영화의 극장판과 감독판은 엔딩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자세하게 말씀드리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습니다만, 이 엔딩 장면에서 영화의 줄거리뿐 아니라 제목의 ‘전설’이 의미하는 바까지 달라집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재미있게 보신 분이라면 감독판과 비교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네요.
7.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 2004
조지 A. 로메로의 동명의 1978년 작품을 리메이크했습니다. 〈28일 후…〉의 영향을 받아서 뛰어다니는 좀비가 나옵니다. 인물들 간의 갈등과 현장감이 뛰어난 스릴러입니다.
6. 새벽의 황당한 저주(Shaun of the Dead), 2004
이렇게 웃긴 좀비 영화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좀비와 코미디의 그야말로 황당한 결합입니다. 좀비 장르를 재정의했다는 면에서 좀비영화계의 〈스크림〉이라고 할 만합니다.
5.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 1968
오두막집 주위에 인육을 먹는 시체들이 서성거립니다. 이들은 방사능 누출로 인해 무덤에서 일어난 시체들입니다. 오두막에 숨은 사람들끼리도 내분이 일어납니다. 여주인공은 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요?
베트남전, 인종차별, 핵가족화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믹스해 공포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4. 데드 얼라이브 (Dead Alive, 1992)
감독이 피터 잭슨이라면 스플래터 무비도 이렇게 유쾌할 수 있습니다. 지나친 저예산이었던 〈고무 인간의 최후〉보다는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퀄리티를 자랑하는 작품입니다.
원숭이에 감염돼 좀비가 된 엄마로부터 모든 일이 시작되는데요. 엄마를 살려내려는 아들의 분투가 눈물겨운 호러 휴먼 좀비 코미디입니다.
3. 좀비랜드(Zombieland), 2009
‘유비무환’이라고, 좀비도 미리 준비하면 막을 수 있을까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좀비 창궐을 대비해 행동 매뉴얼을 만들어 놓은 게임덕후입니다. 외톨이인 그는 정말로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문명이 멸망하자 집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터프가이와 여자를 만나 친구가 됩니다. 좀비가 은둔형 외톨이를 세상으로 끌어내고 우정도 만들어 준 셈이죠. 스릴러와 코미디가 제대로 섞여 보는 내내 즐겁습니다.
2. 28일 후…(28 Days Later), 2003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충격으로 한동안 얼얼했던 것이 기억에 남네요. 동물 권리 운동가들이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침팬지들을 풀어주자마자 세상이 변합니다. 좀비로 인해 멸망한 문명으로 시작하는 첫 영화로 빠르게 뛰어다니는 좀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좀비영화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작품입니다.
이 영화 이후 좀비영화들은 고어보다 스릴러를 강화해 놀라운 속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후속편 〈28주 후〉로 이어지는데, 〈28달 후〉는 제작이 무산되었다고 하는군요.
1. 시체들의 새벽(Dawn of the Dead), 1978
지옥이 꽉 차는 날, 죽은 자들이 땅 위를 걸을 것이다.
좀비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가 등장한 영화가 바로 이 작품입니다. 좀비를 피해 쇼핑몰로 도망친 주인공은 그곳에서 좀비 떼를 만납니다.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에 관한 강렬한 메타포가 담긴 걸작입니다. 개인적으로도 학창시절에 보면서 좀비영화를 찾아보는 계기가 된 작품입니다.
원문 : 유창의 창작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