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의아할 정도로 노태우는 존재감이 없는 전직 대통령이다. 노태우는 아직 생존해 있기도 하고, 그가 집권하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그리 오래전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 앞의 전두환 그 뒤의 김영삼이 모두 캐릭터가 뚜렷한 데다 여러 이유로 많이 회자되다보니 노태우는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있다. 그래서 그가 대통령이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근데 요새 보수 진영이 하는 걸 보면 그 노태우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수 진영이 배출한 대통령 중에서 비교해보면 그가 꽤 훌륭한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업적
선거 공정성에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지기는 했어도 여하간 노태우는 1987년 직선에 의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1988년 2월에 출범한 노태우 정권의 정치적 정통성과 정당성에는 문제가 없다. 물론 노태우가 12.12쿠데타 주역 중의 한 명이므로 노태우 자체의 정치적 정통성과 정당성에 큰 문제가 있는 건 맞다.
그의 집권기는 1990년 3당 합당 전후로 나눠서 봐야 하는데, 여소야대 국회였던 전반부에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초의 협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87년 민주화 이후 전체를 보아서도 협치와 관련해서 보면 매우 모범적인 시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만 보아도 과거청산 관련하여 5공 청산, 광주항쟁 관련 청문회가 시행되었고(5공 청문회의 스타가 노무현이다), 1989년에는 토지공개념 관련 3법을 통과시켰다. 이와 같은 조치들은 역사적 의미가 컸고, 민주화의 효과를 실감 나게 해준 역사적 경험이 되었다.
이것은 여소야대 국회라는 조건과 노태우의 리더십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상황을 보면 여야 협치가 잘 되는 경우는 보수 세력이 부드럽게 나올 때다. 진보 쪽은 이성적인 논리에 스스로를 가두는 경향이 있어서 좀 말이 안 된다 싶으면 치고 나가지 못하기도 하고 내부에서 이런저런 잡음이 많이 나서 통일된 대응을 잘 못 한다. 그런데 보수는 그렇지 않아서 단일한 목표에 따라 저돌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내부 동원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건 무망하지만 상대가 있는 관계 속에서 한쪽이 저돌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면 그 관계는 불안해진다. 그래서 협치가 잘 될 때에는 보수가 부드럽게 나올 때(이런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인데, 집권 초중반 노태우가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1990년 3당 합당 이후에는 권위적 통치 방식으로 회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야당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지는 않아서 김대중이 단식투쟁으로 지자체 실시를 요구하자 결국 이를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진보 진영이 노태우를 재평가한다면?
북방정책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그리고 북한과의 고위급 회담도 개최하여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임동원이라는 걸출한 협상가가 탄생하였고 임동원이 결국 김대중과 함께 햇볕정책을 이끌게 된다. 그리고 남북한 UN 동시 가입도 이 시기에 이뤄졌다.
수천억의 비자금을 축재하고 12.12쿠데타 주역이라는 매우 결정적인 한계가 있는 인물이기는 했지만, 그의 정책과 정치 스타일만 보면 보수 진영이 배출한 대통령 중에서 수준급에 속한다. 특히 이명박 이후 보수 진영의 모습을 보니 노태우가 그리울 지경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노태우에 대한 재평가를 진보 진영이 하면 어떨까? 사실 중도 보수 쪽에서는 진보 진영이 전반적으로 편협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진보 진영에 그런 요소가 있는건 분명 맞긴 한데, 상당 부분은 왜곡된 측면도 있다.
그런데 진보 진영이 노태우 정권을 재평가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것은 몰라도 이와 같은 인식을 깨뜨리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런 것이 긍정적 관점에서의 국민통합을 위한 실천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