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기자 접대 경험담을 통해 가장 극단적인 구악질 행태를 서술했다. 가장 극단적이라는 것은 대체로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구악질로 유명한 기자들은 업계에 손가락 꼽힐 정도로 있다. 대부분은 구악스럽지는 않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여성들이 기자 직군에 대거 유입되면서 상당히 정화되었다. 더구나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들과는 다른 생활문화를 갖고 있다. 단체회식 별로 안 좋아하고, 꽐라가 될 정도로 술 마시는 거 안 좋아하고, 퇴근 이후 개인시간을 갖기를 원하는 등 조건이 많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짜 밥, 공짜 술은 남녀기자, 시니어 주니어를 가리지 않는다. 이건 잘못된 관행이 문제의식 없이, 단절 없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능동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내려온 것이다.
문제는 젊은 기자들조차도 ‘공짜’가 습관이 되는 것이다. 나도 초짜 시절엔 이래도 되나? 쭈뼛쭈뼛했다. 선배들이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몇 번 반복되다 보면 공짜가 당연한 게 된다. 어느 밥 자리든, 어떤 술자리든 당연히 기자인 나는 지갑을 꺼낼 필요가 없는 존재다. 나머지 사람들이 알아서 하는 거다.
일상 속의 부패, 거악으로 자라나는
일상 속의 부패는 작은 밥 한 끼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간이 붓기 시작한다. 왜? 다들 그러니까. 그렇게 자신을 변호한다. 다들 그러는데 뭐가 문제야? 밥 사주고, 술 사주는 사람들이 문제없다는데, 내 주변 선후배들도 다 그러는데 뭐가 문제야. 도덕관념은 무디어지고 염치는 찌질해진다. 더 나아가 나는 문제 없다고 스스로 정당화한다. 죄의식 자체가 사라진다.
공짜 밥, 공짜 술, 공짜 골프도 모자라 홍보실 사람들을 무슨 아랫것처럼 여기는 안하무인 오만방자 수준까지 나아간다. 여의도 증권 바닥에서 기자생활 오래 한 어떤 매체 차장이라는 인간은 무슨 동네 깡패처럼 길거리를 휘휘 저으며 홍보실 직원들 인사를 받는다. 거지도 모자라 이제 양아치 수준에 도달한 거다. 자기들끼리 마신 술값 내라고 한밤중에 홍보실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나오라고 하는 미친 수준에까지 이른다. 자기 결혼한다고, 자식 결혼한다고 온 동네방네 청첩장을 돌리고 납세자 세금 거둬들이듯이 축의금 챙긴다.
일상 속의 부패는 이렇게 점점 거악으로 자라난다. 급기야 뻔뻔하게 맡겨놓은 돈 찾듯이 업체들에 협찬 내놓으라고, 광고 내놓으라고 한다. 미안함도 없다. 안 내놓으면 조진다. 예전 기사까지 싸그리 긁어모아 조진다. 포털은 아주 좋은 수단이다. 포털에 냅다 쏘면 된다.
어떻든 자기가 임원 자리에 있는 동안 문제가 없어야 잘 먹고 잘사는데 지장이 없는 임원들은 홍보실 직원들을 조진다. 기사 막아라, 내려라, 고쳐라. 힘없는 홍보실 직원들 냅다 언론사로 달린다. 전화기 돌린다. 평소 공짜 밥 공짜 술 공짜골프 받았던 기자들 차장들 부장들 국장들 대표들 전화 받는다. 그리고 기사 고치고, 빼고 그런다. 홍보실과 기자들에겐 이건 부패가 아니라 그냥 서로 돕고 사는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이 되었다.
옛말에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한다. 맞다. 작은 도둑이 큰 도둑 되는 거다. 그리고 공짜 밥에 길들어진 ‘거지’는 다 커서 남의 지갑 내놓으라고 협박질을 하는 ‘양아치’로 진화한다.
‘김영란법’, 작은 부패와의 전쟁
기자라는 직군만 그런 건 아닐 거다.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먹이사슬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공짜 밥 공짜 술 공짜골프를 즐기고, 누군가는 그 비용을 대신 지불해야 한다. 이런 먹이사슬은 ‘상부상조’라는 미풍양속의 탈을 쓴 관습을 에너지 삼아 이 지경에 이르렀다.
김영란법 제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이다. 우리가 둔감하게 지나쳤던 일상 속의 부패와 단절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작은 것부터 고쳐야 큰 것도 고칠 수 있다. ‘거악을 때려잡겠다’던 검찰의 양아치스러운 짓을 목도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생활 속의 작은 부패부터 잘라내야 하는 순간을 맞고 있다.
내가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에 호텔이나 고급음식점에서 열리는 조찬모임에 가서 공짜 밥 안 먹겠다며 6-7천 원 하는 죽을 주문해서 자기 돈으로 계산했다고 한다. 똥폼 잡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는 궁상스러워 보이는 이런 ‘작은 실천’이 큰 부패를 끊어내는 시작점이다. 이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작은 일을 잘해야 큰일을 잘한다’고. 거악 척결이니 부패추방이니 거창한 이야기 떠들 필요 없다. 우리 일상 속에서 수많은 공짜만 몰아내도 세상은 한결 투명해지고, 서로가 더 편해질 것이다.
김영란법은 ‘작은 부패’와의 전쟁이다. 그래서 여러 언론과 그 언론에 부화뇌동한 정치인들이 도모하고 있는 김영란법 수정은 어떻게든 막아내야 한다.
원문 : Soon Wook Kwon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