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에 1호점을 오픈한 쉑쉑버거(쉐이크쉑 SHAKE-SHACK) 먹으려고 줄을 백미터씩 선다는데, 어이가 없어서 아빠 미소를 짓게 된다. 좋게 해석하면 새로운 것에 대한 한국인들의 호기심과 관심이 이 정도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이 더위에 몇 시간 줄 설 각오가 안 서는 소녀들과 아재들을 위해 형이 안 먹어도 먹은 느낌 나게 설명해주겠다.
1. 우선 쉑쉑버거가 맛이 있냐 없냐 묻는다면, 분명 맛은 있다. 그런데 문제는 버거가 시발 맛있어봐야 버거지 뭐, 햄버거 패티를 중국 5천 년 역사의 비기로 만든 것도 아니고 소스를 수르스트뢰밍에 섞어서 2달 발효시킨 것도 아닌데 도대체 뭘 바라는 거냐. 그냥 햄버거다 햄버거. 빵에 고기들어있는 거.
뉴욕에서도 쉑쉑버거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맛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매장이 있는 위치가 공원 안이고, 여유 있게 이쁜 공원 안에서 간식처럼 먹는 맛에 가는 거지 평생 다시는 먹지 못할 그런 압도적인 충격을 주는 부류의 음식은 전혀 아니다.
물론 본점에 가도 긴 줄을 서게 된다. 한가한 시간대가 아니면 최소 20분 정도는 줄을 서야 하는데, 이걸 너무 맛있어서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거기 줄을 서는 이유는 가게 자체가 너무 작아서이지(정말 작다. 주방만 따지면 두어 평?)미친듯이 사람이 몰려서는 아니다. 예를 들면 삼청동 닭꼬치집 앞에 줄이 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임.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에 살면서 대충 열댓 번 가본 동안 느낀 맛에 대한 점을 적어 본다. 일단 메뉴나 기타 여러 가지가 맥도날드나 버거킹과는 완전히 다르냐 하면, 전혀 아니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버거는 그냥 버거지 매우 스페셜한 무언가가 있을 턱이 없잖아. 메뉴 구성도 버거/프라이즈/음료로 똑같고 버거도 모스버거 정도의 크기로 결코 크지도 않고, 단지 패티가 내 기억으로는 불맛이 꽤 강하게 나는 느낌인데, 미안하지만 한국에도 이제는 진짜 맛있는 버거하우스가 워낙 많아서 그다지 충격적이지는 않다. 감자튀김은 확실히 맛있는 느낌이었는데 또 이야기하지만, 감자튀김은 그저 감자튀김임. 맥도날드 1,000원짜리 감자튀김조차 맛있잖아. (물론 영국 감자튀김은 제외)
굳이 전체적인 메뉴의 장점을 이야기하자면, 패티가 버거 크기에 비해서는 두꺼운 편이고 뻣뻣하지 않고 잘 구워진 느낌이고 토마토나 상추 등이 늘 신선한 느낌이었으며 프라이즈가 특히 맛있는 정도랄까… 여기에 1~2만 원을 굳이 쓰겠다면(그것도 땀을 질질 흘리면서 기다린 후에) 뭐 말리지는 않겠다.
3. 그런데 문제는 이태원 등지에 있는 햄버거 가게들이 쉑쉑보다 훨씬 맛있고 가격은 비슷하면서 양은 두 배쯤 된다는 것이다. 쉑쉑버거의 최대 약점은 모스버거랑 전체 양은 비슷하지만(쪼끔 더 많기는 하나.) 가격은 두 배 이상 비싸다는 것인데, 옛날 생각 하면서 한 번 정도는 가볼 생각이지만 두 번 갈 생각은 전혀 없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여성이 먹는 경우엔 어느 정도 배가 차는 양이긴 하지만 남자가 먹는데 이 돈내고 요거 먹는 데는 분명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는 것에 한 표.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쉑쉑버거의 인기와 환상은 ‘미국 동부의 대표적인 버거하우스’라는 캐치프레이즈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쉑쉑버거가 ‘뉴욕을 여행할 때 한 번쯤은 가볼 만한 명소’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 그건 결코 엄청나게 맛있어서가 아니라 본점이 위치한 메디슨 스퀘어 파크의 뉴욕스러운 정취와 주변 경관(건축사에서 유명한 ‘플랫 아이언’이 보이는 곳인 데다 그냥 주변 동네가 이쁨) 을 보면서 야외의 북적거리는 곳에서 지극히 미국스러운 버거를 즐긴다는 관점에서이다.
즉 쉑쉑버거는 동부를 대표하는 햄버거 가게라고 할 수는 없고, ‘뉴욕 여행할 때 꼭 가볼 100군데’중 하나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정확하다. 가서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굳이 또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은 아닌 정도인 것이다. 예를 들면 서울 살면서 ‘봉쥬르’ 한 번 정도는 가보라고 추천하는데, 그게 거기 음식이 맛있어서는 결코 아니잖아?
이쁜 로고나 귀여운 포장 같은 트렌디함을 즐기는 면도 있고 일단 맛도 괜찮고 해서 나쁜 선택이 아닐 뿐 뉴욕을 대표하는 버거라고 하기엔 좀. 한마디로 거기보다 맛있는 버거집 뉴욕에 널리고 널렸다. (진짜 맛있는 버거를 먹으려면 차라리 ‘잭슨 홀’ 버거를 가라. 여기 햄버거 패티가 롯데리아 치즈버거만 하다.)
5. 총평하자면 쉑쉑버거는 가성비를 따져보면 10점 만점에 6~7점 정도의 버거집이다.(참고로 맥도날드와 버거킹은 9점.) 데이트할 때 한 두 번 갈 가치는 충분하지만, 한입 한입 베어 물때마다 작아져만 가는 햄버거의 허망함을 눈으로 확인하며 ‘시발 버거킹 갈 걸 그랬나….’ 라는 안쓰러움이 밀려드는 그런 가게. 일단 위치가 강남역이다. 전혀 뉴욕답지도 않고 공원을 즐기면서 먹는다는 메리트도 전혀 없고, 이미 서울에도 맛있는 버거가 많기 때문에 굳이 햄버거가 당기면 네이버에 ‘이태원 햄버거 맛집’ 쳐서 나오는 아무 데나 가도 최소 쉑쉑버거보다 배부르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쉑쉑버거를 음미하려고 밤샜다는 청춘들에게 그저 가여움의 건배를. 교훈이 있다면 “인생에서 가장 쓸데없는 짓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을 얻은 것이다. 당사자도 밤새고 줄 선 후에 먹으면서 ‘아, 누가 물어보면 졸라 맛있다고 해야 하긴 하겠지만 나는 왜 이것 때문에 밤을 새웠을까…’ 라고 생각했을 거야.
서울에선 줄 안 서도 될 때 경험 삼아 한 번 정도 가시고, 그냥 뉴욕 가게 되면 드세요.
원문: Haklim Lee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