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기자 출신인 블로거 Indizio님이 쓴 ‘나의 김영란법 위반 사례기’이다. 밥, 술, 선물, 해외출장, 성접대, 골프, 해외연수 등의 체험을 적고 있다. 정도는 덜할 수도 있는데, 아마 국회의원, 보좌관, 비서관, 그리고 어느 정도는 관료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닐 듯 하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매우 클 것이다.
기자가 얻어먹었던 가장 큰 이유: 관행
나는 19대 국회에서 기자들을 꽤 많이 만난 보좌관 축에 속한다. 보통 보좌진과 기자가 밥이나 술을 먹으면 보좌진이 계산을 한다. 나는 기자들과 만난 비용을 ‘개인비용’으로 부담해야 했다. 당연히 비용부담이 꽤 됐다. 그래서, 19대 국회 후반기에는 미리 말하고 기자들에게 얻어먹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기자들에게 얻어먹었던’ 매우 드문 보좌진 사례가 아니었을까 한다.
내 사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기자들 역시 ‘나쁜 의도’보다는 ‘관행’을 따른 측면이 많았음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관행은 그 자체로 어떤 재생산구조를 갖는 측면이 있다. 김영란법은 매우 ‘급진적인 방식’으로 수십, 수백만명의 사회구성원이 관련되어 있는 ‘관행의 강제적 변화’를 목표로 하는 법안이다. 그만큼 실제로 엄청난 타격과 변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중·고가 음식을 팔던 식당은 실제로 망할 가능성이 꽤 높다고 본다. 한우, 농축산 식품, 굴비 등 선물용 상품업종의 경우에도 급격한 시장위축 가능성이 높다. 이 분야는 실제로 공기업과 대기업이 주요한 소비-구매층이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이 자신보다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제공하는 ‘선물-접대-향응 대규모 시장’이 존재했다.
주먹구구식 김영란법을 대중이 환영하는 이유
김영란법은 이처럼 관행으로 존재하던 ‘대규모 접대시장’을 급진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는 셈이다. 당연히 소비위축, 접대 관련 전후방 연관산업의 급격한 위축 등 경제적 후폭풍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실 나는 김영란법에 대해서 의구심이 많은 편이다. 김영란법은 마치 ‘정치 자체’를 위축시킨 지구당 폐지와 현행 정치자금법처럼, ‘만남-교류 자체를 위축시키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한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사실상 ‘밥 먹지 말고 차만 마셔법’의 성격을 갖고 있다.)
즉, ‘원인의 본질’은 건드리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덮어버리는 방식의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근거 있는 불신’이 워낙 강력하다. 실제로 ‘자본에 의한 국가 포획’만큼 ‘자본에 의한 언론의 포획’ 역시 강력하다. 자본-관료-정치-언론-사법으로 이어지는 ‘포획의 연환계’가 매우 강력하다. 이는 너무 명백한 현실이다.
그러니 각종 언론사들이 ‘김영란법의 폐해’를 ‘팩트’에 근거해서 보도를 하더라도, 국민들은 그걸 ‘부패한 언론의 의도가 있는 기사’로 읽을 뿐이다.
평소 ‘재벌 빨아주기’ 기사로 일관하고, 삼성 등 재벌의 문제점에 대한 기사는 광고료와 맞바꾸며 쓰지도 않고, 세월호 유가족 등에 대해서는 잔혹한 공격에 가담하고, 업체-재벌로부터 이렇게 저렇게 향응-돈봉투-접대를 받았을 것이 매우 농후한 언론사들의 ‘팩트’가 ‘신뢰’를 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영란법은 ‘비극’이자 동시에 ‘희극’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규제권력의 분산으로 나아가야 한다
김영란법은 ‘자본에 의한 포획’ 중에서 ‘연성적 수단’에서는 일정부분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럼, 더 좋은 대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규제권력의 분산’ 그 자체이다. 관료가 독점한 과도한 규제권력을 민간-시민사회에게 나눠야 한다. 그리고 검찰 및 모피아 등의 특정 관료조직에게 ‘과도하게’ 몰린 규제권력을 분권화시켜야 한다. 검·경 수사권 분리, 공수처 신설, 광역 검사장 직선제, 그리고 금융감독 독립성 강화를 위한 금융감독체계 개편 등과 같은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포획의 유인체계 자체’를 줄이는 정책수단이 가장 좋은 대안이며, 정공법이다. 그런데, 이건 ‘쎈 놈들’과 싸워서 제도를 변경해야 하는, 더 구조적인 대안들이다.
김영란법은 ‘구조적인 해법’과 ‘정공법’을 찾지 못한 무능력한 정치권(+학계+언론)이 여론에 떠밀려, ‘급진적인 방식으로, 강제적인 관행의 변화’를 추구했던 법안이다. 소비위축으로 인한 경제위축을 포함하여 우리사회는 매우 큰 비용을 치루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만큼 ‘특권층의 내부자들’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엄청나다. 마치 ‘브렉시트의 경제적 후폭풍’을 주장하던 영국 주류 권력의 주장을 믿지 않았던 영국 국민들의 반감과 유사한 모양새이다.
결국, ‘비용’을 직접 체험하는 수밖에 없다. 거대한 사회적 비용과 한바탕 소동을 직접 체험해보고, 언제인가 ‘더 좋은 대안’에 대한 사회적 에너지가 결집하고, 실제로 법-제도로 정착하게 될 때, 그 때 비로소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최적화된 반부패 제도’의 정착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원문: 최병천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