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면이라는 음식이 우리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건 인조반정의 주역이자 효종비 인선왕후의 아버지이며, 의정부 우의정의 지위에 올랐고 사후에는 문충공 신풍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조선 중기의 양명학자이자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인 중 하나인 계곡 장유가 죽기 3년 전인 1635년에 펴낸 『계곡집』에 처음 등장한다. 다만 장유의 책에선 차가운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다는 이야기는 등장하지만 이게 겨울철 음식이라는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 냉면이 겨울 제철 음식이라는 이야기가 처음으로 언급이 된 문헌은 1849년, 즉 헌종 15년(혹은 시기에 따라서는 철종 1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에 정조와 순조 시대에 부사를 지냈던 도애 홍석모가 편찬한 『동국세시기』가 처음이다.
- 『동국세시기』는 중국 육조 시대에 호북 지방과 호남지방의 연중행사와 풍속을 양나라 출신의 학자인 종름이 편찬한 『형초세시기』를 모방해서 만든 책이다. 조선 후기의 풍속을 자세히 설명했는데 원본은 소실된 지 오래고 사본이 남아있을 뿐이다.
- 참고로 이 『동국세시기』에서는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를 함께 넣어 무김치 국물에 담아 돼지고기를 얹어 먹는 음식”이라고 표현했다.
- 또 1896년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규곤요람』에서는, “밋밋한 맛이 나는 간이 덜 된 무김치 국에 메밀국수를 말고 그 위에 잘 삶은 돼지고기를 썰어 넣고 배와 밤, 그리고 복숭아를 엷게 저며 넣은 후 잣을 넣어 먹는다”라고 나온다. 참고로 『규곤요람』이 ‘1896년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야기는 뭔 소리인고 하면, 이게 공개된 시기가 구한말이고 연희전문학교 그러니까 지금의 연세대에서 공개가 된 책인데 일단 누가 쓴 건지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다. 한식업계에서 귀중한 자료로 많이 인용되는 책인데 구한말의 먹거리 풍습이 꽤 자세하게 나와 있는 게 특징이다.
- 그리고 1919년 당시 조선총독부 산하에서 경상북도 상주의 군수직을 임했던 심환진이 필사한 『시의전서』의 상편 주식류의 면편에서 냉면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나박김치나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서 양지머리·배·배추를 다져 넣고 고춧가루를 넣은 후 잣을 올려 먹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고기 뼈를 우려내거나 고기를 우려낸 장국을 차게 하여 국수를 말아먹기도 한다”는 기록이 함께 곁들여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 우리가 아는 냉면이라는 음식의 역사는 고작해야 100년 정도 된 거라고 보면 될 듯하다.
일단 이상이 ‘사실 알지 못해도 일상생활하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고 냉면 먹는 데도 아무런 문제 없는 잡지식’들이고, 궁금한 건 이것이다. 겨울철 음식이라고 소개하는 건 사실상 냉면이 기록된 문헌 중에서 『동국세시기』밖에 없는데 냉면이 과연 진짜로 ‘겨울철에만 먹은 음식이었을까’ 하는 궁금증 말이다. 이런 의문을 던져보는 이유는 바로 사시사철 얼음을 관리하는 ‘장빙제도’가 조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얼음을 사시사철 관리하는 제도는 신라 시대 때부터 존재해왔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 시대에는 ‘빙고전’이라는 관청을 두어 얼음을 관리해왔고, 고려 시대에는 ‘유구’라는 관청이 이를 담당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역시 ‘빙고’라는 직제를 두어 5품 제조 이하의 많은 관원을 두어 관리하였는데, 태종실록에 처음 빙고를 이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고종 또한 얼음을 즐겨 사용했다고 하니 우리 민족은 꽤 오래전부터 나름 쾌적한 서머 라이프를 즐기지 않았을까 한다.
서울 사람들에게는 동빙고라던가 서빙고라던가 하는 지역명으로 더 잘 알려졌지만, 사실 이 빙고라는 건 한성부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지방 요소요소에 꽤 있었다. 일단 그 모습이 나름 온전하게 남아있는 유적들만 해도 경주·안동·창녕·달성·청도 등에 남아있고, 북한에도 해주에 빙고 유적이 있어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단 유적이 남아있는 것들은 죄다 ‘석(石)빙고’들이며, 서빙고는 목조건축물이었기에 훼손되어 그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
그런데 도읍 한성부를 비롯 조선 각지의 주요 대도시에는 15세기 무렵부터 얼음을 판매하는 업자들이 이미 존재했다. 영·정조시대 이후에는 한강 주변과 전국 각지에 생선, 육류 등을 보관하기 위해 얼음을 보관하고 판매하고 공급하던 사빙고가 널리 퍼졌다는 기록이 있다. 정조실록에도 기록이 되어 있는데,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은 18세기 중엽의 조선 전국 각지의 사빙고가 저장하고 있던 얼음량은 장빙제에 의해 국가에서 관리하던 양의 최소 4~5배 정도는 되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당시의 돼지고기 유통 인프라인 ‘저육전’이나 수산물시장에 해당하는 ‘생선전’에서 이미 얼음을 사용하여 식품을 보존했다는 이야기가 각종 문헌에 등장하고, 또 생선을 ‘얼려서’ 육지로 끌고 오는 이른바 냉동선에 해당하는 빙어선 또한 이미 존재했다.
자, 그렇다면 다시 내 궁금증으로 돌아가서. 진짜 조선사람들은 냉면을 겨울철에만 먹었을까? 얼음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이 있는 양반집 인간들이나, 양반은 아니더라도 장사로 대박을 쳐서 양반 부럽지 않은 라이프를 즐기던 중인이 냉면을 여름철에도 먹지 않았을까? 프렌차이즈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고급화 전략’을 펼친 식당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민간에서 거래되던 얼음의 양이 궁궐과 관아에서 사용하는 양의 4~5배를 훌쩍 넘겨버린 18세기 중엽의 조선에서, 국수를 차게 해서 먹어보겠다는 실험을 한 사람이 없었겠냐고.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지. 자, 과연 역사 속 진실은?
이런저런 여담
여담인데 『시의전서』를 필사한 이 심환진이라는 인물은 일제시대를 대표하는 친일파 중에 하나다. 조선총독부에선 중추원 참의도 지냈고 창씨개명 운동에 아주 앞장을 섰던 인물이기도 하고, 뭐 그렇다. 드라마 『대장금』이 이 시의전서를 아주 많이 참고했는데, 우리네 전통 식문화와 궁중요리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이러한 귀중한 책이 친일파에 의해 보존되었다고 하는 아이러니가 참으로 뒷골 잡는 일이 아닌가.
아, 그리고 이것 또한 여담이지만 냉면 이야기를 하는 사람 중 특히 국뽕을 심하게 들이키는 분들은 메밀이 중앙아시아 원산이라 이게 한반도의 국가 형성과 함께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온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먼저 먹었으며 일본에는 조선에서 ‘선진국 문화’로 전파했는데 쪽바리들이 일제시대 때 오히려 소바를 퍼트리면서 역사가 왜곡되었다 뭐 이런 소리를 하시곤 한다.
물론 메밀은 중앙아시아 국가들, 특히 네팔과 인도, 부탄 등에서 미친 듯이 재배하고 있는 곡식이지만, 사실은 중앙아시아가 원산이 아니라 중국 남부가 원산지다. 이걸 곡식으로 먹기 시작한 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보다 북부 유럽과 발칸반도 주민이 먼저다. 원산지가 중국 남부인 것이 밝혀진 건 메밀의 조상종인 F. esculentum ssp. ancestrale이 중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
북부 유럽에선 이미 기원전 6,000년경부터 등장하는 곡식이다. 핀란드와 스웨덴 등지에서 메밀을 재배했다는 증거가 있다. 발칸반도를 비롯, 우크라이나와 오늘날의 러시아 서부 지대에도 기원전 4,000년 경에 메밀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중국에서는 기원 2500년경, 그리고 한반도에서는 서기 5세기 정도부터 등장한다.
재미있는 건, 일본 열도는 오히려 중국이나 한반도보다 빠르게, 기원전 4,000년경부터 메밀을 재배했다는 증거들이 출토되고 있다는 거.
ps.
잡지식이라곤 했지만, 그깟 평양냉면 한 그릇 먹으면서 “이게 진짜 전통을 따른 냉면이고 다른 건 아니다”라고 면스플레인 하는 놈들에게는 “예전엔 배 말고도 밤이나 복숭아도 넣어 먹기도 했다”고 잡지식을 피로해 주시면 세계평화에 기여하실 수 있으리라 본다. 뭐 그렇다고. ㅎ
원문 : 성년월드 흑과장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