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언론에 ‘김영란법’이 합헌 선언되고, 관련 내용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이 대서특필 되고 있다. 그런데 전문의를 취득한 지 얼마 안 되는 순진한 의사로 살아온 나에게 이 소동은 조금 의아하다.
일단 나는 의사로만 살아왔으니 사회생활이건, 직장생활이건 의사 집단밖에는 모른다. 그리고 의사가 직무와 관련해 남에게 이해관계를 미칠 수 있는 행위는, 환자에게 줄 약을 고를 수 있는 처방권이나 수술 기구 등을 선택하는 것 정도이다. 이 선택에서 의사가 접대를 받고 관련된 집단에게 이득을 주는 행위를 ‘리베이트’라고 하며, 관련 법규인 ‘리베이트 쌍벌제’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리베이트 쌍벌제란 리베이트로 인한 비용이 약값에 반영되어, 국민이 불공정 리베이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악순환을 근절시키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리베이트 쌍벌제는 판매 촉진을 목적으로 한 금전, 물품, 편익, 노무, 향응 등 각종 리베이트를 준 사람은 물론 받은 의료인도 2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 또는 과징금 없이 1년 이내의 자격정지 처벌을 받게 된다.
여기서 나는 의사가 청렴하고 결백한 집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도 ‘리베이트’는 근절되지 않고 엄연히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도 아닌, 자유경제활동을 하는 의사들에게 ‘국민이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 악순환’을 겪는다는 이유로 ‘판매 촉진’을 목적으로 한 모든 ‘금전, 물품, 편익, 노무, 향응’은 무조건 불법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리고 의사들은, 직무와 관련된 조금의 향응이라도 무조건 불법이고 나쁜 것임을, 적어도 머릿속으로 알고 법의 취지를 이해하고 있으며 어길 경우 실제로 처벌받고 있다. 지금껏 의사로 생활해온 내 상식으로도 직무 관련 선택으로 인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 행위는 아무리 조그만 규모라도, 무조건 불법이다.
우리가 모르던 우리 사회의 이면
이제 일명 ‘김영란법’을 보자.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들에게 대가성이 없어도 100만 원 이상의 수수는 불법이며, ‘직무 관련인’에게 3만 원의 식사, 5만 원의 선물, 10만 원의 경조사비가 넘어가면 불법으로 과태료를 내는 것이 골자이다.
나는 일단 여기서 한번 놀란다. 기본적으로 이들이 ‘직무 관련인’에게 식사나 선물을 받는 것이 합법이다. 자유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도 아닌, 나라의 녹을 먹는 공직자들이 이권을 대가로 무엇인가 받는 게 가능하다. 심지어 그전에는 선물의 상한액이 없어서 더 비싼 선물을 받았고, 식사도 한도 없이 비싼 음식으로 접대를 받았다. 이 논란에 있어, 규제가 시작되면 온 경제가 휘청인다는 걱정까지 끼칠 규모로, 불법과 합법의 테두리를 넘나들며 이들이 이미 ‘금전, 물품, 편익, 노무, 향응’을 받아 왔다고 선포하고 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한국경제연구원에서는 연 11조의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그전에는 연 11조가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들의 ‘직무 관련 이해관계’로, 그들의 ‘업무 방향’ 결정에 있어 ‘접대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득’을 위해 쓰인 것이다. 근데, 이건 ‘국민이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악순환’에 접어드는 행위가 지금까지 아니었다는 건가?
이상하다. 내가 보기에는 이만큼 합당한 표현이 또 없어 보인다. 11조나 되는 남의 돈으로 ‘금전, 물품, 편익, 노무, 향응’을 받아 왔는데, 국민의 사회적 비용 부담이 전혀 없었다고? 같은 정의를 타 집단에만 씌우고, 자기 집단에는 지금까지 쏙 피해온 데다, 이를 적용하려 하자 이제 와서 경제 손실 운운하는 느낌이다.
접대를 하는 자는, 그에 상응하는 이득이 발생하므로 행한다. 접대를 받는 자는, 자신의 직무 관련 선택만으로 타인에게 부차적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으니 행한다. 이 관계는 이득 계층이 다양한 사회에서 없애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를 방치하면 결국 관련되지 않은 자들의 피해로 귀결되므로 처음부터 이권을 주고받는 모든 것은 불법이어야 한다. 이것이 ‘리베이트’며, ‘뇌물’이며, ‘접대’이다. 이를 규제하는 ‘김영란법’이 논란이 된다는 사실조차 참으로 신기하지만, 이전에는 이 법이 없었다는 것이 훨씬 더 나를 놀라게 한다.
그리하여, 제약회사 직원과 밥을 먹고 제약회사 직원이 돈을 내면 불법인, 평범한 논리를 가지고 살아온 의사로서 ‘김영란법’과 관련된 소동은 참으로 이상해 보인다. 공직자가 직무상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과 밥을 먹고 그 사람이 돈을 내는 것이 불법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법 개정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라니.
이 법을 마주했을 때 ‘공직자’의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단호한 취지보다 오히려 더 먼저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여태껏 우리 사회에서 당연히 불법이어야 할 것들이 합법이었고, 그 규모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이며, 심지어 이를 서로 묵인하고 비호해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소동은, 되려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참으로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내게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는 것 같다.
원문 : 남궁인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