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 김자연 씨가 메갈리아 4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만든 ‘여자에게 왕자님은 필요 없다’ 티셔츠를 인증했다가 혐오 조장 사이트인 메갈리아 유저라는 이유로 게임 <클로저스>의 ‘티나’ 역에서 하차하게 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에 인터넷의 친(親) 메갈리아 진영과 반(反) 메갈리아 진영이 갈라져서 서로를 비난하고 있는데…
일단 이 사태 자체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나로선 메갈리아란 존재가 여성운동에 있어 의미 있는 존재이면서도 늘상 옹호할 수만은 없는 그런 존재라 생각한다. 그러나 메갈리아에 친화적인 행보를 보였다거나, (메갈리아를 포함한) 여성 운동 후원을 위해 티셔츠를 구입했다는 게 성우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이유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로 분노가 비등할 일인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反) 메갈리아 진영을 무작정 매도하기도 애매한 게, ‘미러링’이라 불리는 일종의 ‘풍자’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기 때문.
미러링의 위험성
메갈이 시도하는 ‘미러링’은 대강 이렇다. 세간에 넘쳐나는 여성혐오적 담론을 그대로 성별만 치환해 남성혐오적 담론으로 바꿔놓는 것. 아무렇지 않게 여성혐오적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을 향해 ‘거울’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기 크기로 남성을 판단하고, 외국 남성들과 비교해 한국 남성들을 무시하고, 남성들을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등등.
말하자면 메갈리아라는 커뮤니티 자체가 거대한 풍자의 장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풍자는 오독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그건 독자를 탓할 문제만은 아니다. 하물며 메갈리아의 글들은 ‘사회 구조적으로 만연한 여성 혐오에 대한 미러링’이라는 맥락을 글 자체만으로는 전혀 읽을 수가 없다.
또한, 풍자는 종종 풍자라는 목적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예전에 나는 ㅍㅍㅅㅅ에서 성소수자들을 변태성욕자로 규정하고 멸시하는 종교계를 비판하기 위해 가상의 게이 반대 단체를 만들고 이 단체의 성명서(?)를 만든 적이 있다. 내용 자체는 대단히 흔해빠진 풍자였다. “게이는 에이즈에 취약하므로 반대하며, 같은 이유로 기흉에 취약한 키 큰 사람에게도 반대한다”는 식. 그러나 많은 사람은 풍자임을 인식하기 전에 모욕적인 표현이 분노를 먼저 일으킨다며 이 글을 좋지 않게 평가했다.
하물며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풍자의 폭력성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력한 여성 혐오 풍자를 위해 폭력성을 대놓고 노출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남성이 여성에 비해 기득권자이며 여성 혐오도 공공연히 이뤄진다는 것이 이런 메갈리아의 폭력성을 어느 정도 정당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젠더 이슈만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메갈리아의 폭력성이 또 어떤 약자에게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그것은 정녕 미러링이란 말인가
메갈리아의 분열을 일으킨 남성 성소수자 문제 같은 것이 그렇다. 메갈리아는 ‘똥꼬충’ 이라는, 남성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표현을 사용해도 되는가 하는 문제로 분열을 일으켰다. 찬성하는 측은 어차피 게이도 남성이므로 당연히 혐오 표현을 써도 된다는 논리였다. 이 당시 일어난 분열로 메갈리아의 본진은 쇠락했고, 메갈리아의 분열로 탄생한 커뮤니티 ‘워마드’는 남성 성소수자들의 신원을 폭로(아웃팅)하자는 프로젝트를 전개하기도 했다.
남성 아동에 대한 성범죄를 모의하는 듯한 글을 ‘미러링’이라고 쓴 경우는 어떠한가? 또 한국전쟁 참전 군인들의 생명을 모욕하는 글들은 어떠한가? 분열된 ‘메갈리아’의 분파들로부터 나온 이런 글들은 자연히 메갈리아의 ‘미러링’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한다.
물론 디시인사이드나 일간베스트 같은 사이트에서도 못잖은 패륜적인 글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따지자면 메갈리아계(系) 사이트의 그것보다 훨씬 수가 많을 것이다. 심지어 남성 유저가 다수를 차지하는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비록 패륜적인 글은 아닐지라도, 여성을 비하하는 글들이 아무렇지 않게 쓰이고 공감을 얻고 있다.
메갈리아는 이런 현실에 대한 ‘미러링’이라는 이유로 이런 패륜적인 글들이 쓰여져야만 할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사실 일간베스트나 디시인사이드 일부 갤러리 등은 애당초 인륜을 거슬렀다는 평가를 공공연히 받을 정도로 질이 나쁜 사이트다. 많은 인터넷 사이트들은 젠더 문제에 대해 무신경하고 바보 같은 모습을 공공연히 보이긴 해도, 성소수자의 신원 폭로나 패륜 등에서까지 무신경하진 않다.
사람들이 다들 바보라서, 여성 혐오에 무감각해서 메갈리아의 미러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은 아니다. 메갈리아는 운동이 착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폭력성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폭력성은 한국 남성이라는 거대한 집단에만 균열을 내는 게 아니라, 게이이거나, 어린이이거나, 국가로부터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참전 용사이거나 한 개별적인 약자들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긴다. 나는 여성 운동의 당위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정당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말하지 못하겠다.
하물며 범죄나 패륜의 영역에 이르러서는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약자들을 겨냥한 혐오 표현들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이것은 미러링이란 말인가. 정말로 ‘남성’이란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란 말인가.
메갈리아라는 이름
사실 메갈리아는 이미 분열되었다. 비교적 온건한 쪽부터 터무니없이 과격한 쪽까지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으며, 이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남충’ ‘실좆’ 등 남성 비하적인 표현을 통해 그들이 같은 감성을 공유하는 이상 그들이 완전히 별개의 그룹으로 갈라졌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메갈리아라는 이름은 어떤 여성운동의 상징이 되었고, 진보 언론은 폭력성을 배제하지 않는 그들의 ‘미러링’에 주목한다. 이 정도 경제 강국이 되고서도 여전히 남녀 간 성 격차가 현저하며, 이를 남성들이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현실에서 메갈리아라는 운동이 가진 가능성을 바라본다.
그러나 메갈리아라는 이름은 또한 많은 사람에겐 일베의 대칭으로 여겨진다. ‘미러링’이란 그들의 투쟁방식은 종종 많은 부분에서 삐걱거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미러링’이란 이름으로 묶여 정당화된다. 그래서 이 이름은 또한 많은 사람에게 단 하나, 혐오만이 목적인 곳으로 평가절하된다.
난 이중 어느 쪽이 메갈리아의 본질이라고 선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속성이 메갈리아라는 이름으로, 혹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다. ‘진정한 여성운동’을 떼어내라 주문하기엔 애당초 그 진정성을 평가할 잣대도 없고, 메갈리아라는 운동 자체가 워낙 성글다.
결국, 메갈리아라는 이름은 이 모든 것을 품고 굴러갈 것이다. 누군가는 여성운동을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폭력과 혐오를 말할 것이며, 그러는 와중에 또 누군가는 메갈리아에 우호적이란 이유로 자신의 자리를 뺏길 것이다. 메갈리아는 여전히 비탈길에 있다. 그게 어디에 멈출지는 내가 건드릴 영역이 아니다.
원문 : 임예인의 새벽 내리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