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에서 발행한 이런 글이 페이스북에 돌아다니고 있다. 읽고 나니 노동자 연대에 묻고 싶어졌다.
노동자 연대는 이 글로 득을 보는가?
확실한 건 여성주의자 및 젊은 여성집단이 ‘노동자 연대’에 관심을 갖고 후원할 가능성은 지금도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운영진이 이 글의 수신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차분히 살펴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맑스주의나 계급투쟁,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여성주의자들조차 이런 글들을 접하면서 진절머리를 내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표면적으로는 맑스주의자들과 여성주의자들의 연대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모든 문제의 정답은 맑스주의자들이 알고 있고 뭐시 중한지도 모르는 여성주의자들은 조용히 말이나 듣고 따라오면 된다는 속내가 너무 솔직하게 드러나서 사실상 자신들과 여성주의자 사이에 더욱 깊은 골을 만든다. 내 생각에 그런 건 “연대의 요청”이 아니라 “복속의 강요”라고 부르는 게 정직한 태도다. 여성주의와 맑스주의의 연대를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들에겐 노동자 연대의 글이 X맨의 역할을 매우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처럼 비칠 것이다.
나는 이 그다지 명료하게 집필되지도 않은 글의 클릭수를 굳이 올려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 글에서 눈에 띄는 몇 가지 지점을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 “차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상 이면에서 작동하는 힘을 봐야” 하는데 그걸 볼 수 있는 건 물론 맑스주의자들의 계급투쟁론이다. 여성 차별은 어디까지나 본질이 아니라 현상일 뿐이다.
→ 필자는 “여성차별은 인류 역사 내내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차별은 잉여 생산물이 생겨나고 그에 따라 계급이 생겨나면서 함께 등장했다”고 말하는데, 물론 역사적으로 틀린 주장이다. 자본주의가 아주 아주 먼 옛날부터 언제나 존재했다고 말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 (가사노동 문제를 언급하며) “집안에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자본주의 체제가 두 성 모두에 미치는 영향(흔히 파괴적인)을 놓치기” 쉽고 노동자 남성도 피해를 본다. “노동계급 내 남성과 여성의 (성별)격차는 지배계급과 노동계급의 (계급)격차에 비하면 훨씬 적다.”→ 그러니까 남성지배란 개념은 틀렸으며, 여성주의자들은 “남성 야단치기”(북한의 문화어인가?!)를 하지 말고 여성혐오 개념도 포기해야 한다.
- 현재 여성주의에는 “포스트구조주의”가 유행하고 있는데, “인간이 사회 전체를 이해하고 나아가 변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는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이 사회를 개인들의 총합으로 여기는 (개인주의적) 관점과 결합하면, 개인들의 행위는 흔히 ‘구조’로 환원되고, 또 개인들의 저항 행위는 ‘구조’에 저항하는 행위가 된다. 개인적 경험 말하기와 담론(일종의 성토 커뮤니티)이 넘쳐나는 이유다.”→ 그러니까 여성들이 커뮤니티에 모여서 쓸데없이 글이나 올리고 자기고백이나 하며 진정한 계급투쟁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여성주의의 해악이다.
- “차별에 맞서는 일이 노동계급 남녀 모두의 과제가 돼야 하고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을 동원해 싸워야” 하는데, “우리 편의 일부도 근본적으로 차별 유지로 득을 본다는 이론과 사상이 더 많은 사람들을 차별 반대 투쟁에 참여시키는 데 도움이 될까? 오히려 이런 이론과 사상은 차별 반대에 동맹세력이 될 수 있는 노동계급 남성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어, 성차별 반대를 여성들만의 과제로 만드는 효과를 내기 쉽다. 또한 남성을 여성혐오주의자라고 매도하는 것이 대중 운동 건설에 효과적일까? 성별 ‘정체성’에 따라 말할 자격을 주는 것은 차별 반대 운동의 전략·전술 토론을 차단하는 효과를 내고 있지는 않은가?”
이 모든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노동자계급 남성을 욕하는 건 계급투쟁을 할 잠재적 동지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니 지금의 “남성 야단치기”를 포기하고 다 같이 진정한 적수인 자본주의 및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진정한 해결책 계급투쟁으로 단결하라!
라는 말이 되겠다. 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쓸데없이 글이나 끄적거리지 말고, 라는 훈계도 덧붙여져 있다.
내가 보아왔던 맑스주의와 여성주의의 연대를 추구해온 이들은 기존의 맑스주의자들에 의해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던 여성주의적 이슈를 제기하거나 여성주의 운동에 맑스주의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탐구하고자 했다. 이 글의 신선함은 그 모든 노력을 무시하며 “노동자계급이랑 연대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노동자 남성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이야긴 이제 접어둬”라고 대놓고 협박하는 태도에 있다.
이걸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옮긴다면,
정도가 되겠다. 이건 맑스주의 여성주의, 아니 그 이전에 불평등에 저항하는 운동에 부합하는 태도도 아니며, 그저 자신들의 “큰 그림”을 위해 니들의 “사소한 불편함”을 참으라는 지배세력의 오랜 레토릭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노동자 연대가 이런 지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파멸적인 글이 필터링되지 못할 정도로 안 돌아가는 언론이라면 유감스러운 일이다. 만약 그들이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조직이라면, 나는 솔직히 이곳에 어떠한 기대와 희망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연대를 응원하는 분들께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여기의 글을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읽지도 않을 거다.
확실한 건 이런 글이 계속 실리는 한 노동자 연대는 사회변혁을 이끌어낸다기보단 오히려 그것을 가로막는 데 좀 더 최적화된 기구로 남아있으리라는 사실이다.
원문: begray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