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이 인종차별 발언 한마디로 도마에 올랐다. 내용은 여기서 들을 수 있다. (필자 주 : 원래 이 문장에서 ‘병신 같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다소 경황 없이 글을 쓰다보니 올바르지 못한 표현이 들어갔습니다. 해당 부분 수정했으며,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김태균 선수는 치기 힘든 유먼을 꼽았습니다. 얼굴이 너무 까매서 마운드에서 웃을 때, 하얀 이빨과 공이 겹쳐 보인데요. 그래서 진짜 치기 힘들대요. 자기가 치려고 하면 하얀 이빨과 공이 겹쳐서 들어와서 당한 경우가 종종 많다면서…”
이에 대해 네티즌 이 모 씨는 “투구라는건 대부분 전력을 다하는 행위기에 투구시 투수들은 이를 악물곤 한다. 게다가 140대의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지나치는데 대충 0.4초가 걸린다. 그 사이에 입을 벌리거나 입술을 열어 보이다니. 대단한 투수이고, 이를 알아본 타자도 대단하다.”고 극찬했다.
김태균의 말실수, 외국이라면 어땠을까?
사실 정말 말실수 맞다. 이걸 가지고 “저 인종주의자, 개새끼…”라고 하기에는 맥락상 욕하기 뭐하다.
근데 실수라도 민감한 건 민감한 거다. 해외 사례를 슬쩍 보자. 미국은 이미 공적 자리에서 인종차별 발언이 물건너 간 편이다. 당장 천조국 황제께서 흑형이 아니던가? 더군다나 노예착취의 역사에서 벗어난지 채 200년이 되지 않았다. 그 긴 시간 동안 워낙 이런저런 일이 있다 보니, 이제 흑인 관련 인종차별 발언이 터지면 사회적 매장감이라 인종차별 발언을 하지 않으려 용을 쓴다.
그렇다면 이가 터진다면? 2000년 존 로커는 “뉴욕은 동성애자와 흑인 등이 득실대 가기 싫은 곳.”이란 이야기를 했고, 메이저리그 관계자는 물론 빌 클린턴까지도 그를 강하게 비난했다. 그 결과 14일간 출장정지와 벌금 500달러에 처했다.
흑인은 덜하지만 레알 ‘소수자’를 향한 인종차별 발언은 터지게 마련이다. 흑인은 아니지만, 그 대상은 주로 히스패닉과 아시안계다. 메이저리그 해설가 스티브 라이언스는 히스패닉계 감독이 스페인어를 섞어 이야기하자, 이를 조롱했다. 그리고 바로 해고됐다. 또 대만계 미국인 제레미 린에 대해 동양인을 비하하는 chink라는 표현을 쓴 기자를 ESPN은 즉시 해고했으며, 이 표현을 그대로 쓴 앵커도 30일간 출연 정지했다.
동성애에 대한 발언도 마찬가지다. 메이저리그의 유넬 에스코바의 동성애 비하 발언에 대해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3게임 출전 금지의 자체 징계를 내렸다. 참고로 이런 일이 뜨면 그 게임에 해당하는 동안의 급여를 받지 못한다. 8만 7천 달러, 그러니까 약 1억이 그냥 날아가는 것. 얼마 전 NBA의 로이 히버트도 동성애 비하 발언으로 7만 5천 달러의 벌금을 받았다. 그는 동성애를 비하했기보다, 열 받아서 지른 말인데도. 말이 쉬워서 그렇지, 1억이다(…)
축구는 한층 더 세다. 첼시의 존 테리는 QPR의 안톤 퍼디난드에게 흑인 비하발언을 시전했다. 그 결과 그는 영국축구협회로부터 4게임 출장정지, 22만 파운드(4억에 달한다!)의 벌금까지 얻어 맞는다. 이 과정에서 (결과가 나오기 전이다!) 존 테리는 영국대표팀 주장에서 경질됐으며, 법정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테리를 주둔한 파비오 카펠로 감독까지 경질되기에 이르렀다. 박지성이 경기에서 존 테리와의 악수를 거부할 정도로, 일종의 명예형까지 당한다.
해외에서는 인종차별 발언을 한 관중에게도 알짤 없다. NBA에서는 선수에게 인종차별을 한 팬에 대해 (이 관중이 조롱한 선수 무톰보는 아프리카 출신이다) 한 시즌 동안 경기장 입장을 금지시켰다. 또 박지성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했던 관중도 유죄가 확정됐다. 해외 스포츠에서는 이처럼 인종차별 발언을 매우 엄격하게 다루고 있다.
항상 차별받는다는 한국인, 우리는 떳떳한가?
한국인을 분노케 한 사건이 있다. 바로 맨유 소속 마케다의 인종차별적 세레모니다. 그는 한국에서 귀를 잡아 원숭이를 연상케 하는 세레모니로 한국인의 분노를 산 바가 있다. 하지만 그 세레모니가 인종차별적인지의 불명확함으로 처벌은 받지 않았다. 또 마테라치가 안정환에게 마늘 냄새 난다고 지랄거린 이야기가 전해졌을 때도, 한국인은 분노했다. 스포츠가 아니라도 마찬가지. 작년 홀리스터 모델의 한국인 비하 사건과, 최근 스타벅스 애틀랜타 매장의 한국인 비하 사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가 민감할 때는 당할 때뿐이다. 기성용은 일본과의 국가대표전에서 골을 넣고서 원숭이 세레모니를 시전했다. 사실 서양에서 보면 뭔가 제 얼굴 침뱉기인데(…) 아무튼 굉장히 모욕적인 세레모니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좀 개념 상실인데, 대부분의 한국 언론 반응은 기성용의 세레모니를 두둔하기에 바빴다. 일본인 관중의 욱일승천기에 대한 항의이라나… 그러면 북한 사람들은 맨날 미국 까도 되나… 아, 하긴 쳐다보지도 않겠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마테라치와 안정환의 마늘을 참조하자.
TV에서도 인종차별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우리는 인식하지 못한다. 이 글에 따르면 지붕뚫고 하이킥에서만 인종차별 발언은 세 차례나 등장한다. 그것도 ‘코쟁이’로 백인을 저격, ‘얍삽하게 생겼다’로 일본인을 저격, ‘흑인분들은 살색이 연탄색’으로 흑인까지 저격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시전한다. 하지만 이는 방송 중 아무런 문제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김태균의 발언으로 이어졌다. 사실 김태균의 발언은 위의 일들에 비하면 굉장히 약한 편이다. 1. 애초에 비하라기보다, 강자에 대한 투정성 위트를 보낸 것이다. 유먼은 작년 방어율 4위, 올해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2. 그 메시지가 직접 전달된 것이 아닌 라디오 방송을 통해 간접 전달된 것이다. 즉 김태균은 방송의 영향을 잘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솔직히 억울할 만은 하다. 3. 또 김태균은 구단을 통해 즉각 사과했다.
갈등을 극복한 미국, 갈등을 피하는 한국
기실 미국도 처음부터 인종차별에서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었다. 흑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뛸 수조차 없던 나라가 미국이다. 재키 로빈슨이 니그로 리그를 벗어나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건 1947년으로 아직 70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날은 ‘재키 로빈슨 데이’로 지정되어 전 선수와 심판까지 그의 등번호 42번 유니폼을 입고 뛴 뜻 깊은 날로 지정되어 있다.
김태균의 말은 ‘실언’에 가깝다. 하지만 이가 김태균 발언에 면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실언에는 그 배경이 있다. 미국은 위의 문단에서 알 수 있듯, 굉장히 많은 사회 갈등이 있었고, 이를 해소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종차별 발언이 민감하게 여겨진 나라다. 이에 반해 한국사회는 이제서야 다문화를 접해 가는 중이다. 그만큼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런 발언에 대한 민감성이 많이 떨어진다.
사회 갈등이 적고, 민감성이 떨어지는 게 결코 좋은 게 아니다. 아이 울리는 한 마디, “다문화는 남아”에서 볼 수 있듯 이런 사회 구조 속에서도 상처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일이 단순히 김태균을 질책하는 데 그쳐서는 곤란하다. 야구선수는 이제 연예인 못지 않은 유명인이다. 그렇다면 그만큼 모범을 보여줄 수 있도록 구단, 협회 측에서의 교육 등 장기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미국의 메이저 스포츠 선수들은 스스로가 사회 구성원의 훌륭한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뭔가 이것도 인종차별 발언 같지만) WASP의 스포츠라 여겨지는 야구는 특히 그렇다. 한국 프로야구도 30년을 넘었고, 점점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또 사회인 야구도 점점 활성화되고 있다. 야구가 좀 유명한 공놀이를 넘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전문분야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히 실력이 아닌, 삶에 있어서 모범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일본도 이미 자신들이 하는 것은 baseball이 아닌 野球(야큐)라 자부하며, 그것에 많은 규율을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