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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덟쯤 먹은 사무관이 국회에 찾아왔다. 쉰셋쯤 된 6급 공무원을 ‘달고’ 왔다.
쉰셋쯤 된 6급 공무원은 허리를 펴지 못한 채 서른여덟 사무관 뒤에서 두꺼운 가방에 뭔가를 잔뜩 짊어지고 왔다. 사무관은 실무를 몰랐고 6급 공무원이 나에게 굉장히 공손한 어투로 열심히 설명했다. 사무관은 “우리 주무관이 이거 열심히 해서 이번에 승진도 했어요.”라고 나에게 설명하더니 6급 공무원을 보면서 “그렇지, 이 주무관?”이라며 반쯤 반말을 했다.
2
2015년 국정감사에서 지방자치단체 소속 무기계약직 노동자의 최저임금 실태를 조사하니 절반의 지방자치단체자 법을 위반하고 있었다. 해당 자치단체 담당자들에게 물었다.
“아니 이분들 중 대부분이 연세가 50이 넘으셨던데 이렇게 낮게 임금을 책정하면 어떻게 합니까?”
담당자는 말했다. “그렇다고 (9급공무원) 시험보고 들어온 우리 직원들보다 더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최대한 근접해서 주고 있었습니다.” 라고.
3
광주고를 졸업했으나 집안 형편상 9급 공무원으로 시험을 치고 들어가 1급에 오른 참여정부 김완기 인사수석은 당시 화제가 됐다. 9급으로 들어와 1급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7급 시험도 있고 5급 시험도 있으니 9급으로 들어오면 6급으로, 7급으로 들어오면 4급으로 은퇴하는 것이 ‘정상적’인 인사다. 9급으로 들어와서 일 잘한다고 1급으로 가는 건 비정상이라 신문에 났다.
4
대학 입학 후 고시 공부에 매진해 20대 후반에 행정고시에 합격한 공무원은 9급으로 들어와 30년 일한 공무원을 부하로 두고 잘도 부려 먹는다. 어떠한 망설임도 없다. 6급 공무원은 6급대로 새파란 5급의 지시를 ‘앞에서는’ 잘 따른다. ‘그래도 실무는 내가 아는 거다’라는 자부심은 속으로 감춘 채.
5
“시험에 붙었으니 나는 너랑 다른 인간이다.”
이것이 지금 고시제도가 공무원들의 머리에 박아놓은 인이다. 신분제라는 것은 다름 아닌 이것이다.
“5급으로 들어온 자는 고위공무원을 꿈꾸되, 9급으로 들어온 자는 6급 이상을 넘보지 마라. 네 나이가 얼마든, 어디서 어떤 훌륭한 업적을 쌓아왔든, 9급으로 들어온 자라면 9급으로 들어온 자답게 행동하라. 너희까지 4급, 3급 경쟁에 뛰어든다면 내가 애써 행정고시를 패스한 의미가 없질 않으냐.”
20대 단 한 번의 시험 통과가 평생을 보장해주길 바랐던 개, 돼지의 사고방식일 뿐이다. 그 개, 돼지가 거울을 보고 “우와 개돼지다!”라고 했다고 해서 우리가 흥분할 이유는 없다. 돼지우리에 갇혀 삼겹살이 될 운명도 모른 채 사료나 처먹고 있는 그에게 동정을 보낸다.
우리는 적어도 자유인이니까.
원문 : 김성회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