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AD 논쟁의 속내
우리 다 서로 솔직해 지자, 좀. 그래, 까놓고 말하겠다.
THAAD는 ‘현재’로서는 ‘대북 방어용’ 성격이 맞다. 그런데, ‘미래’에도 그럴 것으로 보장을 할 수는 없다. 왜? 무기체계는 특정 고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내 권총에 “김정은用”이라고 써 놓았다고 하자. 이 총의 총알이 김정은에게만 통하는 것이 아니다. 엉뚱한 공권력을 향할 수도 있고, 모 씨가 말한 “개, 돼지”를 잡을 수도 있다. THAAD가 미래에 탐지성능과 다른 요격체계를 보강해서 운용된다면 러시아나 중국이 우려를 하는 최악 시나리오가 실현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 이건 ‘현재’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아니,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이나 김정은의 폭주에 비하면 어린아이 장난이라는 거지. 자, 우리는 왜 이렇게 미래의 일에 집착하는가? THAAD가 국방부 장관의 규정처럼 ‘일개 중대’의 함축성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보복 운운하면서 쌍심지를 돋울 사항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얘들은 왜 이렇게 날치며, 우리 국내에서는 또 왜 을사늑약 직전의 상황처럼 침을 튀기는가?
그래서 솔직해지자는 거다. THAAD를 옹호하는 ‘동맹론’이나 반대하는 ‘평화론’(웃기는 이야기지만) 양쪽 모두 한 꺼풀을 젖히면 결국 ‘친미론’이냐, ‘친중론’이냐의 선택지를 THAAD로 포장해 싸우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 이제는.
THAAD 반대론에 대한 질문
논의의 활성화를 위해 페친 이근 교수님께서 저간의 THAAD 신중론에 대한 의문을 모아 총대를 매 주셨으니, 나도 한번 찬성론의 차원에서 THAAD 반대론에 대한 질문을 해보자:
1. 성능 형편없다매?
그래, 장사정포도 못 잡아, 요격률 형편없어, 이 돈을 미국이 들여오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우리 땅을 내줘야 하고 중국의 눈흘김 받아야 된다. 대차대조표가 너무 안 맞는다는 주장인데. 그런데, 왜 중국은 이 허접한 무기체계에 목을 매고, 여러분들은 왜 또 그러는가?
2. 어차피 북한의 장사정포, SLBM 못 잡는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니, 솔직히 사드로 장사정포 잡을 수 있다고 하면 그건 사기다. 그런데, 원래 그 목적이 아닌 걸로 개발된 무기를 자꾸 왜 이거 못 잡냐고 우겨대면 어쩔건데? 요격율 95%라고 해도 5%는 뭘로 보장하냐? OK, 95% 이상의 검증된 명중률을 가진 대안 무기체계 본 적 있으신지?
3. 나중에 이거 탐지레이더 슬슬 바꾸고 초고고도 요격체계 들여오면 사실상 MD다?
아마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게 정 안심 안 되면 북한 핵문제 해결될 때까지만 THAAD 가지고 있으면 안 됨? 무조건 야, 우리 그런 맘이 아니니 잘 해보자고 김정은만 꼬시면 됨? 중간에 약속위반으로 생길 risk 관리는 그냥 “못 믿을” 제국주의자 미국이 해 주면 됨?
4. 왜 대화를 할 생각을 안 하고 몰아붙이기만 하냐고?
솔직히 우리 정부도 다 안 믿는 분들이 김정은의 신뢰성 100%는 어떻게 보장함? 2~3년 대화분위기로 가다가 어느 날 “바보들, 속았지, 하하하!” 그러고 완성된 중ㆍ장거리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다 들이밀면 그거 또 해체시키기 위한 중간 단계에서 방어력은 누가 보장함? 오히려, 우리 자신의 방어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골보수들 목소리를 누르고 대화도 병행할 수 있다.
5. 왜 이 문제를 중국을 그렇게 모멸감 주면서 해결해야 하는가?
어차피 아니라고 부인해도 중국도 남북한 가지고 저울질 하고 카드 활용 다 하는데, 우리가 하면 의리없고 부도덕한 것임? 솔직히 하나 물어보고 싶음. 만약 THAAD 배치 안 한다고 했으면, 중국이 secondary boycott 참가하고 평양의 목줄을 쥐어줄 것이라고 생각함?
전략의 문제
이미 이근 선생님의 문제 제기에 대한 내 나름의 답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위 질문을 가지고도 결론은 나지 않는다. 관점의 차이이며, 사실상 한국 외교ㆍ안보전략의 핵심축을 한ㆍ미로 갈 것이냐, 한ㆍ중으로 일부 틀 것이냐의 선호(選好)가 개입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에 국내에는 별로 안 다루어지고 있지만(사실, 뿌찐은 이게 더 기분나쁠 수도 있다) THAAD 배치에 대해 더 민감한 것은 러시아다. 중국처럼 국방비에 때려넣을 돈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서방 제재 받고 있는 터에, 미래에 자기 극동 핵전력을 바보로 만들 기초가 될 수 있는 무기체계가 들어온다, 이거 만만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미래’다.
오히려 중국의 입장에서 THAAD는 동남아시아 지역(난 남중국해란 말 싫어한다) 해상분쟁과 함께 아ㆍ태 지역에서 중국이 그렇게 악을 써서 추구했던 “내 나와바리”가 흔들리는 단초를 만들지 않겠다는 초조감의 표현이다. 즉, 그렇게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경제력과는 달리 군사력 측면에서 미국과 맞설 능력이 충분치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일부의 전망과는 달리 미래는 더 시궁창이다.
군사대국들 간의 경쟁에 있어 후발국가들이 선발국가를 따라잡으려면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이 ‘전략개념의 선도’의 형평성이다. 즉, 세계나 지역전략 부분에서 혁신적 기술선도와 개념선도가 병행되면서 기존의 강대국들과 비슷한 수준에 오르는 거다. 어떤 것이 ‘개념선도’냐고? 중국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구 소련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이 냉전초기 잇단 장거리 폭격기들을 양산하자, 이에 밀린 소련이 우주개발을 빌미로 먼저 발전시킨 것이 ICBM 분야이다. 나중에 대륙간 탄도탄의 은밀성을 놓고 미국이 지하 사일로 방식으로 장군을 택하자, 러시아는 이동식 발사대로 멍군을 놓았다. 이게 개념 선도성의 경쟁이다. 미안하지만, 여전히 이 군사적 개념 선도성의 경쟁은 미국과 러시아가 하고 있다, 그 무기체계를 사줌으로써 중국은 돈 대는 역할에 충실하고. 인민해방군의 결정적인 딜레마이기도 하다.
THAAD가 함축하는 것
THAAD는 이 자존심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문제의 하나다. 그래서 시기상 매우 미묘했고, 우리가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거다. 그래, 분명한 것은 결국 당분간 비핵화나 한반도 전략의 중심축을 중국보다는 미국과 협력하여 이끌고 가겠다는 것이 최소한 내 시각에서는 THAAD가 지닌 최대 함축성이다. 다만, 경제 분야에서는 분리된 접근을 취하겠다는 거고. 만약, 중국이 전략적 연대와 경제협력을 강하게 연결시킨다면 그건 스스로 바보짓을 하는 거다. 중국의 과거 발전전략은 이 둘을 반드시 분리하지는 않았지만 연대관계가 느슨했기 때문이다.
그래, THAAD는 솔직히 말하면 친미파의 전략적 기동(maneuver)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꼭 나쁜가? 도대체, 중국은 절대선이고 미국은 악당의 최종보스라는 편벽한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 나 자신도 중국은 가능한 친구로 만들어야지 적대해서는 안 될 대상이고 한ㆍ미 동맹이 그렇게 가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여러분들은 중국을 도대체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건가? 수단인가, 목적인가?
일부 언론에서 “新냉전 구도”의 형성 운운하는 것을 보고 웃었다. 정말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중국과 러시아가 실제적 이익의 손해를 감수하고 자신들이 내건 이념에만 충실할까? 우리가 일본과 그렇게 엮일 수 있을까? 아니, 어떤 면에서 ‘新냉전’이 더 지랄맞고 앙바틈한 것은 바로 우리 국내, 우리 마음속의 아집들 일거다.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내 글의 취지는 절대로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 쪽의 택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둘과의 관계를 원만히 가져가는 데에도 고도의 기술과 절제력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티 안나고(쉽게 이야기해서 외부에 자랑하지 않고) 조용하고 겸손한 실리의 접근이 요구된다. 자기보다 큰 국가들과의 외교에서 최대의 자산은 명분을 주고 실리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 거꾸로 하는 체제가 있다, 평양이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당당한 G-20의 일원이라는 한국이 그런 우를 범한다는 거다.
솔직히 중국 몰빵론이나 미국 몰빵론이 일반 시민사회의 비합리적 펜듈럼인가? 아니, 어떤 시기에는 고위 정책결정자들이 그 가당찮은 짓을 했다. 한 번 볼까? 2013년~2014년 어간, “미국이 노쇠한 제국으로서 단말마적 숨을 쉬고 있다”는 일부의 전망이 팽배했던 시절, 우리의 외교적 기동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자. 이래저래 “야, 이제는 우리도 말 갈아타고 더 잘 나가는 쪽에 업혀야지”라는 속내를 보인 것은 아닐까?
아니라고 펄쩍 뛰지 말아라, 그런 심산인데 “러브콜” 이야기가 나오냐. 아마 워싱턴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 저것들 정말 못 믿을 친구들이네, 당장은 아시아에서 대안이 없으니 그냥 표정관리 하지만 함 보자.” 적어도 국가최고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아니었더라도 중견 관료들 사이에서는 이런 분위기 분명히 있었다. 이젠 중국이 그럴지도 모르고.
이런 불신의 구조가 ‘미래’의 THAAD를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거다. 한ㆍ미 동맹의 신뢰가 있을 때에는, 그리고 호혜성의 거래관계가 정립되었을 때에는 미래에 THAAD를 가지고 미국이 무늬만 대북용이고 사실상 중ㆍ러 견제용으로 써먹으려고 할 때, 한국은 이를 통제하고 변화시킬 충분한 여지가 있다. 그런데, 만일 미국이 “어차피 불신속의 동거인 것, 우리도 너희 이용해 먹겠다”는 구도로 변한다면? 또, 중국도 “미국 본토 못 건드릴 바에야 니들에게 화풀이하겠다”는 모양이 형성된다면? 오히려 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더 암울한 THAAD 논쟁의 본질인 거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친미면 친미, 친중이면 친중, 어느 한 쪽이라고 일관성만 분명하면 좋겠다. 이념적인 노선 상 중도보수 정도를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사안에 따라 정강정책과 주요 이슈에 대한 입장이 널을 뛰는 모 정치세력, 그 정치세력의 전직 보스를 보고 있노라니, 참 한국에 사람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요즘 든다.
대응 방향
한국 외교로서는 나름대로 시련(솔직히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격랑이 많은 입장에서 이 정도를 도전이나 시련으로 본다면 그건 좀 문제가 있는 거지만)의 시기이다. THAAD 문제에 대해 중국의 이해를 끌어내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제 스프래틀리와 파라셀(내 절대로 남중국해란 표현은 안 쓴다) 분쟁에 대한 입장도 밝혀야 한다. 뭐 누구 눈치를 봐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THAAD 문제에서 이야기했지만, 친중 혹은 친미의 어느 한쪽을 몰빵하기에는 우리가 처한 환경이 너무 빡빡하다(그래서 이게 ‘러브콜’ 구도가 아니라고 이야기한 거다).
오히려 대응방향은 간단하다. 우리가 천명한 원칙과 모순되지 않는 범위면 된다. 우리는 THAAD 배치와 관련하여 이것이 어디까지나 북한 핵에 대응하기 위한 한반도 방어용이며, 결코 미ㆍ중간 전략적 경쟁 속에서 미국과의 연대 일변도로 입장을 정한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렇다면, 이 연장선상에서 헤이그 국제중재재판소 판결의 기본정신, 즉 자유항행과 비군사화 등을 언급하면 그만이다. 한 발짝 더 나아간다면 국제적 잣대라는 점에서 판결내용을 존중한다라는 코멘트를 덧붙일 수 있을 것이고. 이 문제를 선제적으로 언급하거나 구체적으로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중국이 이 정도도 이해 못 하고 파르르 떨면? 글쎄… 그건 말 그대로 덩치만 큰 어린아이라는 고백에 다름이 아닐테니.
THAAD로 미국 손 한 번 들어줬으니 중국 편도 은근히 우회적으로 들어준다는 그런 측면이 아니다. 그런 기계적 등가성의 외교행위는 결국 박쥐외교나 ‘균형외교’ 논란을 자아낼 뿐이다. 결과적으로 똑 같지 않냐고? 아니, 출발점이 미ㆍ중간의 줄타기냐 우리가 대외적으로 이야기한 원칙에 충실하냐는 일정 국면에서는 비슷한 결과를 낼지 모르나, 두 번 세 번의 비슷한 딜레마가 생길 때의 대응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적어도 2000년대 이후의 한ㆍ미 동맹 조정과정에서 양국은 한국의 미묘한 전략적 환경을 미국이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어쨌든 이런 부분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미국이 중국보다는 속이 넓다는 것이 개인적 판단이다.
어떻게 단언하느냐고? 한 번 작년 9월의 [전승절] 참가에서 미국과 중국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가정해보자, 그 때도 비교적 조용히 넘어갔을까? 그렇기에 외교는 술수나 미봉적 모면이 아니고 철학이요 예술이다. 그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나 성찰이 없으면 매번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헷갈리며, 가만 저번에 누구 편 들어줬더라 식의 비속한 기동이 일상화된다. 앞에 한 말과 뒤에 한 말이 틀리면 그건 결국 미국과 중국 어느 쪽으로부터도 신뢰를 얻지 못하며, 우화에 나온 ‘박쥐의 말로’와 똑 같은 결과를 낳는다.
원문: 차두현 님의 페이스북